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와이퍼 공장에서 회사 청산을 위해 생산설비를 반출하려는 사측을 막아서던 노동조합 조합원들을 경찰이 연행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한국와이퍼분회
‘기획청산’ 의혹을 받으면서 ‘집단해고’ 사태를 일으킨 한국와이퍼가 거센 반발을 뚫고 공장 생산설비의 일부분을 반출했다. ‘노사 합의 파기’라며 이를 막아 서던 노동자들을 경찰이 끌어내면서 회사 청산 작업을 강행하는 회사를 비호한 결과다.
이를 두고 노동조합은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정상회담을 위한 일본 방문을 앞두고 정부 차원의 개입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와이퍼는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기업인 일본 덴소(DENSO)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한국 자회사다.
16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경기도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국와이퍼 공장의 생산설비가 회사 용역에 의해 반출됐다. 200명이 넘는 노조 조합원들이 몸으로 막아 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보다 더 훨씬 더 많은 경찰력이 투입돼 설비 반출을 막아선 조합원들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한국와이퍼 노조 조합원 대부분은 중년의 여성이다. 다만 노조가 농성을 벌이고 있던 공장 1층의 생산설비는 반출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업무방해 등 혐의로 조합원 4명이 단원경찰서로 연행됐다가 풀려났다. 또한 조합원 3명이 부상을 당해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되는 등 다수가 다쳤다.
한국와이퍼 노조가 회사의 설비 반출을 온몸으로 막은 것은 ‘노사 합의 위반’이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한국와이퍼는 노조와 함께 2021년 9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7월 주주총회에서 회사 청산을 결의했다. 고용안정협약에는 “총고용을 보장한다”, “회사는 청산, 매각, 공장이전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협약을 어기면 1인당 1억 원씩 위약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조항까지 있었다. 일본 덴소의 한국지사인 덴소코리아 대표도 ‘연대보증’을 했던 수준 높은 협약이었다.
하지만 한국와이퍼는 이 협약을 깨고 노조와 합의도 없이 회사 청산을 결정한 뒤 209명의 노동자에게 해고를 예고했다. 이에 노조는 법원에 한국와이퍼 해고 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고, 올해 초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제10부는 “한국와이퍼가 단체협약에 따라 노조와 합의 없이 노동자를 해고해선 안 된다”며 한국와이퍼의 노동자 대량해고에 제동을 걸었다.
그런데도 한국와이퍼는 기어코 해고예고 통지를 보내면서 청산을 밀어붙였고, 그 절차의 하나인 생산설비 매각을 위해 공장 밖으로 반출한 것이었다.
앞서 노조는 “설비 매각은 법원이 결정을 명획히 내리지 않은 부분이고, 이에 대해 이의신청 후 현재 항고 상태에 있다”며 “사측에 즉시 부당노동행위와 고용합의 위반 행위를 멈추고 청산과 관련한 교섭에 성실하게 나서라”고 요구했지만, 한국와이퍼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노조가 온몸으로 한국와이퍼의 생산설비 반출을 막아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와 한국와이퍼 노조는 16일 경기도 안산시 한국와이퍼 공장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조합원 폭력 연행을 규탄했다. ⓒ금속노조
이처럼 노사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노골적으로 사측을 비호한 것을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와 한국와이퍼 노조는 이날 한국와이퍼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스스로 자본의 개가 되어 회사안 사유지까지 침범해 엄연한 회사직원인 한국와이퍼조합원들을 연행했다”며 “노동자들의 법적권리가 짓밟히는 현장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달라는 한국와이퍼 조합원들의 절규 어린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이 막무가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3월 15일 한국와이퍼 사측의 설비반출과 경력 배치에 대해 주무 부서인 고용노동부는 사전에 몰랐던 일이라고 한다이게 사실이라면 고용노동부는 무능하거나 패싱당하고 있거나, 뒷통수를 맞은 것”이라며 “고용노동부는 지난주와 이번주 월요일 교섭을 진척시키기 위해 노사협의 틀을 만들고 있었다. 어렵게 만들어진 판을 경찰이 느닷없이 엎어버린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경찰은 누구의 지시로 이런 짓을 자행한 것이냐. 역시나 윤석열 대통령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은 3월 16일 일본방문을 앞두고 일본 덴소자본과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와이퍼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민원을 받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일본에서 덴소 자본의 영향력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가 나서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것은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일본 정부에게 바치는 선물’이라는 얘기가 괜히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이들은 한국와이퍼가 기획청산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또 포착됐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한국와이퍼는 현대자동차 등에 제품을 납품해왔는데, 회사 청산을 앞두고 다른 회사를 통해 대체생산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와이퍼 사장은 ‘원청사의 부품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설비를 빼야 한다’고 말했다. 원청인 현대자동차도 이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는 고백”이라며 “또한 고용노동부와 국회의원, 심지어 경찰 관계자가 있는 자리에서 노조법이 금하고 있는 ‘대체생산’을 하겠다고 자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은 이처럼 명백한 불법의 자백은 눈감고, 법원의 영장도 없이 사유지인 공장안에까지 들어와 한국와이퍼 조합원들을 연행하는 직권남용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이들은 “단체협약을 헌신짝처럼 차버린 덴소자본과 한국와이퍼 사측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는 경찰이, 노동자들의 삶은 부당한 공권력으로 처참하게 짓밟은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폭력집단입니다. 3월 15일 한국와이퍼 공장은 윤석열 정부의 폭력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현장이었다”고 밝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민주당 을지로위는 한국와이퍼 생산설비 반출이 진행된 전날 국회 소통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한국와이퍼 대량해고 사태의 본질은 사측의 고의적자 및 기획청산 의혹이다. 또한 한국와이퍼 뿐만 아니라 일본덴소그룹의 계열사들까지 연대보증하며 노동자들과 체결한 고용안정협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일방적 청산절차와 대량해고를 강행한 사이다. 결국 일본기업이 대한민국 국민을 기만한 사건”이라며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일정상회담 출국 당일 새벽, 일본기업의 횡포는 눈감아주고 대한민국 국민을 버렸다”고 규탄했다.
이어 “한국와이퍼 공장에 대한 대규모 공권력 투입은 왜 하필 오늘인가. 일본 정부가 불편할까봐 한일 정상회담 앞두고 일본기업에 맞서는 눈에 가시거리같은 한국노동자들을 정리해준 것인가”라며 “이게 나라인가. 윤석열 정권은 기시다 정부의 용역업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는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을지로위는 “이 사태는 사측이 용역을 투입하는 날짜와 대규모 경찰병력 투입 시점이 사전에 협의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노사가 서로 가처분 및 민사소송을 진행하면서 상호간의 권리를 다투는 상황임에도 대한민국 경찰이 일본덴소그룹의 이해만을 보호하는 형태로 움직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그 배후와 과정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