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일가에 대한 폭로를 연일 이어가고 있다. 전 씨 일가의 호화 생활 뒤에 ‘검은 돈’이 있었다는 것이다. 손자 전 씨의 주장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전 씨 일가의 그간 행태로 미루어 상식적으로 제기되어 온 의혹과도 부합한다.
손자 전 씨는 전두환 일가가 막대한 비자금을 다양한 방식으로 몰래 써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유학을 비롯한 미국 생활에 대해서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일 년에 몇 억씩 하던 자금들 때문이다. 학비와 교육비로 들어간 돈만 최소 10억인데 깨끗한 돈은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할머니 이순자 씨가 연희동 자택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 계좌로 학자금을 보내줬다는 증언도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외화 송금 자체가 불법이다.
자신이 받았던 유산에 대해서도 비엘에셋이라는 회사의 지분 20%, 웨어밸리라는 회사의 비상장 주식, 준아트빌이라는 회사 소유의 고급 부동산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총 수십 억대 규모였다고 밝혔다. 주변인 명의로 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돈을 숨겼다는 것이고 자신이 받았던 유산은 그 일부라는 것이다. “웨어밸리도 경호원이 설립하게 해서 그런 조직들을 양도하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아버지의 형제들인 전재국 씨와 전재만 씨를 비롯한 그들의 자녀들은 더 많은 유산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전재국 씨가 제3자를 내세워 운영하는 회사들을 지목했고, 전재만 씨가 미국에서 대형 와이너리를 운영하는 점을 들며 “많은 돈이 필요한 사업들만 골라서 진출했다”고 주장했다.
고(故) 전두환 씨는 1996년 대법원에서 반란, 내란, 수뢰 등 혐의로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부과 받았다. 하지만 다음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면으로 풀려났고 20년 넘게 추징금 납부를 미뤘다. 결국 환수된 금액은 1279억 원에 불과하고 900억 원이 넘는 돈을 끝내 내지 않고 사망했다. 손자 전 씨의 폭로는 추징금을 낼 돈이 없다는 전두환 씨 측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의심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추징했어야 할 돈이 정말 2205억 원밖에 안 됐는지도 회의하게 된다.
손자 전 씨는 1996년생이다. 어떤 부분은 어린 시절 기억과 본인의 추측이 섞여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가족 내부에서 나온 이번 폭로는 한 가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법의 심판 이후에도 전두환 씨와 그의 가족들은 여전히 호화롭게 살았다는 점이다. 검찰의 추적을 피해 감춰둔 막대한 검은 돈의 존재가 없었다면 어떻게 따져 봐도 설명할 길이 없다.
‘전두환 비자금’을 언제까지 의혹으로만 놔둘 수는 없다. 전두환 비자금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범죄다. 적극적으로 진실을 밝히고 환수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