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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제 침략에 면죄부 준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에 맞선 우리 민족의 빛나는 항쟁을 기억하는 3.1절에 윤석열 대통령은 오히려 침략에 면죄부를 주는 연설을 했다. 국가원수로서도, 3.1절의 의미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는 연설로 역사의식 부재를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 받았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의 무능과 부패로 패망하고 식민지가 됐다는 전형적인 강대국 중심의 인식이다. 당시는 극소수 제국주의 열강이 전 세계 민족을 침탈한 시대였다. 세계 대다수 민족이 무능하고 부패하여 식민지가 된 것이 아니다. 안으로 자국 민중을 수탈하고, 밖으로 전쟁을 벌이며 식민지를 강점한 제국주의의 폭력과 탐욕의 결과다.

침략국인 일본에 대한 규정은 몰역사를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단언했다. 일본 권력층이 침략을 반성하고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국민 중 윤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북핵 위기와 중국 위협론을 앞세워 군사적 대외진출의 길을 다시 걸어, 이제 자위대는 해외 군사행동을 위한 법적, 물적 기반을 갖췄다. 윤 대통령은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본 권력층과 어떤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인가. 자기 힘으로 서서 외교를 펼치지 못하고 강국에 기대고 빌붙는 행태야말로 역사적 교훈을 망각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3.1절의 의미와 남은 과제조차 제대로 담기지 못했다. 3.1절은 단지 1919년의 만세운동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곡식과 지하자원을 빼앗고, 우리말글과 성씨를 금지하고, 납치와 강제근로는 물론 성노예와 생체실험까지 자행한, 인류사 최악의 제국주의에 고통받으면서도 끝내 광복을 맞았다. 1910년 일제에 강점됐지만, 35년 간 불굴의 자주독립 항쟁을 벌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총을 들고, 기금을 내고, 외교와 교육의 방법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2천만 동포가 함께 싸웠다. 3.1절은 민족의 빛나는 투쟁을 기억하고 계승하며 이를 원동력으로 미래를 다짐하는 날이다. 윤 대통령 기념사에서는 민족사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이른바 ‘한일관계 개선’이 이런 몰역사적인 인식에 근거한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피해자들과 시민사회가 일제히 규탄하는 대일 굴욕외교는 민족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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