오피니언

[사설] 노조회계 관련 대통령 발언, 때려잡겠다는 적대감뿐

윤석열 대통령이 또 노동조합을 향해 험악한 말들을 쏟아냈다. 이번에도 회계문제다. 수개월째 반복해서 언급한 것이니 이번에는 무슨 대단한 비리라도 나왔을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국민의 혈세인 수천억원의 정부지원금을 사용하면서 법치를 부정하고 사용 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말만 거칠어졌다. 대통령의 주장은 근거 없는 거짓선동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의 업무보고 이후에 공개됐다. 장관은 조합비 회계장부 비치·보존 결과를 양대노총이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노조법14조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를 3년간 비치해야한다’는 것이 근거다. 이 조항은 노동조합 운영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합원에게 공개해야 된다는 것이지, 행정관청이 이를 관리·감독하라는 것이 아니다. 해당 조합비가 제대로 쓰였는지는 외부인이 아닌 조합원들이 문제를 제기할 사안이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61곳 대상 중 60곳을 성의있게 제출했다. 고용노동부는 ‘내지가 없다’며 생트집을 잡고 사용내역 공개 거부로 단정했다.

보조금이나 위탁사업 등을 빼고 노조의 나머지 일반회계는 모두 조합비로 충당한다. 보조금 집행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산검증된다. e-나라도움이라는 웹 결재시스템을 공공기관과 함께 사용하는데, 영수증 없이는 10원도 임의로 집행할 수 없도록 설계돼 있다. 애초에 문제삼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조합비는 정부보조금이 10원도 섞여있지 않다. 조합원들이 규약에 따라 월급의 1% 전후로 꼬박꼬박 낸 돈이다. 자체 회계감사를 두고 대의원대회 등에서 꼼꼼히 살피고 의결한다. 회계상 문제가 불거지면 집행부를 유지한 전례가 없을 정도로 조합원들의 집중감시 대상이다.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조합비는 이렇게 관리되는 것이다. 정부가 관리감독해서 과태료를 매기니 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노조법에 조합비에 대한 정부보고 의무가 없다는 것은 국민의힘이 먼저 인정했다. 민주노총 회계문제를 앞장서서 제기해온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지난해 12월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노동조합은 조합비 사용상세내역의 노동청 보고를 의무화’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냈다. 이를 ‘노조 깜깜이 회계 방지법’ 이라고 이름 붙였다. 개정안은 현재까지 상임위에서 논의 한번 못해본 상태니 윤석열 대통령은 심지어 법률에 근거하지도 않고 ‘법치부정’이라고 단정짓고 있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대통령이 언급한 ‘단호한 조치’는 노조법도 아닌 ‘질서위반행위규제법’ 위반으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이 법은 마스크 쓰지 않고 지하철을 탈 경우 10만원 과태료를 물게 하는 등의 법조항이다. 뭐든 꿰어 맞추려고 법기술을 부리는 것이지 정상적인 노사관계, 노정관계로 보기 어렵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노조회계 투명성 문제가 국민들로 하여금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기에 좋은 소재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노동조합을 국민들과 고립시켜 때려잡겠다는 적대감 표출 외에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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