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윤석열의 3.1절 친일발언이 수학적으로 삐리리 짓인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선조들의 위대한 조국 해방 투쟁을 기리는 3.1절에 온갖 친일 발언을 늘어놓으며 물의를 빚었단다. 그 내용이야 독자 여러분들도 익히 알고 있을 터이나, 간단히 요약하자면 요지는 두 개다. 첫째, “일본은 협력 파트너”이며 둘째, “우리가 준비를 제대로 못 한 바람에 국권을 상실했다”는 것.

내 살다 살다 때린 놈이 아니라 맞은 분한테 “네가 준비를 잘 못해서 처맞으셨어요”라고 말하는 대통령은 처음 봤다. 진짜 기분 같아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잔뜩 팬 다음에 “니가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처맞으셨어요”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은 기분이다.

문제는 이게 민족 감정적으로도 멍멍이 소리이긴 하지만 경제학적으로, 또 수학적으로도 진짜 삐리리한 짓이라는 데 있다. 여기서 ‘삐리리’는 매우 심한 욕설을 묵음 처리한 것임을 분명히 한다. 즉 그 삐리리 안에 독자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온갖 욕설을 집어넣어도 문장이 성립한다는 이야기다.

그랜드 바겐은 했고?

우선 그 이야기가 얼마나 삐리리한 소리인지를 점검하기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유력 대권 주자 시절이었던 2021년 여름 기자회견에서 뱉은 이야기를 살펴보자.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들이 한일 관계 전망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랜드 바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당시에도 내가 이와 관련한 칼럼을 쓴 기억이 있는데, 그의 헛소리가 하도 명문장(!)이라 당시 기사를 끌어와 다시 인용해 본다.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윤석열 씨, 위안부 문제를 ‘그랜드 바겐’ 한다고요?

한일관계 개선 방안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 정부가 정권 말기에 이걸 어떻게든 수습해보려고 하는데 이젠 잘 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역사를 정확하게 기억하기 위해서 그 진상을 명확히 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한일 관계는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서는 실용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한일 안보협력, 경제·무역 문제, 이런 현안들을 전부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그랜드 바겐을 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뻘소리의 삐리리함은 당시 칼럼에서 다 지적했으니 오늘은 생략하겠다. 내가 진짜 묻고 싶은 말은 3.1절에 항복 선언에 가까운 그 멍멍이 소리를 잔뜩 늘어놓은 뒤 뭘 얻은 게 있기는 하냐는 거다.

‘그랜드 바겐’에서 ‘바겐’ 뜻 모르냐? 영어로 ‘흥정’이라는 뜻이다. 뭘 줬으면 받은 게 있어야 흥정이 성립한다는 이야기다. 일국의 대통령이 과거 최악의 군국주의 국가에 침탈을 당한 그 쓰라린 역사를 바겐세일 하듯 3.1절에 팔아먹었는데, 그래서 얻은 게 당최 뭐냐? 아, 일본 언론이 윤 대통령의 3.1절 발언을 높이 평가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게 이 그랜드 바겐을 통해 얻은 소득이냐?

윤 대통령의 저 발언으로 대한민국이 얻을 국가적 실익은 사실상 하나도 없다. 기껏해야 경색된 한일관계가 풀리는 정도인데, 지난 수 년 간 아무리 한일관계가 경색됐어도 우리나라에 불편한 점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국가적 자립 기반이 마련됐을 뿐이다.

사실 동아시아 분업체계는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확립돼 있어 거기서 먼저 튀어나가는 쪽이 불리하다. 일본의 무역분쟁 시도가 삐리리한 짓으로 마무리된 이유다.

반면 윤 대통령의 저 삐리리한 발언으로 일본은 얻은 것이 무지하게 많다. 일단 과거사를 사과 없이 청산하는 일에 엄청난 명분을 얻었다. 경제적으로도 지들이 먼저 시도했다가 거의 폭망한 한일 무역분쟁에서 적정한 퇴로를 마련했다. 군사 대국으로의 복귀를 꿈꾸는 일본 우파의 희망도 한층 더 실현 가능한 일이 돼 버렸다. 이게 무슨 그랜드 바겐이냐? 일방적인 퍼주기지.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4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03.01. ⓒ뉴시스

경제학에는 ‘공갈협박범의 역설(The Blackmailer’s Paradox)’이라는 게임 이론이 있다. 2005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아우만(Robert Aumann)이 창안한 이론이다. 그런데 이 이론을 해석한 이스라엘의 수학자 하임 샤피라(Haim Shapira)는 이 역설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한다.

①비합리적인 상대에 맞서 합리적으로 싸우는 것은 종종 비합리적이다.
②반면 비합리적인 상대에 맞서 나도 비합리적으로 싸우는 것은 종종 합리적이다.

이 두 명제를 꼭 기억하고 다음 내용을 읽어주시기 바란다. 공갈협박범의 역설이란 이런 내용이다.

관순이와 아배 두 사람 앞에 누군가가 나타나 10억 원이 든 가방을 던진다. 그리고 “이 10억 원을 1시간 안에 둘이 나눠가져라. 단, 한 시간 안에 두 사람이 합의를 못하면 이 돈은 내가 다시 가져간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너무 쉬운 문제 아닌가? 둘이서 5억 원씩 나눠가지면 그만인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상식적이며 협동적인 관순이는 당연히 “우리 5억 원씩 나눠 가져요”라고 제안을 할 것이다. 하지만 사악한 아배는 “웃기지 마, 내가 9억 원. 네가 1억 원, 이렇게 나눠. 난 여기서 1원도 양보 못해. 협상을 깨려면 깨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라고!” 이러면서 버틴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성실하며 협동적인 관순이가 이 제안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약속된 협상 시간은 고작 1시간. 이 안에 협의를 이루지 못하면 1억 원도 건지지 못한다. 결국 관순이는 설득에 설득을 거듭하다가 아배가 꿈쩍도 하지 않자 양보를 한다.

사악한 공갈협박범 아배는 9억 원을 집어가며 희희낙락한다. 이게 바로 협상 테이블에서 사악한 자들이 종종 더 큰 이유를 얻는 이유다. 이 이론의 이름이 ‘공갈협박범의 역설’인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이 이야기가 한일 관계에서 왜 중요하냐면, 역사적으로 한일 관계에서 일본은 늘 비합리적이고 사악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상대도 ‘5억씩 나눠 갖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우리도 머리를 쓸 이유가 없다. 우리는 원래 협력적인 세력이니 그렇게 나눠가지면 된다. 이때에는 당연히 그랜드 바겐이건 뭐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일본은 그런 합리적 상대가 아니다. 이런 상대 앞에 미래 협력이 어쩌고 선한 협력이 저쩌고 하면 나만 망한다. 샤피라의 첫 번째 수학적 전제, “①비합리적인 상대에 맞서 합리적으로 싸우는 것은 종종 비합리적이다”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비합리적 상대와 싸울 때에는 나도 각 딱 잡고 온갖 험한 짓을 다 할 각오를 해야 한다. “뭐요? 9억 대 1억? 웃기고 자빠졌네,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그 1억 안 받고 말아요!”라고 비합리적으로 버틸 힘이 있어야 한다.

수가 틀리면 판을 깨버릴 수도 있다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샤피라의 두 번째 수학적 전제, “②비합리적인 상대에 맞서 나도 비합리적으로 싸우는 것은 종종 합리적이다”가 적용돼야 할 때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을 대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자세는 이것이다. 일본과 판을 깨버릴 수도 있다는 굵직한 배짱이 필요하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배짱을 부리기는커녕, 지가 먼저 “어이쿠 일본님. 우리가 1억은 가질 자격이 있습니까? 9억 9,000만 원대 1,000만 원으로 나누시죠. 물론 우리가 1,000만 원 가져가겠습니다”라며 주인 만난 강아지마냥 꼬리를 치고 있다. 에라이, 이런 삐리리한 짓을 저지르는 대통령이라니, 당신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냐, 일본 수상 비서냐? 진짜 쪽팔려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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