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염무웅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공동이사장, ‘엉뚱하고 이상한’ 문학학교

진보 청년작가의 산실 ‘2023 길동무 문학학교’로 초대합니다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어느 유명 예능에 나왔던 ‘꽃보다 할배’보다 아름답다. 인터뷰 중인 염무웅 길동무 공동이사장.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염무웅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공동이사장을 만난 지난 8일은 올 들어 가장 날씨가 따뜻하다는 완연한 봄이었다. 그리고 이날은 지난해 열린 ‘2022 길동무 문학학교’ 1기 소설반 수강생들의 후속모임이 있는 날이기도 했다.

길동무 문학학교는 1기 수업이 끝난 후에도 각 반별로 후속모임이 결성돼 활발히 활동하며 서로의 글쓰기 작업을 지원하고 있다. 문학학교 1기 수강생인 나도 문학학교 수업 자체는 물론 후속모임 참여로 큰 도움을 받고 있는 터라, 이번 2기 문학학교 개교를 맞아 학교 홍보에 무엇이든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염무웅 평론가 인터뷰라니. 한낱 소설가 지망생 입장에서 너무 큰 어르신을 뵙는 것 아닌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사무실에서 마주한 순간, 따뜻하고 편안한 그의 분위기에 괜한 긴장은 봄눈처럼 녹아버렸다.

(이날 인터뷰는 먼저 염 이사장께 문학학교의 취지를 묻고, 실무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송경동 길동무 상임이사에게 따로 물어 뒤에 덧붙이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진보 청년작가의 산실, ‘2023 길동무 문학학교’로 초대합니다

염무웅 이사장은 1964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해 『창작과 비평』주간 및 발행인, 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 등을 맡아온 한국문학의 산증인이자 한국문학의 담론을 이끌어온 거목이다.

그저 책상 앞에 앉은 평론가가 아닌, 언제나 ‘오늘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문학과의 관계 속에서 탐구하고자 한 양심적인 학자이자, 연세가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활발히 저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역이기도 하다.

유신정권이 막바지에 이른 1979년에 『민중시대의 문학』,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국가목표로 제시한 1995년에는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신자유주의 사회 모순이 심화된 2010년에는 『문학과 시대현실』 등 한국사의 주요 시기에 그 시대와 문학의 관계를 정리하는 평론집을 발표해온 염 이사장의 행보에는 사회 현실을 고민하는 그의 치열함이 잘 드러난다.

그가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공동이사장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도 이 같은 그의 삶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은 김판수 선생이 하자고 해서, 저는 말하자면 들러리를 선 거죠.”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의 또 다른 공동이사장인 김판수 (주)호진플라텍 대표는 1960년대 청운의 꿈을 품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69년 이른바 ‘유럽‧일본 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5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후 꿈을 접고 사업가로 변신해 도금전문 기업인 (주)호진플라텍을 건실한 중소기업으로 일궈내고, 사업에서 얻은 수익을 문인, 예술가, 도움이 필요한 사회단체들에 틈틈이 후원하는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리고 이 ‘키다리 아저씨’와 그들을 연결해 준 존재가 바로 염 이사장이다.

“김판수 형이 젊은 시절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런 어려운 곡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20대 때 가졌던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높이 평가했어요. 그런 사람이 많지 않아요. 민주화운동을 하고 감옥을 가고 했던 사람도 세파에 시달리면 뜻을 꺾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나이가 그렇게 들었는데도 한결같음을 지니고 있어요.”

해서 틈틈이 해왔던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아예 제대로, 공식적으로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을 때 염 이사장은 쾌히 답했다.

“그래, 좋다. 같이 하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익천문화재단 길동무’다. 익천은 김판수 이사장의 호이다. 오십 년 지기 두 친구가 공동이사장을 맡고, 상임이사로 참여한 송경동 시인이 실무를 담당하고, 하명희 소설가가 사무처장으로 합류해 2021년 3월에 재단이 출범했다.

“송경동 시인은 내가 먼저 알았지만, 지금은 김판수 이사장이 꽉 붙잡고 부려먹고 있어요. (웃음) 김판수는 송경동을 통해 자기 평생의 꿈을 실현하고 있고, 송경동은 또 김판수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지를 등에 업고 온 몸을 다해 평소 뜻했던 일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잘 활용하는 관계죠. 나는 무형의 기여를 하고, 말하자면 그런 3자 결합이죠.”

맞은편에 앉은 송경동 시인의 얼굴에 쑥스러운 웃음꽃이 피었다.

3월 8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사무실에서 만난 세 사람. 왼쪽부터 필자, 송경동 길동무 상임이사, 염무웅 길동무 공동이사장.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아름다운 인연들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단체

그렇게 시작된 ‘길동무’는 만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문학학교를 비롯해 길동무 인문학당, 문학예술산책, 문학창작기금, 예술창작기금, 익천사회연대기금 및 한국사회기층문화보고서에 이르기까지 결코 적지 않은 사업들을 벌여왔다.

“길동무에 모인 인적 자원을 활용해서 오늘의 현실에 맞는 활동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민주주의가 정착되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다시 위기를 맞은 시대에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사회는 더 분열이 됐어요.”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대에는 전선이 분명했다. 대부분의 국민이 민주화운동을 내놓고는 못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지지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젊은이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매몰돼 세상을 널리 볼 시각을 갖지 못하고, 나이든 사람들은 지쳤어요. 이거야말로 제일 큰 위기에요. 내가 살아온 시대를 다 통틀어 가장 어려운 시기가 온 것 같아요.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시대도 아닌데 이렇게들 지쳐 있어요.”

이런 시대에 어떻게 희망을 찾을 것인가. 기층 운동에서 묵묵히 일하는 젊은이들과 연대하고, 3,40대 젊은 활동가들을 양성해 내는 것이 최대의 과제라고 염 이사장은 지적했다. 길동무의 활동이 그런 인적 자원을 길러낼 자양분의 일부라도 되면 좋겠다는 당부도 덧붙였다.

3월 말 개강하는 문학학교를 찾아올 예비 수강생들을 위해 염 이사장은 세심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봐야 해요. 문장에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죠. 처음에 쓰려고 했던 것과 실제 쓴 것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크지요. 그것은 많이 읽어서 해결할 수밖에 없어요. 정말 좋은 작품을 읽으면 개안이라는 것, 세상을 보는 눈이 떠지는 것이 뭔지를 경험하게 돼요.”

문장에 대한 객관적 감각도 길러야 하는데, 남이 내 글을 봐주는 경험을 통해 그걸 배울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글을 쓸 때는 열정에 빠져서 정신없이 쓰죠. 그 몰입상태에서 빠져나와 자기 글을 객관적 시각으로 볼 줄 알아야 해요. 글쓰기 수업에서는 선생님이나 함께 글을 쓰는 동료들이 그걸 봐줄 수가 있죠. 길동무 문학학교를 통해서 그걸 배웠으면 좋겠어요.”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눈이 떠지는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는데,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 태어나는 것 같은 거듭남의 순간이 있어야 한다고 염 이사장은 말했다. 진짜 작가가 되는 길은 수도승이 깨달음에 이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자기 내부에 있는 욕망과의 싸움이고, 어쩌면 득도의 길이라는 것. 세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글을 쓰겠다고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세속적인 욕망을 깨는 것도 문학학교의 역할일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작가는 문학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봅니다. 비평이라는 것은 문학이라는 형상물이 세상과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가, 그 복잡한 변증법을 탐구하는 일이고요. 소설은 소설이라는 형상물을 통해서 세상을 그려내는 것이지, 세상의 문제를 직접 쓰는 건 아닙니다.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지요.”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눈이 떠지는 ‘개안’의 경험이 중요”

지금은 영상 매체를 비롯해 보고 즐길 문화 컨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진지한 주제를 다룬 소위 '골치 아픈' 책은 외면당하기 일쑤고, 시장의 논리에 의해 책은 갈수록 얇아진다. 그나마 재미있게 읽고 금방 잊을 수 있는 주제의 책이나 몇몇 자기개발서 등이 독자의 선택을 받는 시대.

이런 시대에도 자신의 삶을 걸고 결연히 문학의 길을 선택하는 청년들은 대체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질문을 던졌다. 진지한 주제와 독자와의 소통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지 말이다. 이것은 인터뷰어인 바로 나 자신의 고민이기도 했다.

“답하기 어렵다. 내 과제로 안고 가겠다”는 것이 염 이사장의 답변이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에게서 받은 인상대로였다. 그는 투명했다. 모르는 것, 혹은 답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아는 체하지 않았다.

“내가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했던 고민도 그것이었습니다. 정의나 진리를 말하면 이들을 오히려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약게 살아라, 속일 수 있으면 속여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고생을 했잖아요. 내가 과연 어떤 말을 해야 옳겠나, 늘 고민했어요.”

재미있지 않으면 안 읽히는 시대다. 과거에 우리가 사랑했던 찬란한 문학들, 인간의 삶과 사회 현실을 고민하는 책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염 이사장은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찾는다.

“문단은 우리 사회 전체에 비하면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아요. 문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원초적 고민을 떠나서 성립될 수 없잖아요. 수많은 작가들 중에 소수의 좋은 작가와 좋은 시인들은 여전히 시대를 고민하고, 그래서 정말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어요.”

그가 꼽은 ‘좋은 작품들’ 중에 작년에 출간된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있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 작품을 “정말 감동적으로 읽은 걸작”이라고 평가한 염 이사장은 “6‧25전쟁 이후 70여 년 동안 전쟁의 상처와 남북분단 문제를 다룬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그동안 나온 것들 중 열 개를 꼽으라면 그 중 하나”라고 극찬했다.

“재미가 없어도 정말 좋은 문제를 다루면 그것도 하나의 길이에요. 최근에 나온 진은영 시인의 시집(『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2022, 문학과지성사))이 그렇죠. 진은영 시인도 요즘의 신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상업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고 있잖아요. 새롭게 출발하는 작가지망생들에게 그런 정신이 전달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민들레 씨앗이 날아다니다 박토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듯이, 물질이 지배하는, 각자도생의 세계로 변한 이 세상을 뒤집어엎는 정신의 씨앗이 길동무 문학학교를 찾아오는 작가지망생들에게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원로 문학평론가의 진심이 담긴 소망이었다.

염무웅 길동무 공동이사장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당대 최고의 문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특별한 학교

익천문화재단에서 올해 두 번째로 여는 ‘2023 길동무 문학학교’는 주 강사진도 탄탄하지만 특히 특강진이 화려하다. 염무웅, 현기영 등 원로 작가부터 김연수, 공선옥, 정지아, 김탁환, 이기호 소설가, 진은영, 김해자, 박준, 송경동 시인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을 이곳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진은영 시인이나 김연수 소설가 등은 대중강연에 잘 나서지 않는 분들인데도 흔쾌히 와 주셨어요. 얼마 되지 않는 강의료 때문이 아니라, 길동무 문학학교의 실험과 노력에 공감해주신 거죠.” (송경동 길동무 상임이사)

서두에 말한 것처럼, 문학학교는 수업이 끝나도 끝이 아니라 수강생들이 후속모임을 통해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단지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지속적인 관계와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본주의의 분열과 소외를 넘어서는 대안을 고민할 울타리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취지에요.”

1기 문학학교 운영을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자, 송경동 이사는 망설이지 않고 “날을 새서 뒤풀이했던 것”을 꼽았다. 필자도 동감이다.

“글 쓰는 얘기는 뒷전이고 밤새 연애 이야기만 했다”고 그는 웃었다. 하지만 문학이 뭐 별건가?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문학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세대가 모였지만 서로의 고민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마음을 열어 친구가 되는 자리였다.

길동무 문학학교에는 시, 소설 교실과 함께 르포 교실이 있다는 것도 특별한 점이다. 송 이사는 “르포 정신”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르포는 사회의 묻힌 진실을 파헤치는 보고 문학이고, 그래서 필연적으로 가려진 곳, 아픈 곳, 불의가 있는 곳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 꼭 르포문학가가 되지 않더라도, 자신과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이 문학학교의 특별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1학기와 2학기로 나뉜 1년제, 주 강의 각각 10회씩에 각 교실 당 총 7회의 특강과 종강 여행까지 있는 커리큘럼의 1년 수강료가 60만원인데, 그나마 일시납 시 10퍼센트 할인까지 해준다. 돈으로만 따지면 당연히 적자다. 하지만 송 이사는 “적자가 아니다”고 분명히 말한다.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자가 아니죠. 청년들을 위한 기성세대의 책임이자 나눔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으니까요. 꿈을 가진 청년들이 건강한 문학인으로 성장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다면 그것을 돈 1, 2천만 원의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어요. 우리 사회 입장에서는 오히려 큰 수익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이런 학교를 본 적이 있는가. 정말로 엉뚱하고 이상한 문학학교다. 이 특별한 문학학교가 꿈을 가진 청년들에게 손을 내민다. 부디 그 손을 맞잡고 함께 가는 길동무가 되어 한국문학의 미래를 열어갈 청년 작가들의 유쾌한 커뮤니티에 동참하시길.

2023 길동무 문학학교 입학안내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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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경

2003년에서 2008년까지 <민중의소리> 기자로 일하고 이후 몇몇 매체에서 객원 기자와 편집인으로 활동했다. 『박상표 평전』(2016, 공존)과 『임은경이 만난 사람들 - 40인의 인터뷰 모음』(2021, 김상진기념사업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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