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여성인권평화운동가였던 고 김복동 할머니의 흔적이 가득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김복동 할머니의 커다란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해외를 돌며 활동하던 당시 입었던 트렌치코트가 전시돼 있었다. 윤 의원은 지난 16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그 옷을 산 것도 횡령죄로 기소됐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정의연 사태의 본질, ‘2015년 한일합의’
이처럼 윤 의원과 정의기억연대(과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기소는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이른바 ‘정의연 사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고 윤 의원은 봤다.
“저는 2015년 한일 합의가 그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한일 합의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공안이 그들만의 평화를 지켜내기 위해 만든 굉장히 무서운 합의였어요. 그런데 정의연이 그걸 막아냈다고 봅니다. 한국 해방 이후 역사에서 국가와 국가 간 합의를 무효화시킨 건 이게 처음이었을 겁니다. 1965년에 맺은 부당한 한일협정도 그대로 존재하잖아요. 여기에 그 본질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언급된 한일 합의란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과 일본 정부가 맺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말한다. 일본의 하나마나한 사과와 위로금 10억엔을 받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는 굴욕적인 내용이 담겨 크게 논란이 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한일 합의를 무력화했다. 여기에는 한일 합의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들과 정의연이 거세게 반발한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윤 의원은 그 중심에 있었다.
“밀실에서 오랫동안 준비해서 만들어냈던 2015년 한일 합의를 시민단체가 완전 무효화시킨 거였어요. 한일 합의에 의해 설립됐던 화해·치유재단도 결국 해산시켰고요. 정말 끝까지 물고 늘어졌어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재단을 해산하겠다고 직접 발표했는데도 불구하고, 병상에 누워계시던 김복동 할머니는 ‘와르르 와르르 무너져야 내가 믿을 수 있지’라고 말씀하셨어요. 외교부 앞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마지막까지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고요. 그리고나서 화해·치유재단이 법적으로 완전 해산됐습니다.”
윤 의원은 21대 총선에 출마하자마자 보수진영의 공격 대상이 된 것도 자신이 한일 합의를 뒤엎은 장본인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당시 윤 의원을 ‘공금 횡령’과 같은 파렴치한으로 모는 의혹뿐만 아니라, 윤 의원이 2015년 한일 합의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피해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2015년 한일 합의를 앞두고 마치 외교부가 윤미향에게 비공개 정보를 흘렸던 것처럼 보도가 나왔어요. 윤미향이 한일 합의 내용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에게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가 제대로 매듭이 지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2015년 한일 합의는 정상적이었고, 내용도 정당했다고 몰아가더라고요.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하지만 그때 사실을 보도해주는 언론은 거의 없었고, 일방적인 보도만 쏟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윤 의원은 “2015년 한일 합의 이후 정의연과 윤미향은 한미일 3국 동맹 강화와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큰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며 “제가 만약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런 식으로 공격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현재 윤석열 정부도 윤 의원을 노골적으로 악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정의연 사태를 들먹이며 민간단체 보조금 지원 사업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불법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정하게 조치하겠다는 으름장도 놨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앞서 정의연과 윤 의원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윤 대통령은 2020년 검찰총장으로 지낼 당시 정의연을 둘러싼 모든 의혹을 신속하고 철저히 규명하라고 지시했고, 2022년 대선 후보를 지낼 땐 “윤미향과 정의연 사태로 무너진 공정과 상식을 되살리겠다”며 윤 의원과 정의연을 불법집단으로 몰아갔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약화시키고, 윤 대통령이 바라는 맹목적인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그런 프레임으로 정의연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건 일제 강제동원 문제 해법에도 그대로 나오고 있지 않나”라며 “윤 대통령은 판결문을 조목조목 읽어보면서 정대협 운동의 역사를 확인하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에 대해 ‘제3자 변제’라는 굴욕적인 해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일본 전범기업의 사죄도 배상도 없이 면죄부만 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피해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윤 의원도 “그들이 말하는 평화를 위해 ‘피해자는 참고 양보하라’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 대위변제 방법으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한다면 10년 뒤, 20년 뒤에 또 문제가 불거질 거예요. 1965년 한일협정을 맺었지만 80년대 후반, 90년대에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 문제가 다시 터져 나왔거든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에요.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한일 관계는 똑같은 관계를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판을 감수하면서 국회의원이 된 이유
사실 윤 의원의 국회 입성을 두고 진보진영에서도 다른 차원으로 논란이 일었다. 총선 당시 윤 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기 때문이다. ‘위성정당’은 군소정당의 정치 진입을 가로막는 다수당의 횡포라는 비판이 진보진영에서 거세게 나오던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진보진영 일부에선 윤 의원이 일방적으로 공격받던 초기 적극적으로 나서서 함께 싸우고 방어하는데 주저하기도 했고, 나아가 일부는 검찰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왜 윤 의원은 그런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더불어시민당에 합류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던 것일까.
윤 의원은 그것이 처음 찾아온 기회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사실 20대 총선 때에도 얘기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 당시엔 2015년 한일 합의 때문에 ‘위안부’ 운동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었고, 밤낮으로 저 포함 정의연 활동가 6명이 뛰어다니고 있었어요. 그땐 ‘한일 합의를 막아내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출마 제의를 받아도 ‘아닙니다’라고만 했습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윤 의원은 오히려 ‘김복동’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꿈을 꾸고 있었다.
“사실 총선이 있던 2020년은 제가 정대협에서 활동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어요. 그래서 ‘이제 다른 사람에게 운동을 계승하고 나는 안식년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회에 ‘김복동센터’를 세워서 ‘김복동’을 세계적인 평화의 상징으로 만들어보자는 구상을 하고 있었어요. 전쟁에서 살상 무기로 이용되는 다이너마이터를 만들어 팔아서 생긴 이익으로 설립된 노벨재단에서 주는 평화상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현실에 저는 늘 의문을 던졌거든요. 물론 김복동 할머니를 노벨 평화상의 수상 대상자로 추천한 적도 있지만, 그건 세계가 인정하는 평화의 가치에 ‘김복동’을 올리기 위함이었어요. 앞으로는 강대국이 좌지우지하는 평화가 아니라, 전쟁으로 피해를 입거나 차별을 받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인정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김복동’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메이커로 자리매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 구상은 현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윤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면서다. 윤 의원은 “그때 선배들이 저를 더불어시민당 후보로 추천하지 않았다면 국회의원을 하겠다는 꿈조차 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저도 처음엔 위성정당을 비판했어요. 그런데 막판에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생겼을 땐 이에 대항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생각으로 바뀌었어요. 그 과정에서 제가 여성계 선배들로부터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을 받았어요. 그건 저에게 ‘너는 이제 정대협 활동을 그만 해도 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어요. 저에 대한 믿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해왔던 활동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고, 다른 차원의 시민운동을 해나가라’는 멋진 제안으로 들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빠르게 결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보수진영으로부터 ‘반미(反美)주의자’라는 이념 공격을 받고 있던 윤 의원의 국회 입성을 보수진영은 당연히 반기지 않았다. 거대양당에 속하는 민주당도 내심 부담을 느끼긴 마찬가지였다. 그런 만큼 윤 의원의 입장에선, 어쩌면 이번이 절호의 기회였다.
“사실 민주당의 입장에선 정대협 활동가 윤미향을 비례대표 후보로 안기에는 좀 부담스러웠을 거예요. 왜냐하면 2015년 한일 합의 과정에서 ‘위안부’ 운동은 무서운 지점에 서 있었거든요. 2015년 12월 28일 한일 합의가 발표된 바로 다음 날,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일 합의는 미국에게 군사 개입의 문을 열어주었다’라고 얘기했고, 곧바로 사드가 들어왔습니다. 그 다음에 미 국무부 차관보가 ‘한일 합의는 한미일 3국의 동맹을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됐다’고 말해요. ‘윤미향이 왜 공격을 받았느냐’는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동맹을 해치는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은 분단의 구조에서, 우리는 미국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개입하지 말라고 기자회견도 했거든요. 그런 목소리를 계속해서 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도 저를 받아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더불어시민당은 민주당과는 독립된 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가 후보로 선정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그나마 부담이 없는 비례대표 순번 7번으로요.”
‘국회의원 윤미향’이 아직 이루지 못한 꿈
30년 넘게 이어온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을 어떻게 하면 계승·발전시킬 수 있을까. 이건 윤 의원이 국회로 간 이유이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고, 내 기억력이 사라지더라도, 미래 세대가 ‘위안부’ 문제를 독립운동 역사를 배우듯이 배울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세계 각국에서 우리와 교류를 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협력자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런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배정하면 얼마나 멋질까, 그런 꿈을 꿨죠.”
하지만 윤 의원은 “아직 시작도 못 했다”고 밝혔다.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한 지 2년 반이 넘었지만, 그의 몸은 자유롭지 못했다. 터무니없는 혐의를 두고 법정 다툼을 벌이느라 긴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민주당에서도 제명돼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무소속 국회의원’이 됐다.
윤 의원은 마음을 다잡고 환노위와 농해수위에서 진보적인 의정활동을 펼쳐나갔다. 환노위에선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외국인노동자 산재사망이 발생한 사업장의 고용 허가를 제한하는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기도 했다. 또 농해수위에선 정부 물가정책 제도 개편, 계절근로자 문제를 공론화하고, , 동물원과 수족관을 허가제로 변경하고 동물복지 기준을 강화하는 동물원·수족관법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와 용산공원 토양 오염 문제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여성인권과 한반도 평화, 과거사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고 있다.
윤 의원은 “1심 선고 이후 ‘어떻게 해야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내에 할머니들과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깊어졌다”며 “인권과 평화 문제, ‘위안부’ 문제, 기지촌 문제, 베트남 문제, 과거사 문제 등을 해결하는 과정에 제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지금도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보수단체의 방해로 몸살을 앓고 있는 문제도 결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렸다고 윤 의원은 지적했다.
“2020년 총선 전부터 이미 수요시위에는 태극기와 일장기, 성조기를 든 유투버들이 몰려와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어요. ‘위안부 피해자는 가짜다’, ‘왜 일본 정부에 사죄를 요구하느냐’는 식이었습니다. 2015년 한일 합의 이후 정대협 운동이 박근혜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인식되면서 그런 흐름이 생겼어요. ‘친일세력, 극우세력이 일어나고 있구나’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죠. 그런데 정의연 사건 이후로 양상이 좀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오히려 더 당당하게 비하하고 폄훼하는 발언을 하고 있어요. 그들을 제지하는 사람도 사라지고, 오히려 우리가 평화로에서 쫓겨나 수요시위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윤 의원은 “결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 일”이라며 “가해자가 제대로 사죄하고, 배상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제대로 교육하면 이런 건 없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