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에 대한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 이미 많은 비판이 쏟아졌으니 정책 재검토는 당연한 결과다. 이와 함께 윤석열 정부의 국정 운영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해가 많다”며 “노동부의 국민소통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청년 목소리를 더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한 여론 악화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은 1주 40시간에 최대 12시간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현행 제도를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특정 기간은 주 69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허용하도록 바꾸는 것이다. 정부는 대신 다른 기간 장기 휴식을 주는 등 탄력적으로 근로 시간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업주가 필요에 따라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반면, 노동자가 개별 상황에 맞게 노동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는 없어 ‘과로사 조장법’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는 ‘몰아서 푹 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법에서 보장한 연차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노동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비판도 나왔다.
노동시간 개편안 비판에 대해 정부는 잘못된 오해가 있다’고 했지만, 이미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장근로를 늘린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퇴행이었다. 노동시간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보완 방안을 찾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정부안 때문에 벌어진 수많은 논란과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어디서 메꿀 것인가. 이 갈등을 누가 책임지고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정부는 이번 논란을 노동부의 대국민 소통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쉬라”고 말한 당사자가 바로 윤 대통령이다. 후보 시절의 이런 발언은 곧바로 공약으로 발표됐다. 이번 노동부 입법예고도 윤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쳤다. 자신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주도해 벌어진 사달인데, 윤 대통령은 전혀 기억에 없는 듯한 모습이다. 지시한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오직 실제 일을 떠안은 노동부가 문제를 일으킨 양 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는 마치 시혜라도 베푸는 것처럼, 의견을 경청해 보완하겠다고 하고 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가져야할 책임있는 태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뻔뻔하고 치사하다.
노동시간 개편안은 정부 주장처럼 ‘충분히 설명하고 보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개편안 자체를 철회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윤 대통령은 자신의 무책임하고 비겁한 태도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 데 대한 사과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