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우리가 윤석열과 달리 강력하게 반일(反日)을 해야 하는 이유

먼저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게 있다. 내가 이 칼럼의 제목을 ‘우리가 윤석열과 달리 반일(反日)을 해야 하는 이유’로 잡은 것에서 생길 수 있는 오해인데, 나는 반일을 숭고한 이념처럼 받드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내 나이가 이미 50대여서 정서적으로 일본을 꺼려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일주의자’로 불릴 정도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일 무역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일본 제품을 안 쓴 것도 아니다.

또 나는 나름 동북아 경제 블럭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주요 국가의 경제시스템이 지금보다 더 협력적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젠가 자세히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우리가 분명히 반일 전선에 서야 할 때라고 믿는다. 2023년 3월 6일, 윤석열 정권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해법안을 들이밀었다. 실로 치욕적인 굴욕 외교가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은 우리 민중들에게 있다. 그리고 이번 굴욕 협상에서 빼앗긴 것들을 되찾아올 힘도 바로 우리 민중들에게 있다. 국제 협상의 틀을 창안한 학자로 꼽히는 하버드 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 교수의 ‘투 레벨 게임이론(Two-level game theory)’을 오늘 칼럼에서 소개하는 이유다.

외교는 윤석열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외교를 정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퍼트넘 교수에 따르면 외교 무대에서 벌어지는 국제 협상은 단지 협상 당사국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양국 민중의 여론의 문제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처럼 지도자가 친일 사상에 물들어 이런 개떡 같은 협상을 타결했다 해도 국내에 반대파의 힘이 강해질수록 반대파를 설득해야 한다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여소야대 상황이다. 민주당의 투쟁력이 영 시원치않다는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한민국의 권력은 윤석열 혼자에게 있지 않다는 사실이 정치 지형적으로도 분명하다.

퍼트넘 교수의 ‘투 레벨 게임이론’에서 첫 번째 레벨(Level 1)의 게임은 양국 정부 사이에서 진행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아먹은 바로 그 협상을 말한다. 하지만 이 첫 번째 게임이 끝나면 곧바로 그 협상 결과를 놓고 다시 국내 반대파를 설득해야 하는 두 번째 레벨(Level 2)의 게임이 시작된다.

여기서 국내 반대파의 여론이 극악으로 치달을 경우 정권은 그 협상안을 결코 밀어붙일 수 없다. 만약 이 여론이 총선 전까지 들불처럼 이어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국제 협상은 레벨 1과 레벨 2를 모두 만족해야 하는 어려운 게임이 된다.

건설노조 조합원들 시민들이 11일 서울광장 인근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더불어민주당 등 주최로 열린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 규탄! 일본의 사죄 촉구! 2차 범국민대회에서 윤석열 정권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3.11 ⓒ민중의소리

이런 상황에서 퍼트넘 교수가 제시하는 특이한 전략은 ‘발목 잡히기(hand-tying)’라는 것이다. 국내 반대파에게 발목을 잡히는 것은 정부에게 일견 부담일 수 있지만, 의외로 국제 협상 테이블에서 협상력을 강화하는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즉 지금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과 만나 “우리는 너희 편을 들고 싶은데 국내 반대가 너무 심해서 그렇게 단순하게 가긴 어렵겠어요.”라고 말할 정도의 반대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 우리 민중들의 반대가 너무 심하다면 일본도 협상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권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을 일본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윤석열이 하고 있는 짓의 본질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보수적이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조차도 일본과의 관계를 그렇게 간단히 풀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윤석열 정권은 이런 만행을 서슴없이 저지를까?

사실 이걸 이론적으로 분석할 필요조차 있을까 싶을 생각이 들 정도로 윤석열 대통령은 멍청하다. 솔직히 이론적 분석을 굳이 할 필요도 없이, 이 사태의 전모를 “대통령의 뇌가 빠가사리류의 물고기 수준이어서 그렇다”고 설명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합리적) 설명은 너무 단순하므로 조금 복잡하게 생각해보기로 하자. 다시 말하지만 외교는 한일 양국 정부 간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한일 양국 민중들의 정서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말은 윤석열 정권이 두 번째 레벨 게임, 즉 한국 민중들의 정서를 설득하는 문제를 매우 간단히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이런 굴욕적 협상안을 내놓고 나서도 자기들 지지율이 유지된다거나, 자기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바로 잡을 힘이 우리 민중들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투표로 정권의 향배가 결정되는 국가에서 이따위 굴욕적 협상을 내놓고도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이 말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우리의 투쟁이 그다지 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길은 하나다. 이 정권이 민심과의 만남이라는 두 번째 레벨 게임에서 처참한 절망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 현 정권뿐 아니라 이후 탄생할 가능성이 있는 그 어떤 보수적 또라이 정권도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 수 없게끔 처절한 여론의 응징을 만들어야 한다.

한일 무역 분쟁 때보다 지금은 사태가 더 심각하다. 진보적 시민 사회는 역사적으로 그 어느 시점보다도 강력하게 반윤석열, 반굴욕외교의 정신으로 연대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 민중들이 다시 한 번 반일로 뭉쳐야 할 때가 있다면, 그게 바로 지금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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