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현지시간 10일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캘리포니아 금융당국은 SVB를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 관재인으로 지정했다. 위기설이 나온 지 불과 이틀 만이다. SVB는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이 2천9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내 16위 은행으로 실리콘밸리 벤처 기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이번 파산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SVB는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들과 거래해왔다. 이 기업들은 길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가까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크게 늘어난 현금을 예금으로 맡겨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지속된 금리인상과 연준의 긴축 정책에 따라 신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들 기업이 일제히 예금을 인출하면서 SVB가 '뱅크런'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SVB는 증자와 보유 국채 매각 등으로 탈출구를 찾았으나 결국 실패해 파산처리됐다.
당장 SVB와 거래하던 기업들은 큰 피해를 입게됐다. FDIC가 나서서 예금자 보호 조치를 시행한다고는 하지만 기업별 계좌 규모와 신용 한도에 따라 예금자 보호 대책이 언제, 어떻게 적용될 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직원 급여를 줄 수 없어 문을 닫아야 하는 기업이 나올 것으로 본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 이른바 '안전자산'이라는 미 국채의 가격 폭락이 자리한 것도 심상치않다. SVB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늘어난 예금으로 미국 정부의 장기 국채를 대량 매입했는데, 연준의 금리 인상에 따라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여기에서 발생한 손실이 결국 파산으로 가는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미 금융당국과 월가의 분석가들은 사태가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내놨다. 재닛 옐런 미 재무 장관은 "은행 시스템은 여전히 견조하며 규제 당국은 이러한 유형의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월가의 애널리스트들도 SVB사태가 은행업 전반의 문제는 아니며, 다른 은행으로 전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언론을 통해 밝혔다. 한국의 금융 당국자들도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불행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 법이다. 10일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전략가들은 월가의 내부에 더 많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 부채, 그림자 금융, 암호화폐, 기술기업을 둘러싼 거품, 파생상품 부실화 등 여러 문제를 지적했다. 지금의 금융시장 분위기가 경기 경착륙의 서곡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