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식의 저편, 뭐든 잡아떼고 보자는 대통령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뉴시스

용산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 중 상당수 출입기자들이 의아해하는 것 중 하나가 참모들의 잡아떼기다.

일정한 논리가 뒷받침되어서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할만한 최소한의 역지사지가 가능한 수준이 아닌, 아예 작정하고 잡아떼니 기자들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지 싶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맞는 걸 아니라고 해버리는데 질문을 해서 뭐하냐”는 식의 회의론이 팽배하다.

먼저 가장 최근의 사례를 보면, 식민사관 논란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부터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 등 3월 들어 쟁점화된 한일 관계와 관련한 대통령실의 대응이 대표적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 비판 없이 우리 민족의 대응 부족을 언급한 윤 대통령 3·1절 기념사의 적절성을 묻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3일 “제국주의 침략이 정당했다고 말할 대통령이 과거와 현재 통틀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왜 과거를 말하지 않냐고 물으니, 윤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가상의 이야기로 ‘그럴 리가 있겠느냐’고 되묻는 식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전범기업의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일본 외무상이 “강제노동은 없었다”고 입장을 밝힌 데 대한 대통령실의 반응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13일 취재진이 하야시 외무상의 강제동원 부정 발언에 대해 묻자, “기시다 총리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포함한 과거의 역사의식을 계승한다고 분명하게 얘기했다”고 답했다. 기시다 총리가 이미 강제동원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느냐는 취지의 답변이다. 그러나 그동안 일본 정부는 자국 전범기업 강제동원의 법적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도 그런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결국 이 관계자는 아무 성립도 안 되는 말을 한 것이다.

윤 대통령과 업무상 연고 관계가 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순신 전 검사를 국가수사본부장으로 발탁했다가 하루만에 임명을 취소한 것과 관련한 대통령실 대응도 기만적이었다. 문제가 된 정 전 검사의 자녀 학교폭력 사건은 과거 언론 보도도 크게 났었고, 강제전학 처분과 정 전 검사 측이 이에 불복해 낸 행정소송 판결까지 났던 사안인 만큼, 간단한 세평 조사만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당사자가 실토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대통령실은 다른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시종일관 이런 태도였다.

작년 미국 순방 때 논란이 됐던 윤 대통령의 “바이든” 발언조차 “날리면”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대응한 건 잡아떼기의 극단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지난 1월 UAE(아랍에미리트)에 갔을 때 윤 대통령이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말했다가 논란이 되자 “UAE가 당면한 엄중한 안보 현실을 직시하면서 한 발언”이라고 중동 정세와 동떨어진 해명으로 넘어가려고 한 일도 있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김 여사가 대표로 있던 코바나컨텐츠와 관련된 업체들이 대통령 관저 공사를 수주한 사실, 김 여사와 대학원 최고위 과정 동기를 선임행정관으로 발탁한 것을 포함해 김 여사 지인들을 대통령실 직원으로 채용한 사실 등의 사안에 직면했을 때도 명쾌한 해명 없이 이와 관련한 의혹 제기가 허위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관련자들의 판결문에 뻔히 적시된 통정거래 정황을 두고도 대통령실이 공식 입장을 내 “김 여사 주가조작 관여 주장이 깨졌다”고 밝힌 것 역시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뻔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석연찮은 해명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우리가 옳다’는 식으로만 대응할 거면, 브리핑은 왜 하고 질문은 왜 받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윤 대통령이 멀쩡한 청와대에 굳이 안 들어가겠다며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기면서 강조한 ‘국민과의 소통’, ‘언론과의 소통’은 이런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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