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엄청나의 먹어야 산다] 식량주권이 빠진 양곡관리법 개정 논쟁

윤석열 정부는 국민의 주식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국회 본회의 처리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공공연히 거론되더니 결국 기존 민주당의 개정안보다 훨씬 후퇴한 중재안까지 나왔다. 있으나마나한 법안이라고 혀를 차기도 하고, 개정안을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밥을 천대하는 이야기들에 기가 막힌 것이 여러 번이지만, 그럼에도 이것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우리 농업에서 쌀이 가지는 위상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제정된 ‘양곡관리법’

식민지 조선이 일제에 의해 해방되었을 때, 남한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다. 식민지 시기 일제에 의해 경제가 성장하고 근대화의 토대가 마련됐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실증적 자료를 분석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농업분야는 이것을 분석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일제 강점기의 비극은 일제가 쌀을 수탈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역사이기 때문이다.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이 대표적이다.

허수열 교수가 실증 통계를 기반으로 작성한 미곡 생산량 통계를 보면 일제 식민지 시절의 낮은 생산량을 해방이후 우리 민족 스스로 끌어 올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는 우리의 쌀을 수탈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었지 우리의 쌀산업을 선진화하는 것에는 전혀 기여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이다.

한국(남한)의 미곡 생산량(1910~2009년 ⓒ출처 : 일제초기 조선의 농업 p.351, 허수열, 한길사

해방 직후 미국의 잉여농산물인 밀로 허기를 해결해야 했을 정도로 심각한 식량사정은 양곡관리법 제정 등과 같이 국민의 식량기반을 유지하고자 하였던 우리정부의 의지로 표출되었다. 양곡관리법은 정부 수립직후인 1948년 10월 식량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제정된 양곡매입법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이후 쌀(양곡)의 효율적인 관리와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목적으로 한 현재의 양곡관리법이 1950년 2월 제정되어 18차례의 일부개정과 2차례의 전문개정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논란인 자동시장격리제와 관련한 문제는 2020년 쌀 변동직불금제도가 폐기되며 시작됐다.

학계와 정부, 국회의 합의 속에 등장한 시장격리제도

2020년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부와 학계의 합의 속에 변동직불금 제도가 폐지됐다. 변동직불금은 쌀 생산비를 반영해 국회가 정하는 ‘목표가격’에서 ‘수확기 쌀값’을 뺀 금액의 85%를 정부가 농가에 지급하는 보조금이었다. 쌀에만 지급되던 직불금을 전체 농민들의 공익적 활동에 대한 보상인 공익직불금 제도로 변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의 반발과 우려는 매우 컸다. 변동직불금제도를 통해 쌀값이 폭락하더라도 정부가 일정정도 가격을 보전해 주었는데 이것이 없어지면 쌀값이 폭락했을 때 쌀농가의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국회는 자동시장격리 제도를 농민들에게 약속했다. 쌀재고량이 많거나 쌀값이 폭락하였을 때 정부가 시장격리를 통해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자동시장격리제를 도입하는데 여야가 합의하고 농림축산식품부도 동의했었다.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반대하며 전국을 수차례 돌며 농민단체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한 농림부 김인중 차관은 법 개정 당시 식량정책관으로 국회에 나와 이것이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제도라고 수차례 설명한바 있다.

쌀 변동가격제도와 시장격리제도 ⓒ필자 제공

문제는 이렇게 합의되어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의 내용을 정부가 제대로 지키지 않은 데 있다. 2021년 쌀값 폭락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시장격리제는 작동하지 않았다. 쌀은 우리 국민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재이다. 조금만 부족해도 가격이 오르지만, 조금만 남아도 매우 큰 폭으로 가격이 폭락한다. 하기에 2021년 쌀값이 폭락하는 상황에서도 시장의 쌀 재고를 조정하는 시장격리제가 작동하지 않은 것은 큰 폭의 가격 폭락을 부르는 원인이 된다. 또한 재고량의 증가는, 2020년 56일간의 장마로 인해 흉년이 들자 정부 재고미를 6차례에 걸쳐 방출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과도한 방출이 큰 영향을 미친 결과다. 실제 2021년 8월 정부의 과도한 방출로 예년에 비해 40%이상 시중재고가 늘어나게 되기도 했다.

급기야 농민단체들은 당시 농림부 김현수 장관을 직무유기로 고발까지 하며 시장격리를 요구한다. 정부의 이러한 때늦은 시장격리는 결국 통계 이래 최대치의 쌀값 폭락 기록을 낳게 된다. 생산비가 역대급으로 폭등한 상황에서 벌어진 쌀값 폭락은 농민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쌀 정책 실패가 낳은 양곡관리법 개정 논란

방귀 낀 놈이 성내는 것이 딱 지금이다. 쌀 관련 통계역사를 갈아치운 쌀값 폭락사태 속에서 정책실패의 책임을 져도 시원찮은 윤석열 정부는 되레 큰소리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일부 문제만을 부각하여 농민과 농민, 농민과 국민, 정치권의 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식량주권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국제곡물가 속에서도 그나마 안정적으로 식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래도 90%가 넘는 쌀 자급률 덕이다.

하지만 정부는 9월 45만톤의 시장격리 발표 이후 어떤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마치 이것이 정부의 역할을 다 한 것이라는 듯 쌀 대책을 내놓으며 확성기를 불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쌀값은 회복되지 않았다. 정부 발표 이후 단 한차례 상승했을 뿐이다. 쌀값의 등락을 3%대로 유지하는데 효과적인 시장격리제도는 이미 크게 폭락한 쌀값을 회복시키지 못했다. 2022년 정부의 공공비축미 가격은 전년보다 12%이상 크게 하락했다.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2016년 수준의 공공비축미 가격으로 후퇴하였다. 아마 정부관료의 월급이 이렇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국민들은 공정무역을 하며 제3세계 국민들과의 거래에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데, 우리 정부는 자국의 농민들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 적어도 ‘공정한’ 정부라면 헐값에 쌀을 사들여 나라의 곳간을 채우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2 에이팜쇼(A FARM SHOW) 창농·귀농 고향사랑 박람회'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2.8.24 ⓒ뉴스1


우리쌀이 남는다면서 수입쌀 구매에 사력을 다하는 정부

자국의 쌀은 남아돈다고 선전하면서 쌀을 수입하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국제 곡물가 인상을 이유로 2023년도 수입쌀에 대한 예산은 2022년 4,326억에서 2023년에는 5,549억으로 1220억이나 증액되었다. 자국 농민들의 쌀은 싸게 사면서 수입쌀은 비싸게 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뿐만 아니다.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국영무역으로 수입되는데 TRQ(저율할당관세)로 수입해오는 5개국 중 미국쌀을 사오기 위해 매우 이례적인 입찰공고를 내기도 한다. 미국쌀을 사기위해 8번 입찰공고를 내고 그래도 사지 못하자 특별공고를 통해 9번 만에 목표한 13만톤 중 1만톤 정도를 사들인 것이다. 바로 쌀이 남아 돈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를 비판하는 2022년 12월 29일에 벌어진 일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논란의 핵심은 식량주권과 농민생존권

식량이 무기가 되는 시대다. 식량주권을 고민하는 정부라면 마땅히 양곡관리법과 관련한 논쟁의 중심에는 식량주권이 있어야 한다. 양곡관리법을 바로 세워 우리의 식량주권을 튼튼히 하는데 그 논쟁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소모적 논쟁, 농민의 영농의욕을 저하시키는 정치싸움의 장으로 만들어 기후위기 식량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세계는 자국의 식량을 평균적으로 100% 자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후퇴한다. 그나마 쌀이 90%가 넘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100%가 되고 있지 못하다. 100%가 넘은 것은 지난 15년 단 5차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쌀자급률 추이, 단위 % ⓒ농림부

쌀이 남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쌀이 부족한 것이다. 2023년 봄이 왔지만 농촌은 참담하다. 쌀값 폭락에서 시작된 농산물 가격은 연이어 폭락하고 있다. 농업용 전기를 비롯해 각종 생산비는 2배 이상 급등했다. 해방 이후 80%가 넘는 농민들이 이제 3%도 남지 않았다. 농민이 없는데 식량주권이 어찌 지켜지겠는가 싶다. 그런데도 정부는 쌀값을 폭락시켜 쌀농가들을 다른 작물로 옮겨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작물의 가격도 쌀가격 수준으로라도 안정시켜놓고 농사를 유도한다고 해야 맞는 것이 아닌가. 한국농업을 지탱하고, 국민의 주식인 쌀이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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