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지난해 2월 24일 한국노총 산하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이 윤석열 대통령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있는 모습. ⓒ박대수 의원 페이스북
대선을 앞두고 있던 지난해 2월 24일 당시 한국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건산노조)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한국노총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 방침에 반발하며 따로 나선 것이었다. 이 자리에는 한국노총 출신의 국민의힘 박대수 의원과 한국노총 건산노조 진병준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직접 참석했다. 박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한국노총 건산노조가 경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 대상이 된 건 1년도 채 흐르지 않은 올해 1월 19일이었다. 이른바 ‘건폭’ 근절에 나선 윤석열 정부의 첫 타깃이 윤석열 정부의 탄생에 일조한 조직이 된 것이었다. 당시 경찰은 한국노총 건산노조 서울경기지부 사무실 등을 비롯해 총 8개 노동조합의 14개 사무실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한국노총에서 제명됐지만 복귀하려고 한 건산노조
한국노총은 곧바로 건산노조에 선을 그었다. 한국노총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건산노조는 지난해 7월 제명된 조직으로 지금은 한국노총 소속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이후인 지난해 7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건산노조를 회원조합에서 제명한 바 있다. 그 이유는 조합비 횡령 묵인·방조 및 비정상적 회계운영, 조직적 부정선거 지시, 한국노총의 정상화 요구 불이행, 비민주적 노조운영 등으로 한국노총의 조직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그 중심엔 한국노총 건산노조 진병준 위원장의 조합비 횡령 의혹이 있었다. 진병준 위원장은 외부에서 노조를 만들고 한국노총으로 들어와 건산노조라는 산별노조를 만들어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하지만 진병준 위원장은 지난 2019년부터 3년여 동안 조합비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해 10억여 원을 사적으로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지난해 12월 1심 법원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1심 법원은 “피고인은 조합의 설립과 성장 과정을 주도한 사람으로서 위원장이라는 직책을 이용해 장기간에 걸쳐 거액의 조합 재산을 횡령했다”며 진병준 위원장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건산노조는 진병준 위원장의 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건산노조 관계자는 “우리는 내부적으로 쇄신의 노력을 해왔다”며 “윤석열 후보 지지 선언도 노조 차원에서 한 게 아니라 진병준 위원장이 윤 후보가 검찰 출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주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건산노조는 이후 한국노총 복귀를 시도하기도 했다. 최근 조선일보는 건산노조의 간부가 한국노총 간부에게 한국노총 제명 문제를 풀어달라고 청탁을 하면서 그 대가로 수억원의 돈을 줬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건산노조가 한국노총에서 제명되는 바람에 당시 건설현장에서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면서 조직이 와해될 위기에 처하자 다시 한국노총으로 들어가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건산노조 일부 조합원들은 힘을 잃은 건산노조를 탈퇴하고 한국노총에 개별적으로 가입하거나, 한국노총 직할 한국노총전국연대노동조합(연대노조)에 가입하는 등 한국노총 간판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대노조는 2020년 10월 한국노총이 출범시킨 전국 단위 일반노조로, 특정 기업 소속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만약 개인 자격으로 연대노조에 가입하면 한국노총 마크를 달 수 있어 건설현장 출입이 용이해질 수 있다는 것을 건산노조 조합원들이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건산노조의 한국노총 복귀 시도는 결국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건산노조의 재가입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조선일보에서 보도했듯 제명 조직은 한국노총에 재가입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했다. 재가입 안건은 중앙집행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했으며, 직할 조직인 연대노조를 통한 가입 역시 연대노조 운영위원회에서 부결시킨 바 있다”며 “이는 결국 이번 금품수수 의혹이 조직적 차원에서 행해진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의혹 당사자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금천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 서울경기지부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건설 현장 불법 행위 관련 압수수색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노총’ 간판 달기 위해 모여든 비슷한 노조들
건산노조의 거취와는 별개로, 이 사건은 건설현장에서 ‘한국노총’이란 간판이 어떤 영향력을 가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한국노총 안에는 제명된 건산노조 외에도 건설과 관련한 노조가 많은데, 현재 파악된 것만 10개가 훌쩍 넘는다. 이름도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다. 건산노조처럼 ‘한국노총’이란 간판을 달기 위해 외부에서 조직돼 한국노총에 가입한 노조들로 보인다. 이는 건설과 관련해선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하나만 있는 민주노총과 다른 구조다.
그러다보니 개별 조직에 대한 한국노총 중앙의 통제가 쉽지 않아 보인다. 건산노조가 사라진 뒤에도, 또 다른 건설 관련 노조에서 계속해서 불법과 비리 의혹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최근에 크게 논란이 된 건 한국노총 전국연합노동조합연맹(연합연맹) 위원장과 한국연합건설노조 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던 이 모 위원장의 비리 혐의다.
한국연합건설노조는 연합연맹 산하에 있는 여러 개의 건설 관련 노조 중 하나인데, 이번에 건산노조와 함께 ‘건폭’ 수사에 나선 경찰이 처음으로 압수수색한 대상이기도 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건설사로부터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1억 원을 넘는 돈을 갈취한 혐의로 결국 구속 송치됐는데, 이후 조합비 횡령 등 혐의가 추가로 확인됐다.
이에 한국노총은 지난 8일 회원조합대표자회의 차원에서 이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조직혁신위원회를 구성해 규약개정을 포함한 ‘건설노조’의 구조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정권의 탄압은 투쟁하면서 견딜 수 있지만, 현장 조합원이 외면하는 노총 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며 “뼈를 깎는 심정으로 조직혁신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민주노총과 마찬가지로 한국노총도 조합원 채용 요구 등 노조 활동 자체를 불법화하는 것은 노조에 대한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소속과 상관없이 이번 건설노조들에 대한 압수수색은 노동조합을 비리집단으로 몰아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정부로 향한 비난의 화살을 노조로 돌려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불법과 비리에 타협하지 않겠다며 내부 단속을 벌여왔고, 문제가 되는 노조나 조합원을 수차례 징계하거나 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노총에서 제명된 일부는 울타리 밖에서도 정상적인 노조 활동의 범위를 넘어선 행위를 계속 일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경찰이 붙잡은 건설현장의 ‘진짜 조폭’인 인천 지역 폭력조직 J파 조직원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원래 한국노총 소속이었다가 제명됐는데, 이후에도 한국노총 소속 노조임을 빙자해 건설사를 상대로 협박해 돈을 갈취한 혐의로 결국 구속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지난 1월 19일 오전 건설현장 불법행위와 관련해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지부 사무실에서 건설노조 탄압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23.1.19 ⓒ뉴스1
엉뚱하게 민주노총 건설노조로 튀는 불똥
그런데 그 불똥이 엉뚱하게 민주노총 건설노조에게도 튀고 있다. 건설현장에 온갖 불법과 비리가 넘쳐난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건설현장을 바꾸려고 앞장섰던 조직이 바로 민주노총 건설노조였다. 불법과 비리를 감시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히는 게 ‘시공자 참여 제도 폐지’다. 이를 통해 건설노동자에 대한 중간착취의 근원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한 일부 직종에 제한되긴 하지만 건설업체와 공식적으로 단체협약을 맺어 안정된 노사관계를 만들었다. 현재 정부에 의해 불법으로 낙인찍힌 타워크레인 월례비 관행을 없애고 제도적으로 문제를 풀자는 게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기본 입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구조적 한계와 제도적 미비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문제까지 모두 불법화하며 이들을 ‘건폭’으로 몰아세우고만 있다. 이번 단속 대상 가운데 75.2%(2153명)에 달하는 것이 전임비, 월례비 등 각종 명목의 이른바 ‘금품갈취’인데, 법원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결이 나오는 사안까지도 모두 ‘범죄’로 낙인찍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경찰 수사에 가장 큰 타깃이 되는 상황이다. 최근 경찰이 ‘200일 특별단속’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단속 대상 가운데 양대노총 소속이 77%(2천214명)에 달한다고 밝힌 배경이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절반씩 차지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23%(469명)는 군소 노조 또는 환경단체, 지역 협의 단체 등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단 두 명이서 ‘가짜 노조’를 만들어 건설현장을 돌며 돈을 갈취한 사례 등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넘어선 행위를 한 조직은 그 ‘나머지 23%’에 포함돼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양대노총 소속 77%’라는 단속 대상 수치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건설현장에서 벌이는 행위나 규모가 다를 수 있는데, 이를 뭉뚱그려 발표하면서 전체를 구분 없이 불온한 집단으로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경찰이 ‘주요 단속사례’로 공개한 16개 사례 중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해당되는 것은 ‘업무방해 유형’의 2개 사례에 불과하다.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면서 집회를 열거나 동전을 뿌려 줍는 등의 방식으로 공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다.
또한 경찰은 현재까지 102명을 검찰에 송치하고, 그 중 혐의가 무거운 29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는데, 구속자도 양대노총 소속이 단속 대상 2천214명 중 12명으로, 단속 대상 635명 중 17명인 나머지(기타 노조 등)에 비해 훨씬 적은 비율이다. 노동계는 일부 조합원들의 일탈 행위는 응당 처벌해야 하지만, 정부가 이를 통해 노조 전체를 불법과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는 것은 문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왜곡된 프레임에 의해 언론보도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에서 제명된 인물이 건설현장에서 불법 행위를 벌이다가 구속된 사례에는 한국노총 소속이라고 하거나, 거기에 자료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그와 전혀 관련이 없는 민주노총이 나오는 식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는 “스피커가 큰 대통령과 장관이 (조폭과 한국노총, 민주노총을) 한 집단으로 매도를 하고, 이들이 하나의 ‘건설노조’ 집단으로 규정된다. 일단 낙인을 찍어놓으니 국민들은 이들을 하나로 인식한다”며 “검찰권력, 스피커를 가진 집단을 상대로 하나하나 반박하다가 세월 다 가겠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