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소비심리가 위축되자 유통업계에서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 잡기에 나서고 있다.
구독 서비스의 품목도 기존 유제품 위주에서 커피, 계란, 야채, 기호식품, 신선신품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성용품, 세탁 서비스 등 영역까지 넓어지면서 일상 전반에 확대되고 있다.
올해 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소비 동향을 나타내는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103.9로, 전월보다 2.1% 감소했다.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1.9%), 의복 등 준내구재(-5.0%) 판매가 모두 줄어들었다.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째 이어진 하락세다.
물가 인상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해석된다. 6일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4.8% 올랐다. 1월에 비해 오름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축산물, 석유류 제품을 제외한 모든 품목이 상승세를 유지했다. 특히 가공식품의 경우 빵은 17.7%, 스낵과자는 14.2% 등으로 크게 올라 10.4% 상승률을 기록했다.
위축된 소비심리에 유통업계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유통 단계를 줄여 저렴하게 상품을 공급받을 수 있고, 상품을 비교·선택해야 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을 내세우고 있다. 업체 입장에서는 구독을 통해 소비자들을 묶어두는 '락인 효과'를 노릴 수 있다.
특히 충성 고객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의 독특한 구독서비스가 돋보인다. 커피 유통 스타트업 스프링온워드는 사무실을 대상으로 한 커피 구독과 커피 머신 렌탈 서비스 '원두데일리'를 통해 B2B(기업간 거래) 커피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원두데일리는 커피리브레, 테일러커피, 부산 모모스 커피 등 전국의 유명 로스터리 업체뿐만 아니라 유라, 프랑케, 모닝캡슐 등 프리미엄 커피 머신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맺고 사무실에서 자주 소비되는 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전문 바리스타, 큐그레이더(원두감별사)가 있는 로스터리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직접 원하는 원두의 맛과 향을 디자인할 수도 있다.
점심 구독 서비스 위잇딜라이트는 합리적인 가격에 한 끼를 제공하고 있다. 위잇딜라이트를 운영하는 위허들링은 해썹(HACCP) 인증 식품 제조사인 '푸드 파트너' 30여 곳의 전문 MD(상품기획자)가 만든 샐러드, 밥, 샌드위치, 면류 등을 제공한다. 위허들링은 직접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대신 배송과 CS(고객 서비스)를 맡는다.
신선한 계란을 매일 받아 볼 수 있는 계란 구독 서비스도 있다. 월간계란은 새벽에 알을 수거한 후 다음 날 아침에 계란을 받을 수 있도록 배송하고 있다. 제주도의 경우 오후 4~5시면 받을 수 있고, 기타 섬 지역은 2일 후면 받아볼 수 있다. 특히 케이지 프리(Cage Free)에 해당하는 평사방사로 키운 닭의 달걀을 사용하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평사방사는 좁은 철창의 케이지가 아닌 실내 평지에서 사육하는 환경을 말한다.
여성용품, 세탁, 꽃도 구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생리대 브랜드 라엘은 '라엘 정기 구독 서비스'를 통해 생리대 등 페미닌 케어 제품뿐 아니라 건강기능식품까지 매월 원하는 날짜에 배송해주고 있다.
비대면 모바일 세탁서비스 세탁특공대는 합리적인 가격의 옷·신발 패키지와 생활 빨래(30L), 침구류 등이 포함된 생활패키지 등으로 구성된 월간 구독서비스를 출시했다. 옷·신발 패키지는 무료 배송 1회를 제공하고, 8벌 세탁 시 최대 50% 가격을 할인해 준다. 생활 패키지 또한 무료 배송 1회를 제공하며, 이불 등 3개 세탁 시 최대 51% 할인받을 수 있다. 할인과 무료 배송은 세탁물을 많이 맡길수록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온라인 꽃 주문·배송 서비스를 하는 꾸까는 2주에 한 번 원하는 꽃을 보내주는 정기구독을 처음 도입했다. 플로리스트가 디자인한 꽃다발 라인, 여러 가지 품종이 조합된 파머스 믹스 라인, 단품 꽃으로 된 파머스 싱글 라인으로 구성됐다. 당일 수급된 꽃을 다음 날 받아볼 수 있으며, 제품 수령 주기와 날짜의 조율도 가능하다.
롯제제과의 월간 과자 ⓒ홈페이지 캡쳐
오프라인 유통의 강자인 대기업들도 구독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2020년 5월 업계 최초로 VIP 고객을 대상으로 과일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일반 고객을 상대로 반찬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품목을 확대했다.
롯데제과도 지난 2020년 6월 제과업계 최초로 과자 구독 서비스인 '월간 과자'를 선보였다. 1, 2차 선착순 모집을 실시해 조기 완판되는 등 인기를 얻었으며, 현재는 월 정기 구독자가 평균 3,000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롯데제과는 빵 구독 '월간생빵'과 가정간편식 정기 구독 서비스 '월간 밥상'을 출시하며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있다.
하림의 반려견 사료 브랜드 하림펫푸드도 정기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특히 지난 2021년 2월부터 '가장 맛있는 30일' 프리미엄 휴먼그레이드급(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재료 등급을 사용한) 사료에 대한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작해 고급화 전략을 펴고 있다. 하림펫푸드에 따르면 해당 제품의 매출 약 40%가 정기 구독서비스에서 나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비스를 론칭한 2021년 대비 구독자가 97% 이상 증가했다.
주류도 구독서비스가 생겼다. 전통주가 온라인 배송이 가능해지면서다. 주류법상 주류유통은 반드시 관련 면허를 가진 도매업자를 거쳐야 하지만, 지난 2017년 '주류 고시 및 주세사무처리 규정'이 개정되면서 일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전통주를 판매할 수 있다.
전통주 구독플랫폼인 술담화가 지난 2019년 시작한 전통주 정기 배송 서비스 '담화박스'는 론칭한 지 4년 만에 구독자 1만3,000명을 기록했다. 담화서비스 구독자는 한 달에 한 번 전통주 소믈리에가 엄선한 전통주 2~4병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4월에는 증류주까지 포함해 품목을 늘렸다.
구독 서비스 시장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1년 19조5,000억원 수준이었던 구독서비스 시장은 2016년에는 25조9,000억원, 2020년에는 40조원을 돌파했다. 오는 2025년에는 100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