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신임 지도부를 선출하며 ‘오직 민생’을 외쳤던 국민의힘이 민주노총을 겨냥한 종북몰이에 열중하고 있다. 경제와 민생이 위태로운데 집권여당이 국정원의 스피커가 돼 정략적 선동이나 하고 있으니 걱정이 크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8일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직후 “국민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딱 한 가지 민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임인사차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도 “정당의 궁극적인 목표는 민생 잘 챙기고 국민 잘살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나라 부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가 폭등과 난방비 폭탄은 물론 최근 미국 은행파산 등 위태로운 상황에서 민생을 지키는 일에 집권여당이 관심을 집중하고 총력을 경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발언과 달리 국민의힘은 종북몰이와 민주노총 공격에 한눈을 팔고 있다. 국정원이 ‘간첩단 사건’이라는 공안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민주노총과의 연관을 부각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기밀을 생명으로 하는 국정원이 외투까지 맞춰입고 야단을 떠는 것은 연말로 ‘일몰 예정’인 대공수사권을 지키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설혹 소수가 북과 연계를 가졌다한들 조합원 100만명의 민주노총을 ‘종북’이니 ‘간첩’이니 매도하는 것은 정치공세일 뿐이다. 당장 국정원은 북한이 ‘윤석열 퇴진 투쟁’ 지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는데 민주노총은 아직 퇴진투쟁을 하고 있지도 않다. 국정원과 보수언론은 애먼 촛불단체의 시위를 민주노총으로 오인하게 농간을 했다.
김기현 대표는 14일 페이스북에 “민노총은 노동운동을 빙자한 종북 간첩단이 암약하는 근거지였다”며 “모든 당력을 모아 종북 간첩단과의 전쟁을 선포한다”고 적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회의에서 “북한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 국내세력이 아직도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종북노조의 하루’라는 카드 이미지를 만들어 배포하고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걸었는데 유치함과 조악함이 보는 이를 창피하게 한다. 대변인 논평에는 ‘민노총이 아니라 북노총’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청년최고위원은 라디오에서 법을 뛰어넘는 ‘노조 해체’를 운운하다 진행자와 말다툼을 벌였다. 이게 모두 같은 날 벌어진 일이다.
간첩단이라는 사건은 국정원이 밥그릇을 걸고 열심히 뒤지고 있으니 바쁜 여당까지 가세할 필요는 없다. 수사가 끝나고 재판을 거치면서 사실관계가 명료해질 것이고,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실제 영향력은 그것과도 별개다. 지금 국민의힘은 거센 반대 여론에 부딪힌 ‘주 69시간 노동제’를 두고 대통령실과 고용노동부, 국무총리실이 딴소리를 하는 상황에 책임을 느끼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사안이 한둘이 아니다. 국내외 경제상황은 위태롭고 민생현안이 산적한 만큼 종북몰이 샛길로 빠지지 말고 ‘오직 민생’으로 귀환할 것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