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가 최근 추진되고 있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분통을 터뜨리며 한 말이다. 지난달 28일 목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김 대표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이루어지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식도암으로 식도를 절개한 뒤 위장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방사선 치료로 폐까지 일부 절개하여 목소리를 내기 힘든 그였지만, 2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다.
수많은 암환자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그였다. 건강보험과 보험회사에서 더 이상 입원비가 나오지 않거나 수술·항암치료 후 돈이 안 된다는 이유 등으로 병원에서 쫓겨난 암환자들과 협의회를 만든 그는, “저처럼 국가와 사회로부터 대책 없이 버려지는 암환자가 없도록 사진으로 남겨 달라”는 한 30대 젊은 암환자의 마지막 부탁을 잊을 수 없어 지금까지 협의회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도 보험회사에서 당연히 돈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나오지 않아 괴로워하는 암환자 가족을 상담했다. 김 대표는 실손보험 청구가 자동 전자전송식으로 간소화될 경우 민간보험사들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민간보험이 취약한 구조의 공적 의료보험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미국식 의료보험체계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이 같은 우려는 김 대표 혼자만의 우려가 아니었다. 보건의료 분야 여러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대다수 의료계까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우려가 컸다.
윤석열 대통령 자료사진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2.07.08. ⓒ뉴시스
밀어붙이는 윤석열 정부 “무조건 GO!”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민간의료보험 가입자가 사전에 동의만 한다면 진료비 계산서·영수증과 진료비 세부산정내역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병원이 보험회사에 (직접 또는 제3기관 등을 통해) 전자정보 형태로 자동 전송토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진료비용이 전자정보 형태로 자동 전송된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보험금 청구는 보험가입자가 선택적으로 병원 진료비를 보험사에 청구했다면, 이는 모든 진료비가 자동으로 청구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모든 진료 기록이 자동으로 민간보험회사에 전산화되고 축적되어 활용될 수 있는 제도인 셈이다.
이는 보험업계의 숙원 사업 중 하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으나, 의료민영화에 대한 우려로 가로막혔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에도 슬쩍 논의됐었으나 추진되진 못했다. 의료계가 크게 반발했다. 의협 등 5개 단체는 2021년 5월 공동기자회견 열고 “보험가입자의 편익을 빙자한 민간보험사의 이익추구법”이라며 반대했다. 도수의학회도 같은 해 9월 성명에서 “보험사들은 축적된 개인 의료정보를 토대로 쉽사리 보험 가입을 제한하거나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는 식으로 악용할 가능성 크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된다. 20대 대선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윤석열 후보의 공약 중 하나로 꼽혔고, 윤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의료계의 반발이 계속되자,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월 2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변화 중 하나가 각종 규제 타파하는 것”이라며 의료계가 계속 반대하면 의료계와의 논의 없이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성 의장은 의협 회장을 집무실로 불러 “더 이상 타협은 없다”며 “법안은 무조건 GO!”라고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후 문재인 정부 때는 반대하던 대한한의사협의회가 갑자기 찬성 쪽으로 입장을 바꾸고, 의협도 무조건 반대는 아니라는 취지의 언론보도가 이어지면서 “이번엔 다르다”는 분위기 형성됐다. 8자 협의회 논의를 통해 정하겠다고 했으나, 구성을 보면 도입 쪽으로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업계는 “청구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청구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간보험회사 40여 곳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사단법인 보험연구원은 ‘실손의료보험 미청구 실태 및 대책’ 보고서에서 이 같은 이유 들며 “요양기관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전산으로 청구하도록 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 인용한 설문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연구팀은 “많은 실손의료보험 피보험자는 보험금 청구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을 소모하게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며 설문조사 결과를 담았는데, 조사 결과는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미청구 이유’를 묻자, 응답자 중 90%는 “소액이어서”라고 답했다. “번거로워서” 청구하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겨우 5.4%였다. “시간이 없어서” 또는 “진단서 발급 비용 등이 지출되어서”라고 답한 응답자도 각각 2.2%, 1.9%에 불과했다.
보통, 건강보험 가입자가 민간보험에도 가입하는 이유는 암과 같은 큰 병에 걸렸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병원에 갈 때마다 소액의 의료비를 청구하기 위해서인 경우는 잘 없다. 오히려 자잘하게 청구하다가 정작 필요할 때 보험금이 나오지 않을 것이 우려돼 청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를 정반대로 해석하여 엉뚱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1~2% 비지급률은 눈 가리기?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보험 업계의 “환자의 보험금 지급 편의를 위해 청구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믿어도 될까.
환자단체나 보건의료단체 등은 그런 순수한 의도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이 법이 통과되면 환자들이 더 많은 보험금을 받는 게 아니라 결과적으로 더 적게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보험회사들이 전자정보 형태로 보험소비자의 의료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활용해 갱신 시 보험료 인상 또는 갱신 거절 그리고 신규가입 거절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김성주 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도 “천 건의 소액청구는 다 자동으로 지급하고, 1억 원 상당의 고액청구 1건을 심사하여 거절하면, 지급률은 어떻게 되겠나? 99.9%다”라며, 민간보험회사가 제도를 악용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생명보험협회나 손해보험협회에서 소비자포털을 통해 공개하고 있는 업계 평균 부지급률을 보면 0~2% 수준이다. 이것만 보면 98~100%를 지급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현실은 조금 다르다. 협회에서 공개한 부지급률은 청구건수와 지급건수로만 따진 것이기 때문이다. 보험회사에서 가입자에게 지급한 지급금액을 따로 공개하고 있긴 하지만, 청구된 금액은 공개하고 있지 않아, 총 얼마나 미지급됐는지 알기 어렵다.
국민건강보험과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19년에 낸 ‘2017년 한국의료패널 심층분석보고서 – 건강보험 보장성 및 민간의료보험 중심으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민간의료보험 가입 현황은 이와 같다. 한국의료패널은 정부 승인 지정통계조사 자료로 전국 7천여 가구, 2만여 명의 가구원에 대하여 사회경제적 특성과 연간 의료이용 형태와 의료비지출 수준, 일반의약품 복용, 민간의료보험, 건강수준, 건강형태 등을 포괄하는 조사내용을 담고 있다. (p177)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정책연구원
가입자, 전 국민 80% 육박 건보보다 2배 월 평균 보험료 보장률은 10% 수준...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보건의료·환자 단체의 불신은 막연한 것이 아니다. 민간보험회사들이 자랑하는 ‘지급률’이 아닌 ‘보장률’로 봤더니, 민간보험회사는 정작 가입자들이 필요할 때 충분한 도움을 준다고 보기 어려웠다. 보장률이란, 환자가 내야 하는 의료비용 중 보험을 통해 얼마까지 보장되는지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의료패널 연구진이 발표한 ‘2017년 한국의료패널 심층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민간보험의 평균 보장률은 고작 10% 수준이었다. 그런데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78.7%에 달했고, 가입자는 1인당 평균 2.2개 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해 있었으며, 1인당 매달 평균 13만1995원을 납부하고 있었다.
반면, 2017년 기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1인당 월평균 보험료는 4만8천원이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59.6%다. 같은 해 OECD 38개국 평균 보장률이 73.7%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공적 의료보험 보장률은 형편없는 수준인데, 민간의료보험의 보장률은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인 것이다. 민간의료보험 가입자가 80%에 육박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내는 1인당 평균 보험료(4만8천원)보다 민간보험에 내는 1인당 평균 보험료(13만2천원)가 두 배 이상 많은 점을 생각하면, 민간보험이 과연 애초 의도대로 공적 의료보험을 제대로 보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야금야금 의료민영화
최근 1세대 보험(~2009년)과 2세대 보험(2009년~2017년) 가입자들이 보험료 인상 폭탄을 맞는 이유도,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보험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보험가입자는 노후를 생각해 60대까지 보험금을 꼬박꼬박 냈는데, 정작 나이가 들어 병원에 갈 때가 되니 월 수십만 원 상당의 보험금 폭탄을 퍼부어 조건 좋은 보험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보건의료·환자 단체는 전산정보 자동 청구 형태의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도입되면, 이 같은 일이 더 자주 일어날 것으로 본다. 또 궁극적으로는 민간시장 확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보험사들이 축적한 의료정보를 상품 개발에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보험과 민간보험은 결국 서로 영역을 빼앗는 구조이기 때문에, 민간보험의 확장은 곧 공보험인 건강보험의 축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흐름을 시민사회에서는 “의료민영화”라고 부른다. 의료민영화는 윤석열 정부에서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정책을 두고 “인기영합적 포퓰리즘”이라며 폐기를 선언했다. 동시에 정부·여당은 민간보험회사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각종 사업을 곳곳에서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에 이은 강원도 영리병원 도입 시도, 민간보험사 건강관리서비스 허용 시범사업, 공공의료데이터 민간개방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공보험을 억누르고, 민간보험시장 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풀어주며 의료민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이같이 민간보험이 확대되고 공보험이 점차 축소될 경우 일어날 일을 우려했다. 그는 “공보험 보장률이 떨어지다 보면, 국민연금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라며 “지금 이렇게 돈을 많이 내는데 소득대체율(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도 낮고 이럴 거면 국민연금 내기 싫다는 여론이 형성되듯, 건강보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갈수록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건강보험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현실적인 우려다.
미국 연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의료보험 사이트에 게시된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중요한 이유’ ⓒHealthCare.gov
미국식 의료민영화란
과거 정부 때부터 진행된 의료민영화의 큰 흐름을 보자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결국 ‘미국식 의료민영화’로 향하는 관문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5년 보건의료단체연합이 확보해 공개한 삼성생명 문건(민영건강보험의 현황과 발전방향)을 보면, 삼성생명은 민간의료보험 영역을 넓혀가면서 공보험인 건강보험과 경쟁한 뒤 최종적으로 건강보험을 민간보험이 대체하는 목표를 뒀다. 공보험을 민간보험으로 대체하는 미국식 의료민영화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의료비 지급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며 병원과 보험사가 환자를 거치지 않고 의료비용을 청구하고 지급하는 안을 제시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도 결국에는 병원이 갖고 있는 환자의 진료기록을 환자를 통하지 않고 자동으로 보험사에 보내는 형태이기 때문에, 이와 무관치 않다.
의료민영화의 대명사 미국은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의료비용이 압도적으로 높다. 미국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 웹사이트에서 보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을 경우 부러진 다리를 치료받는 데 최대 7500달러(975만원)의 비용이 든다. 3일 입원 평균 비용은 약 30000달러(3900만원)에 이르며, 종합적인 암 치료에는 수십만 달러가 든다. 이에 의료보험 가입이 반드시 필요한데, 의료보험 비용도 만만치 않다. 2020년 기준 1인당 민간의료보험 월 평균 보험료는 456달러(59만원)에 이른다. 보장률이 높은 보험에 들려면 월평균 보험료가 100만원 가까이 치솟는다. 저소득층과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공보험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60% 이상의 국민이 이용해야 하는 민간의료보험 비용은 살인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23년 2월 19일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110만명을 넘어섰다. 치명률은 1.09(한국의 약 10배)다. 전진한 국장은 “전국민건강보험이 없는 미국에서는 코로나19 치료비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본인부담으로 청구돼, 미국인들의 상당수가 증상이 있어도 치료는커녕 검사도 꺼렸다”라며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 사망자가 나온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김성주 대표는 암환자인 회원들을 만나면 “(국가에서) 건강보험료 올리자고 하면 우리는 저항하지 말자”고 한다. 그는 “우리가 혜택을 받기도 했지만, 이거 잘못되면 우리 건강보험 이용했던 사람들은? 우리 아이들은? 기자님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건데?”라며 “우리가 좀 힘들더라도 건강보험 재정 어떻게든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