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땅에서 ‘강제동원 배상’ 대법원 판결 부정해준 윤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2023.03.16. ⓒ뉴시스

공동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문제 언급 X
강제동원 피해자 사실상 삭제
일본 총리 앞에서 한국 사법부 판결 부정
기시다 ‘강제동원’ 책임 인정 X
기시다 과거사 직접 사과 X
일본 측 조치는 경제보복 일부 해제
강제동원 배상과 하등 상관없는 양국 경제단체 기금이 성과?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일본 현지에서 전범기업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사법부 판결을 부정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직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핵심 현안인 강제동원 판결과 관련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질의응답 과정에서 일본 기자의 구상권 청구와 관련한 질문에 답하면서 강제동원 판결을 부정하고, 구상권 청구도 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윤 대통령은 ‘한국 재단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 상당의 자금을 지급한다고 하는데 구상권 문제가 남아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한국 정부는 1965년 협정과 관련해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를 정부 재정으로 처리했으나, 2018년에 그동안 정부의 입장과 1965년 협정 해석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됐다”고 먼저 답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 전범기업의 강제동원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는 선언을 일본 총리 앞에서 한 셈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 “우리 정부는 이것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한국 정부가 이 협정에 대해 해석해온 일관된 태도와 판결을 조화롭게 해석해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고 발전시켜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금에 의한 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발표했다”고 말했다.

또한 “만약에 구상권이 행사된다고 한다면, 이것은 다시 모든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구상권 행사라는 것을 판결 해법 발표 취지와 관련해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한국 사법부 판결이 1965년 청구권 협정 해석과 어긋난다는 윤 대통령의 말은 논란의 소지가 크다. 당시 청구권 협정에서는 개별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까지 배제한 적이 없고, 대법원 역시 판결에서 청구권 협정으로 개별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해석했다. 또한 윤 대통령이 언급한 우리 정부 재정으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 개념의 보상을 해준 것은 일본 기업의 법적 책임과는 무관하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책임을 앞장서서 부정해줌에 따라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관련 메시지 부담도 한층 가벼워질 수 있었다.

기시다 총리는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에서 일본 제국주의 침략 행위에 관한 포괄적 사죄 입장조차 밝히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가 과거사와 관련해 언급한 건 “1998년 10월에 발표했던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해 역대 내각의 인식을 계승해 나갈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일본의 강제동원 책임을 인정한 사법부 판결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퇴행적이다. 당시 공동선언에는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이 담겼었는데, 이 선언에 기초한다면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이 강제동원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또한 기시다 총리의 “일한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과 관련해 역대 내각의 인식”이라는 말 자체가 모호한 측면도 있다. 일본의 역대 내각 중에는 침략 행위에 대한 포괄적 사과 입장을 밝힌 경우도 있는 반면, 2012년 이후 아베 전 총리의 장기 집권 시기는 침략 행위 자체를 부정하는 등의 일본 정치권의 우경화 흐름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을 부정한 내각의 인식도 포함하느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특히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불법성 자체를 인정한 내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기시다 총리는 “얼마 전 한국 정부는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에 관한 조치를 발표했다”며 ‘강제동원 피해자’가 아닌 ‘구 한반도 출신 노동자’라는 표현을 썼다. 불법성은 물론 강제성마저 담기지 않은 표현이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극찬했다. 그는 “일본 정부로서는 그 조치를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으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일본으로선 가장 부담이 됐던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해결해준 반면, 일본 측이 내놓은 것이 우리 측에 얼마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는 모호해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수출규제와 관련해 진전이 있었다”고 했고, 윤 대통령도 “오늘 일본은 3개 품목 수출규제 조치를 해제하고, 한국은 WTO 제소를 철회했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 측이 수출을 규제했던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경우 상당 부분 국산화가 이뤄진 데다, WTO 제소의 경우 승소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다. 현시점 기준으로 우리가 얻는 이익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해제하고 한국도 WTO 제소를 철회했다’는 윤 대통령의 말도 앞뒤가 맞지 않다. 정확하게는 한국이 먼저 WTO 제소를 철회하겠다고 못 박았고,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 해제를 한국과 협의하겠다고 했으며,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것 역시 사실상 우리가 양보한 셈이다.

양국 정상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미래 파트너십 기금’ 조성을 마치 성과처럼 언급하는 것도 궁색하다.

당초 이 기금 조성안은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관련한 전범기업의 간접적인 기여조차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견고한 입장 때문에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 시기와 맞물려 사실상 궁여지책으로 나온 안이다. 정작 이 기금은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에 쓰이는 기금인 데다, 굳이 정상회담 계기 성과로 내놓을 만한 것으로 보기엔 다소 빈약해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일본의 국익과 우리 국익을 동일시하는 발언도 했다. 그는 “양국 교류가 활성화되고 문화와 예술, 학술교류가 더 왕성해진다면 양국이 함께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대단히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국익이고, 우리 국익은 일본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양국 정상은 북한 핵·미사일에 대비한 한·미·일 안보협력 확대 추진 필요성을 확인하고,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도 정상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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