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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제3자 변제’가 처음부터 자신의 생각이었다는 윤 대통령

한일 정상회담을 앞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내가 생각한 것"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기금을 통한 (제3자 변제) 해결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다"고도 했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굴욕적 해법이 대통령 본인의 생각이었음을 털어놓은 셈이다.

'제3자 변제'안은 대법원의 판결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윤 대통령도 이를 모를 리 없다. 윤 대통령은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8년 대법원 판결로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며 "정치·외교적인 양국의 입장과 (1965년) 협정에 관한 사법부의 해석 사이의 상반된 부분은 정부가 지혜를 모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모두 과거사 문제가 종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 궤를 같이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이런 '고백'은 왜 일본과의 협상이 전혀 진척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서 백기를 들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처음부터 대통령이 이런 입장이었으니 협상에 힘이 실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외교부는 이번 발표에 앞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입장을 듣고 민관협의, 공개토론을 거쳤다고 설명했는데, 이것 역시 모양 갖추기에 불과했던 셈이다.

윤 대통령은 또 한국 쪽이 일본 피고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겠느냐는 일본 측의 우려에 대해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다"고 잘라 말했다. 무슨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나 우리 국민은 대통령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는 정치세력도 많이 있다"며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도 온당하지 않다"고도 했다. 야당과 시민사회의 비판을 두고 한 말일 테다. 그러나 대통령이라고 해서 국민의 여론과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한일관계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윤 대통령이 자신만이 국익의 수호자이며 자신이 결정하면 이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오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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