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길벗 칼럼] 주 69시간 노동이 초래하는 것은 ‘건강 박살’

과로 사회가 달라지지 않으면, 어떤 명약을 처방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이 한창 화두가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유연근무제를 활용해 최대 주당 69시간까지 일하는 게 가능하게 만들겠다고 야심차게 밝혔다가 청년세대·노동계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았다. 그러자 윤 대통령이 급하게 수습에 나서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며 말을 바꾸는 모습이다. 

현재 한국에선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주당 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 노동 가능 시간 12시간을 합친 ‘주 52시간제’가 시행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 69시간제’는 앞으로 주 52시간제에서 벗어나 월 단위, 분기 단위, 반기 단위, 연 단위로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게 해, 한 주에 69시간까지 일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몰아서 근무하고 몰아서 쉬라’는 뜻 같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3.03.06 ⓒ뉴시스

문제는 이 개편안이 현재 한국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조치라는 점이다. 통계적으로 매년 법정 연차를 다 쓴 사람은 직장인 10명 중 2명 뿐이고, 지난해엔 직장인 40% 정도가 연차를 6일 미만 사용한 한국에서 과연 ‘몰아서 쉬기’가 실제 가능할까. 

정부 발표 이후 온라인에는 ‘주 69시간 근무표’가 이미지로 만들어져 주목을 끌었다. 그 내용을 보면 충격적이다 못해 공포스럽다.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하려면, 평일 5일 동안 아침 9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1시에 퇴근하는 패턴을 반복해야 한다. 그 동안 하루 5시간 밖에 잘 수 없다. 

이 근무표 그대로 일하면 결국 병원에 갈 수 밖에 없다. 수면 불량, 소화 불량, 만성 피로 등 현대인의 고질병으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근무표엔 애초에 노동자의 병원 진료 일정을 넣어놓았는지도 모르겠다. 

주 69시간 노동 시간표 ⓒ트위터 갈무리


과로는 노동자 건강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일단 수면 부족이 생길텐데, 그러면 건강을 망치는 지름길로 가는 셈이다. 인지 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면역 체계 약화 등 증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또 시간이 없을테니 운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루 1시간, 주 3회 이상 운동을 하지 않으면,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아진다. 더불어 만성 피로에도 시달리게 된다. 노동시간 제도 개편 전인 지금도, 이런 증세를 호소하는 환자 분들이 적지 않다. 

한의학에서는 신체가 허약해져 제대로 기운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를 ‘허로(虛勞)’라 한다. 허로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일을 지나치게 하거나 음식 섭취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감기약으로 알고 있는 쌍화탕(雙和湯)은 사실 일을 지나치게 해 생기는 피로와 몸살의 회복을 돕는 약이다.

과로로 어떤 장부가 허약해지느냐에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크게 상초(上焦), 중초(中焦), 하초(下焦)의 허로를 구분해 본다. 이중 상초(목구멍에서 횡격막 또는 위의 분문까지의 가슴 부위)의 허로란 만성피로 상태다. 현대인 대부분이 겪는 기운이 없고 금방 지치는 상태를 뜻한다. 

만성 피로(자료 이미지) ⓒpixabay

다음 중초(횡격막에서 배꼽까지의 윗배)의 허로란 기운이 없는 것을 넘어, 소화기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상태이다. 이 상태에선 기운이 없는 것에 더해 소화도 되지 않는다. 하초(배꼽 이하 부위) 허로가 되면, 생식기·비뇨기계에 문제가 생긴다. 화장실에 가는 게 힘들고, 성관계를 할 에너지도 없어 진다. 환자 분들을 상담하다보면, 상초의 허로는 비일비재하고 중초, 하초의 허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게 현실이다. 

우리는 건강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일한다. 그런데 일 때문에 나의 건강을 희생한다면, 끝에 만나게 되는 건 절망 뿐이다. 한의원에 오신 환자 분들의 ‘허로’는 보약으로 치료할 수 있지만, 과로 사회가 달라지지 않으면 어떤 명약을 처방해도 결국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따름이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