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고발 증언대회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2023.3.8 ⓒ뉴스1
“원청사, 정신 차려야 합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호통을 쳤다. 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대한전문건설협회가 개최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 고발 증언대회’에서였다.
최근 ‘건폭’ 잡기에 여념이 없던 원 장관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노조’가 아니라 ‘원청’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된 걸까?
원청 책임 꾸짖더니 급기야 원청의 직고용까지 언급한 원희룡 불법 다단계 하도급도 없애자고 당부
건설노동자의 임금체불도, 연장노동도, 산재사고도,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거기엔 늘 원청사(종합건설사)가 있었다. 하청업체(전문건설업체)는 원청사가 돈을 주지 않아서 줄 수 있는 임금이 없다고 하고, 원청사가 공사기간을 단축하는 바람에 하루에 일을 더 몰아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노동자들은 그렇게 회사가 시키는대로 일을 하다가 다치거나 죽기 일쑤였다. 원청사의 책임 회피에 따른 피해는 결국 건설노동자들에게 쏠렸던 것이다.
그동안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던 건 민주노총 건설노조였는데, 이제는 ‘국토부 장관’까지 힘을 보태겠다는 것일까. 뒤에 이어지는 원 장관의 말에 더욱 솔깃해졌다.
“원청사가 전문건설인을 보호해주고, 건전한 근로자들을 보호해주고, 이렇게 해서 건설현장 생산성을 올리고 젊은 청년들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올 수 있는 공사장을 만들어줘야, 원청이 버는 수주액과 수익성이 정당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힘든 건 (하청에) 떠넘기고 수익만 가져간다면 원청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한다고 합니까.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 정부가 나서기 전에 원청부터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수 백 명의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원 장관을 향해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이들은 자신을 ‘소상공인’이라고 불렀다. 그 응원에 힘을 입었던 것일까. 원 장관은 한 발 더 나가는데, 그건 바로 ‘원청의 직고용’ 언급이었다. 현재 정부가 나서서 ‘불법’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타워크레인 월례비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한 말이었다.
“저희가 2교대를 돌리든지, 원청사가 직고용을 하게 하든지 해서 인력수급이 잘 되고, 현장이 잘 돌아가고, 생산성을 올리면 정당하게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건설현장을 바꾸겠습니다.”
원청사와 타워크레인 임대업자가 시간 기준으로 임대계약을 맺고 운용하는 타워크레인을 어떻게 교대근무를 하게 한다는 것인지는 이해가 어렵지만, 원청사가 직고용을 하게 한다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사실 타워크레인 월례비 문제는 원청사의 책임 회피와 모순된 고용구조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원청이 타워크레인 기사를 직고용해 고용구조를 바로 잡고 책임을 진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원 장관은 원청의 책임을 따진 뒤, 곧바로 하청업체의 책임도 따졌다. 이번엔 호통이 아닌 당부로, 목소리 톤이 훨씬 가벼워졌지만 말이다.
“대신, 우리 전문건설인들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페이퍼컴퍼니 없앱시다. 벌떼입찰 없앱시다. 근로자들에게 줄 임금 떼어먹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런저런 사례로 떼어먹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이런 어물전 꼴뚜기 같은 행동들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우리가 집단적으로, 단체로 욕을 먹고, 또 이게 노조에는 빌미가 됩니다. 앞으로 저희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없애 나갈 거고요. 이와 관련해서 대금의 직접 지급 제도를 넓혀나갈 겁니다.”
원 장관이 건설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설업계의 불법행위와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발언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오랫동안 문제 해결을 요구해온 것이기도 하다. 특히 불법 다단계 하도급으로 인한 중간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업체에 직고용을 요구하고 단체협상을 맺는 노력을 해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이 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고발 증언대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2023.3.8 ⓒ뉴스1
앞뒤로 태도가 확연히 다른 원희룡, 속내는?
여기까지 보면 원 장관의 생각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생각이 큰 틀에서는 달라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그동안 열심히 요구해온 것들을 원 장관이 수용해 이행하면 될 일로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원 장관은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적대시하고 있다. “고용구조 개혁을 위한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공개 제안도 외면하고 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잡겠다는 핑계로 오히려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때려잡고 있는 형국이다. 원 장관에게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조폭’에 불과하다.
원 장관의 앞뒤가 다른 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건설업계의 불법행위와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다루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 TF’를 구성해 단속에 나선 데 이어 경찰까지 총동원해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구속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원 장관은 과거에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며 증언대회에서 공개적으로 꾸짖었다.
“(전문건설업체들이) 노조를 경찰한테 신고하면 ‘아이고 합의보세요’, ‘아이고 노조가 원래 그렇죠’, ‘일주일 동안 시끄럽게 하다가 볼륨 낮출 거니까 좋게 좋게 갑시다’, ‘공사 마비되면 더 큰 손해 아닙니까’ 이랬다고 합니다. 경찰이 누구 편입니까? 세금 받는 경찰 맞습니까?”
그러면서 원 장관은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국가가 있어야 될 곳에 있지 못했고, 전문건설인들과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건전한 근로자들이 말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할 때 이것을 보호해주지 못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합의하라고, 세상 요령껏 살라고, 그렇게 주문했던 정부 부처를 대신해서 여러분께 정말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반면 건설업계의 불법·부당행위에 대한 정부의 단속이나 처벌 움직임은 전무하다. 이날도 원 장관은 단지 원청 건설사와 하청 건설업체에 ‘임금체불하지 말라’는 식으로 자정의 노력을 당부했을 뿐이었다. 건설업계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경찰이 아닌 원 장관이 나서서 ‘좋게 좋게 갑시다’라고 하는 꼴인 것이다. 원 장관은 “제일 불쌍하다”며 전문건설업체를 노골적으로 감싸기도 했다.
“그동안 저도 그렇고 일반 국민들은 건설업하면 ‘돈을 크게 크게 벌어가는 곳이구나’, ‘거기에서 일용직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건설현장을 파악해보니까 제일 불쌍한 게 전문건설인 여러분들이란 걸 느꼈습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중앙회장 등이 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실태고발 증언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3.8 ⓒ뉴스1
이에 대해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논평을 내고 “본인이 지적한 불법행위에 대해 업계 처벌 계획은 한 마디 입에 올리지 않으면서 오히려 ‘좋게 좋게 가자’는 식으로 해결하자며 감쌌다”며 “범정부적으로 나서는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뿌리 뽑는다’는 범주에 건설업계의 불법행위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을 다시 장관의 입으로 확인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권건유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권력과 건설업계의 유착이라는 것이다.
증언대회라는 취지와 다르게 원 장관을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된 점도 의아하다. 증언대회는 약 40분가량 진행됐는데, 그중 절반인 20분가량이 원 장관 혼자 발언하는데 소요됐기 때문이다.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들의 증언은 형식적으로 짧게 진행됐다.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해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끝난 원 장관의 길고 긴 ‘연설’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백 명의 건설업계 관계자들이 크게 환호했다.
증언대회가 열린 전문건설회관 밖에선 민주노총 건설노조 장옥기 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증언대회 시작 전 원 장관이 건물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장 위원장 등은 “원희룡은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가짜 장관은 사퇴하라”고 힘껏 외치며 항의했다. 손에는 ‘가짜뉴스 제조기 원희룡 장관 규탄한다’, ‘건설자본의 하수인 원희룡 퇴출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소란에 잠시 멈춰선 원 장관은 민주노총 건설노조 간부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웃음만 지었는데, 그 웃음의 의미는 곧 이어진 증언대회에서 확인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8일 서울 동작구 전문건설회관 앞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항의하고 있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