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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 밀려난 내국인 건설노동자, 이면엔 건설사 ‘이윤 욕심’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⑤] ‘외국인 노동자 불법고용’ 부추기는 정부, 건설사만 웃는다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① [인터뷰]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비정상적 건설업계 놔두고 노조만 때려잡나”
② 타워크레인 월례비, 원인은 건설사에 있는데 노조만 때리는 정부
③ 건설현장 고용문제 외면한 정부, 대신 나선 노조에 이제 와서 “조폭”
④ [인터뷰] 조선소→건설사 관리직→건설노동자, 그가 말하는 ‘건설노조’


지하에서 까지고, 지상에서 남긴다.

건설현장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내국인 노동자가 주로 담당하는 지하 공정 대신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지상 공정에서 이윤을 남긴다는 의미로 쓰인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내국인보다 터무니 없이 낮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까. 꼭 그렇만은 않다. 과거에는 임금 차이가 컸지만,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가 주로 일하는 공정의 단가가 높은 편에 속한다.

그보다는 건설사의 욕심 때문에 가능한 얘기였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려는 건설사가 내국인 대신 외국인 노동자를 마구잡이로 채용하며, 이들의 취약한 처지를 악용해 혹사한 것이다.

현재의 건설현장이 그 결과다. 내국인 노동자들은 점차 건설현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갔고, 이 자리를 대신 채운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도 열악해졌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사의 탐욕으로 시작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싸우는 중이다.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건설노동자들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건물 지상층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가 짓는 정도"
건설현장에 외국인 노동자 늘어난 진짜 이유는?


건설현장 내 외국인 노동자들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건설노동자를 최대 200만명으로 보고 있는데,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건설노동자는 10만 2천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공식 수치로는 잡히지 않는 불법 체류자 인력까지 고려하면 실제 외국인 건설노동자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노조는 약 20~30만명으로 추정하는 중이다.

건설인력 중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은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점차 내국인 노동자를 찾아보기 힘든 공정도 늘어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골조 공사의 경우, 지상층 형틀목수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다.

서일경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법규부장은 "쉽게 말해 눈에 보이는 건물 지상층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가 지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재건축 아파트를 예로 들면 먼저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흙을 파내야 하는데 이 작업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맡는다. 그다음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공사를 시작하는데 그 공정만 내국인이 맡는 것"이라며 "지상에 올라가는 아파트 건물은 외국인 노동자가 짓고 있다"고 말했다.

지하 공정과 지상 공정의 차이는 기술력이 필요한지에 따라 갈린다고 서 지부장은 부연했다. 같은 아파트여도 지하층은 시설과 구조가 각기 달라 형틀목수가 직접 공사 자재를 변형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지상층은 세대마다 구조가 같기 때문에 규격화된 자재를 주문하고 이를 이어 붙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지하층과 지상층 공정에서 사용하는 자재도 달라진다. 지하층은 재래식폼으로 불리는 유로폼으로 거푸집을 만든다. 유로폼은 철근으로 테두리를 두른 나무 합판인데, 좁거나 유선형의 공간에 맞게 나무 합판을 다듬을 수 있다. 지상층은 별도 변형 작업이 필요 없기 때문에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알루미늄폼(알폼)을 주로 쓴다.

알폼이 유로폼보다 더 크고 무거워서 육체적으로는 더 힘든 작업으로 분류된다. 그동안 건설사도 내국인 노동자가 고강도 육체노동을 기피해,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하지만 조금 더 깊숙히 들여다보면, 바로 여기에 본질적인 문제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업별 연령대별 취업자 수 현황, 사업별 외국인 근로자 수 추이 자료 ⓒ민주노총 건설노조

우선 내국인 건설노동자의 연령을 보자. 건설노동자 200만명 중 50세 이상이 절반가량(49.6%)을 차지할 정도로 고령화 수준이 높다. 2030 청년 건설노동자의 비율은 22%에 불과하다. 수치로만 보면, 육체적으로 힘든 공정을 감당할 수 있는 노동자 수가 현실적으로 적다.

가뜩이나 힘든 공정인데, 공기 단축을 위한 건설사들의 무리한 작업 지시까지 더해진다. 건설사들은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저가 경쟁을 벌인다. 일단 최저가로 공사를 따낸 뒤, 실제 공사 과정에서 공기를 단축하며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이윤을 확보한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한수 토목분과위원장은 "결국은 공사비 문제"라고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건설사가 공기를 빠르게 재촉하기 때문에 내국인들은 그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과거에는 한 팀에 내국인이 10명 있었다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내국인을 점차 배제하고 외국인 노동자 숫자를 늘려갔다. 그렇게 팀의 절반을 외국인 노동자가 차지하다가, 이제는 팀의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국인 건설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위협받는 상황이 심해지자, 노조 조합원이 아닌 건설노동자들도 노조에 '불법 고용된 외국인 노동자를 신고해달라'고 부탁해오는 일이 많았다고 강 위원장은 전했다.

하지만 강 위원장은 "우리는 그런 신고는 못 한다고 했다"며 "인간사냥은 하면 안 된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선을 그었다. 강 위원장은 "우리가 노조로 조직돼 힘을 가지고 고용되면 된다. 누구를 쫓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늘려간 건설사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일을 시킨다. 노조 조합원으로 구성된 일명 '노조팀'의 경우 건설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근무일수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할당된 작업을 마치기 위해 촉박한 일정에 쫓겨 위험하게 일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노조팀이 아닌 '일반팀'의 경우 작업 물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는 방식으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쉬는 시간이나 퇴근 시간도 따로 없는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린다.

서 부장은 "아파트 한 층을 작업하는데 정상적인 속도로는 일주일이 걸린다. 정말 빨리 작업하면 3일 안에도 마칠 수 있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하루 만에 끝내라고 한다"며 "사실상 불가능한 일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고강도 노동을 시키면서 하는 것이다. 그러면 새벽 6시부터 일하기 시작해 퇴근 시간도 없이 한 층 작업을 다 마칠 때까지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건설사들이 공기를 당기려 고강도 노동을 시키고, 이를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 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2023.2.21 ⓒ뉴스1

건설현장 문제 개선에 손 놓은 채,
'일손 부족' 건설사 민원 들어주기 바쁜 정부


윤석열 정부는 이런 기업의 탐욕을 제어하는 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일손이 부족하니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풀어달라는 건설사 민원을 적극 수용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말 외국인 노동자 불법 고용이 적발된 사업주에 대해 1~3년간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제한했던 조치를 특별 해제했다.

이에 더해 최근 정부가 발표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에는 외국인 노동자 불법고용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완화하는 제도 개선 방침까지 포함됐다. 출입국관리법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채용하는 사업주는 1~3년간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두는데 이 기간 등을 완화하겠다는 게 골자다. 사실상 정부가 나서서 외국인 노동자를 불법 고용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는 셈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1일 이러한 내용의 대책을 발표하며 "(건설노조가 건설사의) 약점으로 협박하는 빌미가 되는 게 안전 수칙, 외국인 고용, 불법 하도급"이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현재 건설현장에 175만명의 인력이 필요한데, 21만명 정도가 상시적으로 부족하다. 육체적으로 힘든 알폼 같은 경우는 한국인 근로자가 거의 '제로'"라며 "이 부분을 (외국인 노동자로) 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의 인력부족은 건설노조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외국인 불법 고용을 사실상 조장하는 건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건설노조는 우려한다. 정부의 역할은 무작정 외국인 고용을 늘리는 단편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내국인 청년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 위원장은 "정부는 내국인을 어떻게 더 유입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청년들이 건설현장에서 들어와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구조는 만들기 싫다는 것"이라며 "청년 노동자들이 유입되지 않는 구조는 그대로 방치시켜놓고, 당장 인력은 부족하니 외국인 노동자들만 계속 확대시켜 주겠다는 앞뒤 맞지 않는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건설현장은 어떻게 변할까. 

강 위원장은 "이제 건설사들은 내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건설사만 남게 되고, 내국인 건설노동자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정말 위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 모두 근로조건이 열악해져 건설업 자체가 침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일경 부장은 "지금보다 내국인 노동자들이 더 밀려나 대형 아파트 현장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면 노동환경이 더 열악한 중소 건설현장을 찾아가 일해야 된다. 중소 건설현장은 안전한 노동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곳이 많아 높은 비율로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며  "사실상 지금보다 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더 악화된 근로조건으로 일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서 부장은 "대형 현장도 마찬가지다. 대형 현장에서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보장하라고 요구해 온 노조가 사라진다면,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환경도 지금보다 더 후퇴할 것"이라며 "건설업 전반적으로 근로조건이 나빠지기 때문에 내국인 기능 인력도 다른 산업으로 이탈하고, 신규로 유입하는 노동자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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