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의 CATL이 저가 공세에 나섰다. 배터리 할인은 중국 내에서만 적용돼, 당장은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다만, CATL이 중국 밖으로 가격 전쟁 전선을 넓히면 한국도 관망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전문가들은 중장기 대책으로 기술력 강화와 소재 공급망 다변화를 강조했다.
9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CATL은 오는 하반기부터 탄산리튬 가격을 1톤당 20만 위안(약 3,785만원)으로 산정한 가격에 배터리를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 통계를 보면, 이번달 탄산리튬 가격은 평균 32만 위안 수준이다. CATL은 탄산리튬 가격을 시세 대비 낮게 반영해, 배터리 가격을 대폭 내려간 가격에 팔겠다는 것이다.
조건을 걸었는데, 3년간 총 배터리 구매량 중 80% 이상을 CATL로부터 공급받아야 한다.
CATL의 이번 조치는 중국 전기차 시장의 수요 둔화에 따른 대응 차원으로 풀이된다. 중국 정부는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했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전기차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보조금이 끊기자 BYD와 테슬라 등 주요 기업이 전기차 가격을 올렸고, 전기차 구매 감소로 이어졌다. 올해 1월 중국 시장 전기차 판매는 전월 대비 50%가량 급감했다.
로이터는 “CATL은 여전히 적자를 내는 중국 고객사들로부터 더 많은 판매에 대한 대가로 가격을 낮추고 더 낮은 이윤을 수용하라는 요구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시장은 배터리 가격 경쟁의 서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리튬 기업 앨버말 관계자는 로이터에 “완성차 부문에서 벌어지던 가격 경쟁이 배터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선두 배터리 기업의 저가 공세에 한국도 주목하고 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CATL은 올해 1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33.9%로 1위를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13%로 3위, 삼성SDI는 5.5%로 5위, SK온은 4.7%로 6위를 차지했다.
당장은 CATL 배터리 할인이 한국 배터리 3사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CATL의 배터리 할인 대상을 자국 기업에 한정된다. CATL은 배터리 물량 65%를 중국 완성차 기업에 공급한다. 외국산 배터리를 배척하는 중국 정부 정책으로, 한국 배터리 3사는 중국 시장 진출이 제한되고 있다. CATL이 중국 시장에서 배터리 가격을 낮춰도, 미국과 유럽 시장에 주력하는 한국 배터리 3사는 타격이 없다.
또한, 주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생산하는 CATL은 한국 배터리 3사 주력 제품인 삼원계 배터리에서는 아직 영향력이 크지 않다. LFP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주행거리가 짧은 저가형 전기차에 탑재된다. 삼원계 배터리는 고밀도 제품으로, 긴 주행거리가 확보되는 고가형 모델에 들어간다. 한국 배터리 업계도 LFP 배터리 진출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 양산 시점은 잡히지 않았다.
이번에 CATL이 가격을 고정하겠다고 한 탄산리튬은 LFP 배터리 생산이 사용된다. 삼원계 배터리를 만들 때는 수산화리튬을 쓴다.
DS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CATL의 가격 정책은 중국 내수에서 중국 배터리를 써야 하는 로컬 기업에 락인 효과를 강화하는 것이고, 국내 기업은 해외 매출 비중이 더 커, 연쇄효과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유진투자증권도 중국의 완성차 기업에만 할인을 제공한다는 점을 이유로 “CATL 발 배터리 단가 인하가 글로벌 전체로 확산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과 다른 외국 시장은 사실상 분리돼있다”며 “CATL이 삼원계 제품과 외국 시장으로 배터리 인하를 확대할지 미지수일뿐더러, 한국 기업이 LFP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는 시점까지 배터리 할인을 유지할지도 불명확하다”고 설명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리튬 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할인 대상을 확대하면 CATL이 수익성에서 받는 타격이 커져 결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장기적으로 CATL의 배터리 인하 확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덤핑은 점유율 확대를 위한 대표적인 수단이다. 이미 CATL은 중국 공급 물량을 제외한 35%른 외국에서 팔고 있다. 기아와 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CATL의 삼원계 배터리를 채택했거나 채택할 계획이다. CATL이 포드나 미국과 유럽 완성차 기업에 삼원계 배터리를 납품하면서 가격을 낮추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에서 제시한 조건을 완화해 중국 밖에서도 여러 제안이 가능할 것”이라며 “향후 CATL이 삼원계 배터리를 가계을 인하할 때, 한국 기업이 저가 공세를 넘어서는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LG화학 자료사진. ⓒ뉴시스
전기차 원가 15% 차지하는 리튬, 한국의 중국 의존도 64%에 달해
이번 CATL의 배터리 인하는 한국에 소재 수급 다변화라는 과제를 상기시킨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의 핵심 소재다. 전기차 생산 원가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배터리 원가 50%는 양극재, 양극재 원가 60~70%는 리튬이다. 전기차 생산 원가의 리튬 비중은 15%에 달하는 셈이다. 리튬 가격 상승은 배터리 기업에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수급 조절이 문제다. 리튬 생산은 1~2년 단위로 계획되고, 광상(광물 보유 지역) 개발에 4~7년이 소요된다. 수요 변동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그간 수차례 공급 과잉과 부족이 반복된 배경이다. 2017년 리튬 생산량이 전년 대비 80% 성장세를 보이다가, 이듬해부터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후발 업체 줄도산이 발생했다. 이후 가격 하락으로 공급이 줄었다가, 코로나19 회복으로 수요가 급증하자 가격이 뛰었다.
시장은 대세 상승을 예견한다. 신규 광상 개발 투자 속도가 세계적인 전기차 확산세를 따라가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리튬의 높은 중국 의존도는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변동성 대응에 걸림돌이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중국산 수입 장벽을 높이는 상황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한국은 전체 리튬 수입의 64% 중국에 의존한다. 이어 칠레 비중이 31%다. 일본은 중국 의존도가 50% 수준이고, 나머지 절반도 칠레, 미국, 아르헨티나 등 여러 국가로 다변화돼있다.
한국무역협회 공급망분석센터는 지난해 9월 ‘배터리 핵심 원자재 공급망 분석’ 보고서에서 “리튬 가격 변동성이 높아 중국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며 “미국과 FTA를 체결한 배터리 광물 국가로 공급망 전환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철완 교수는 “리튬 등 배터리 핵심 소재와 관련한 지나친 대중 의존도는 한국 배터리 산업의 리스크 요인”이라며 “산업 생태계와 자원 수급 다변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