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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한국 대통령 이름은 윤석열인가 윤서쿠여루인가?

한국 대통령이 버젓이 기자회견에서 “우리 국익은 일본의 국익과 배치되지 않는다”라고 떠들어댄다(‘씨불여댄다’라고 하려다 참았다). 이게 뭔 말 갖지도 않은 소리냐? 잘 모르고 들으면 일제 강점기 때 내선일체를 목 놓아 울부짖던 친일파 주장인 줄 알겠다.

한일 정상회담이라는 걸 했다는데 얻은 것은 개뿔도 없고 받아든 청구서만 잔뜩이란다. 내 평가가 아니라 한일 양국 언론의 평가가 그렇다. 그나마 쪽팔린 줄은 아는지 우리 정부는 말을 흐리거나 대충 부인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아주 신이 났다.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규제 완화에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까지 정상회담 현안에 포함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들이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지는 않았을 터. 그렇다면 이런 문제가 정상회담 자리에서 광범위하게, 친일의 관점에서 논의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러면 이걸 정상회담이라고 불러야 하나, 빵셔틀 회담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나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삼일절 발언 이후 잇따른 친일 행보를 보며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님, 혹시 일본인이세요? 본명이 윤석열이 아니라 윤서쿠여루 아니어요? 그러지 않고서야 이따위 짓을 이렇게 태연한 표정으로 버젓이 저지를 수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

미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진 대통령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꼭 포함하는 단어가 ‘미래’다. 그는 이따위 굴욕외교를 벌여놓고도 어딜 가서도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는 말로 이를 포장했다.

그런데 이 멍청한 대통령님아. 그거 알고 있나? 역사는 이어지는 것이어서, 미래란 과거라는 반석 위에 서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과거가 없고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상식적인 이야기를 내가 이 나라의 대통령에게 하고 자빠져야 하는 이 현실을 뭐라 설명할 것인가?

미래를 논하기 전에 왜 과거가 정확히 규명되고 평가돼야 하는지에 관한 연구를 하나 소개하겠다. 인류가 본능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얼마나 잘 왜곡하는 동물인지에 관한 연구다. 기억 전문가이자 인지심리학자 엘리자베스 롭터스(Elizabeth Loftus,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는 인간의 기억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심리학자다.

롭터스는 “기억은 위키피디아와 같다”고 주장한다. 즉 기억이란 컴퓨터 하드디스크처럼 원본을 정확히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보태지고 각색돼 새로운 무엇으로 재구성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이 본 어떤 장면을 100% 온전하게 저장하지 못한다. 위키피디아처럼 기억은 자꾸 수정된다. 이렇게 재구성이 이뤄지면 원래 일어났던 사건과, 내가 갖고 있는 기억은 전혀 딴판이 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롭터스가 실험에 나섰다. 참가자들을 다섯 그룹으로 나눈 뒤 그들에게 차량 충돌 사고 동영상을 보여줬다. 그리고 각 그룹에게 “충돌 당시 자동차의 속도가 얼마였나?”를 물었다. 그런데 다섯 질문의 뉘앙스가 조금씩 달랐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자동차가 접촉했을 때(When they contacted each other)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죠?”라고 물었다. 충돌을 ‘접촉(contact)’이라고 순화해서 표현한 것이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자동차가 부딪쳤을 때(When they hit each other)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었죠?”라고 물었다. 접촉(contact) 보다 부딪힘(hit)은 조금 더 강한 표현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3.03.16. ⓒ뉴시스

세 번째 그룹에게는 접촉(hit)보다 조금 더 강한 ‘약한 충돌(bump)’이라는 단어를 썼고, 네 번째 그룹에게는 충돌(collide)라는 단어를 썼다. 그리고 마지막 그룹에게는 ‘충돌해서 박살이 났을 때(when they smashed into each other)”이라는 강력한 단어를 사용했다.

똑같은 충돌사고 장면을 본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단지 질문에 한 단어씩만 바꿨을 뿐이다. 그런데 이 작은 변화에 응답자들의 기억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접촉(contact)”이라고 물었을 때 응답자가 기억한 충돌 당시 차의 속도는 평균 31.8마일이었다. 반면 “부딪힘(hit)”이라는 단어로 물었을 때 차의 속도는 34마일까지 올라갔다. “가벼운 충돌(bump)”에서 속도는 38.1마일, 충돌(collide)이라는 단어에서 이 수치는 39.3마일로 높아졌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박살(smash)”이라는 강력한 단어로 물었을 때 기억의 속도는 무려 41마일로 치솟았다. 단지 단어 하나 바꿨을 뿐인데, 기억의 차이가 최대 30% 넘게 벌어진 것이다.

심지어 “박살(smash)”이라는 질문을 받은 이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충돌 당시 깨진 유리 파편이 엄청 많았어요”라고 답을 했다. 그 동영상에는 깨진 유리 파편이 한 조각도 없었는데 말이다.

역사는 윤서쿠여루에 의해 왜곡될 수 없다

기억이란 이런 것이다. 그래서 지금 윤서쿠여루, 아니 참, 윤석열 대통령의 미래 운운이 위험한 짓이라는 거다. 누가 미래가 중요한 거 모르냐? 하지만 양국의 역사에는 잊힐 수 없고, 잊혀서도 안 되는 참혹한 과거가 있다. 그 과거의 피해자인 우리는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아직 받지 못했다. 그 처참한 역사의 피해자들이 아직도 버젓이 살아계시다.

그런데 지금처럼 한국 정부가 미래 운운하며 친일 행보를 보이면, 우리의 먼 미래 세대들이 일제 강점기를 어떻게 기억할 것 같은가? 식민지근대화론 같은 개뼈다귀 같은 이론을 받아들이며 “일본이면 뭐든 좋아요. 우리에게는 미래가 중요하잖아요” 이러지 않겠는가?

더 위험한 것은 일본이 자행한 군국주의적 침략 행위에 대한 평가다. 우리가 이 점을 분명히 기록하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마치 일제가 저지른 그런 침략이 정당한 행위처럼 미화될 수 있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일제의 침략적 만행이냐, 조선 진출이냐, 이 간단한 단어 변환만으로도 우리의 기억은 왜곡된다. 만약 윤서쿠여루, 아니 참, 윤석열 대통령의 저 친일행보를 우리가 막지 못한다면 우리의 기억은 현저히 왜곡될 것이고 우리의 미래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잊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미래는 과거라는 반석 위에 서 있는 시간적 연속물이다. 과거를 없는 셈 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가능해서도 안 된다. 일본은 그 과거를 덮고 싶겠지만, 우리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윤서쿠여루, 아니 참,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자빠졌는가?

우리 민중들은 윤석열 정권의 역사 왜곡 시도에 실로 결연히 맞서야 한다. 우리의 미래 세대에게 우리의 선조들이 겪었던 그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해주며 진정 올바른 미래를 도모할 기호를 줄 것인가, 아니면 기억을 처참하게 왜곡 당한 친일적 사관을 물려줄 것인가? 그 선택의 기로가 바로 지금 우리 민중들의 앞에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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