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선태 주교)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1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사형폐지와 대체형벌 입법화를 위한 입법청원 기자회견을 열고 청원 서명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홈페이지 캡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김선태 주교)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사형폐지와 대체형벌 입법화를 위한 입법청원 기자회견을 열고 청원 서명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번 입법청원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장 김희중 대주교,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등 현직 주교단 25인 전원과 전국 16개 교구의 사제·수도자·평신도 75,843인이 참여했고, 정치권에선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인재근 의원, 진선미 의원, 박주민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함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회는 범죄자들의 교화 가능성을 완전히 박탈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범죄를 막을 수 있으며 모든 법적 판결에는 희망의 장이 있어야 한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 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인용하며 사형제 폐지에 대한 천주교의 입장을 설명했다. 김선태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사형 폐지를 여러 차례 언급하셨다. 특히 지난해 9월 기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사형 폐지를 위해서 기도할 것을 제안하시며 사회는 범죄자들의 교화 가능성을 완전히 박탈하지 않고도 효과적으로 범죄를 막을 수 있으며 모든 법적 판결에는 희망의 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더불어 복음에 비춰봐도 사형 제도는 받아들일 수 없으며 살인해서는 안 된다는 교명은 죄 없는 사람 죄 지은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말씀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사형 제도의 폐지를 위해 선의의 모든 이가 전 세계적으로 움직일 것을 촉구하셨다”고 강조했다.
이번 청원은 천주교가 사형제 폐지와 대체 입법을 요구하며 낸 다섯 번째 청원이다. 천주교는 그동안 사형폐지와 대체형벌 도입을 국회에 촉구하는 입법청원 서명 운동을 네 차례 진행해 2006년(115,861인), 2009년(100,481인), 2014년(85,637인), 2019년(105,179인) 국회에 제출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 사폐소위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교회 공동체의 활동이 완전히 복원되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교인 75,000인 이상이 서명에 참여한 것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지난 2022년 7월 14일 오후 사형제에 대한 세 번째 위헌심판 결정을 위한 공개변론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정문에서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7대 종단 대표들이 사형제도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07.14 ⓒ민중의소리
지난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현 21대 국회까지 모두 9건의 사형제도폐지 특별법이 발의되었으나, 지난 20대 국회까지의 8건은 모두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21대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총 31인의 국회의원들이 공동발의한 ‘사형폐지에관한특별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접수됐ㅈ만 1년 6개월 동안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선태 주교 “사형 제도의 완전한 폐지는 보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앞으로 더 크고 무거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
김선태 주교는 이런 노력에도 사형제 폐지가 번번이 미뤄진 것을 언급하며 “15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매번 빠짐없이 발의된 사형 폐지 특별법은 이제 국회 문턱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국가는 사형 제도를 통하여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악순환을 멈춰야 한다. 사형 제도의 완전한 폐지는 보다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앞으로 더 크고 무거운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이라며 “다섯 번째 입법 청원을 계기로 21대 국회가 남은 1년여의 회기 동안 사형 폐지 특별법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 사형제도가 반드시 폐지되기를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21대 국회에서 ‘사형폐지에관한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헌법재판소가 사형제와 관련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는 세 번째 헌법소원이 계류되어 있고 2022년 7월에는 최초로 공개 변론이 열렸다. 헌법재판소에는 유럽연합, 국제앰네스티, 국가인권위원회, 한국 천주교 주교단, 7대 종단 대표 등 사형제도 위헌을 촉구하는 유력 단체들의 의견서가 제출돼 폐지와 관련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상민 의원 “특별법, 법사위서 토론해 결론 내려달라” 강은미 의원 “사실상 폐지 넘어, 법·제도적으로 사형제 없음 확인해야”
이상민 의원은 국회를 향해서도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 논의 및 처리를 촉구했다. 이 의원은 “국회에서는 어떤 법안이든 국회의원들은 그 안건으로 올려서 심의하고 결론을 내도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법사위에서 건건이 판단하기 어렵거나 한두 의원이 거부 반대 생각이 있으면 아예 안건 자체를 상정하지 않는다. 이는 부끄럽고 아주 민망한 모습”이라며 법사위에서 관련해 “토론을 해서 결론을 내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관계자들이 2020년 12월 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단 사형제도 위헌 결정 호소 의견서 제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으로 국가는 이를 보호·보장할 의무만 있을 뿐 이를 박탈할 권리는 없다. 사형 제도가 범죄 억제 효과는 확실하게 검증되지도 않았고 오판에 의하여 사행이 집행되었을 경우 피해 회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사형을 정당화하기 어렵다. 이에 대한민국은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형 구형이 이루어지고 있고 수십 명의 사형수들이 존재하고 있다”면서 “이제 사실상 사형 폐지를 넘어 법적 제도적으로 사형 제도가 없음을 확인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사회교정사목위 위원장 현대일 신부 “국가는 흉악범 죽일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양극화 차별과 편견 깨야 할 것”
교도소 재소자들을 위한 사목에 노력해 온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현대일 신부는 사형제 폐지 서명 운동을 진행하던 가운데 벌어진 이야기를 전하며 사형제 폐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당에서 사형제 폐지 서명을 받는데, 그곳에 강도에게 딸을 잃은 어머님이 함께 계셨고, 서명대를 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신자에게 피해자 어머니가 이런 말을 전하며 서명을 하라고 했다고 현 신부는 전했다.
“아니 뭘 망설여. 여섯 명 해친 흉악범 죽인다고, 내 딸이 다시 살아 돌아오나? 사형시키면 또 한 명 폭력의 희생자, 또 한 가족, 폭력의 희생 가족이 생기는 거야.”
현 신부는 인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를 언급하며 “끔찍한 학교 폭력을 당한 피해자 복수를 그린 드라마가 유행이다. 누구는 ‘그래, 그런 나쁜 놈들은 복수를 당해야 돼. 죽여버려야 해.’ 하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호응을 받는 이유는 단순 복수만이 아니라 양극화, 신분의 대물림, 특권 계층의 오만, 빈곤층에 대한 차별과 편견 등등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는 여러 징후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는 흉악범들을 죽일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병들어가고 있는 사회, 특별히 특권층들은 처벌받지 않는 불평등과 그들의 오만, 그들만의 카르텔 해체. 이 불평등과 양극화 차별과 편견을 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