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모 현 KT 대표가 차기 대표이사 도전을 포기했다. 구 대표는 지난 해 11월 연임 도전 의사를 밝혔고, KT 이사회 내 대표이사 후보 심사위원회에서 차기 대표로 적격 평가를 받았다. 그 이후 구 대표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복수 후보와 경쟁하겠다는 뜻을 밝혀 다시 대표이사 후보 선정 작업이 진행됐다. KT 지배구조위원회와 대표이사 후보 심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지난해 말 최종 후보로 다시 선정됐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노골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절차의 투명성을 문제 삼았고, 이에 따라 세번째로 원점으로 돌아간 선임 절차가 시작됐다. 구 대표는 여기에서도 연임 의지를 밝혔지만 결국 스스로 후보군에서 사퇴했다. 구 대표 본인의 의지가 아님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KT는 이른바 소유 분산 기업이다. '총수'가 있는 재벌 기업이 아니라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달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과거 정부 투자 기업 내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되면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이라는 것이 작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유사한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구 대표 연임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통신산업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다. 정부와 엇서서 영업활동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민간기업인 KT의 대표 선임에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황당한 일이다. SKT나 LG유플러스의 대표 이사를 정부가 선임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과 김태현 이사장은 '소유 분산 기업'은 다르다는 주장을 내놓지만, 여기엔 아무런 근거도 없다.
KT는 민영화 이후에도 줄곧 외풍을 탔다. '정권의 전리품'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야 비로소 자율적인 대표이사 선정이 이뤄졌다. 지금 정부의 행태는 이를 다시 과거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경영진의 문제가 있다면 연기금 등이 주주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건 당연하다. 재벌기업이건 이른바 '소유 분산 기업'이건 마찬가지다. 유독 KT에만 압력을 넣어 경영진 선임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건 위법 소지도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