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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RM 인터뷰, 무엇이 문제인가

그룹 BTS(방탄소년단) 멤버 RM ⓒ뉴시스

지난 3월 12일 스페인의 매체인 엘 파이스(El Pais)가 공개한 BTS의 멤버 RM과의 인터뷰가 한동안 화제였다. 인터뷰가 알려진 후, RM을 상찬하는 목소리가 줄을 이었다. 특히 “젊음에 대한 숭배, 완벽에 대한 숭배, 케이팝에 대한 과도한 긴장이 한국의 문화적 특성”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RM은 “수세기에 걸쳐 다른 사람들을 식민지로 만들어온 나라인 프랑스나 영국에 살면서” 이런 질문을 한다고 따끔하게 되받아쳤다며 속 시원하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한국의 자랑스러운 월드스타가 서구 기자의 무례한 질문에 당황하거나 기죽지 않고 논리적으로 반론하면서 국격을 높였다는 평가 일색이었다.

하지만 RM의 인터뷰 가운데 케이팝에 대한 평가와 한국의 문화적 특성에 대한 답변은 문제적이다. “개인을 위한 시간은 많지 않지만, 그것이 케이팝을 빛나게 한다”는 답변이나, (아이돌밴드의 시스템이 비인간적이지만) “부분적으로 특별한 산업으로 만드는 것도 있다”는 답변은 자신처럼 성공한 케이팝만 절대시한 발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길지 않은 인터뷰에서 나눈 발언을 평가하는 경우 자칫하면 발언의 의도를 곡해할 수 있지만, RM에게 질문을 더 던져볼 이유는 충분하다.

내가 엘 파이스의 기자였다면 몇 가지 질문을 추가했을 것이다. 지금 성공한 케이팝 뮤지션들은 아주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고, 성공하지 못한 케이팝 뮤지션들은 아주 열심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방탄소년단이 지금처럼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다 알 수는 없다 해도 방탄소년단의 성공을 일반화할 수 있느냐고. 그리고 “계약서나 돈, 교육적인 측면에서 상황이 많이 개선되어서 선생님들도 계시고 심리선생님들도 계시니” 충분하느냐고 말이다.

방탄소년단 RM, 솔로 앨범 'Indigo' 스틸이미지. 2022. 12 ⓒ빅히트뮤직

이런 질문을 이어서 던져야 할 이유는 넘친다. 케이팝의 엄청난 성공이 아주 어린 사람들이 아주 열심히 노력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라 해도 그 방식이 최선이며, 앞으로도 그 방식을 계속 이어가도 된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RM은 성공했기 때문에 BTS의 노력을 자랑스럽게 회상할 수 있겠지만, BTS처럼 혹은 그보다 노력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케이팝 뮤지션들이 숱하게 많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청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모든 시간과 열정을 쏟아 부으며 갈아 넣어도 성공하기 어려운 경쟁구조, 그래서 실패할 경우 추억과 경험 말고는 남지 않는 잔인한 경쟁구조의 장점만 찬미해도 좋은 것일까. 물론 RM은 아이돌밴드의 시스템이 비인간적이냐는 질문에 부분적으로 인정한다고 밝혔지만, 고통을 견디지 못해 활동을 중단하거나 스스로 세상을 버리기도 하는 현실 앞에서 “너무 빠르고 강렬하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부작용이 있다”고만 말하는 태도는 무척 안일하고 무심하게 들린다.

전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이유는 “한국인들은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 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긴 노동시간은 성실과 근면이라는 프레임으로 긍정적으로만 이야기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높은 산재율, 수많은 이들의 공황장애·번아웃·우울증, 그리고 출생률 0.78이라는 현실이 정말 열심히 일한 이들이 돌려받아야 할 결과물이라면 너무 처참하지 않나. 물론 RM은 사회평론가가 아니고,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나 케이팝 산업의 그림자에 대해 RM이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에 대해 냉정한 문제의식을 가졌다면 남아있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는 RM에게 이 같은 생각을 불어넣은 하이브의 책임자와 우리 사회에 있다. RM이 자신의 성공을 일반화하는 능력주의적 사고를 드러냈음에도, 별다른 비판과 토론을 이어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반응이 가장 문제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의 지적처럼 RM의 인터뷰는 “전형적인 ‘그쪽이야말로주의’(Whataboutism)”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운데다, 경제성장이나 케이팝의 성공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이제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에도 이 부분을 지적하는 언론, 지식인, 대중음악계의 목소리는 드물었다. 특히 케이팝 전문가로 알려진 이들 중에 RM발언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BTS와 RM이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는 ‘국뽕’의 막강한 증거이기 때문일까. RM의 이야기에 공감한 이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BTS의 성공 앞에서 입을 닫아버린 결과이거나, RM의 발언이 얼마나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이른바 국위를 선양한 이들에게는 무한한 용비어천가만 가능하다. 이 같은 현상은 같은 케이팝 뮤지션임에도 몇몇 여성뮤지션이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거나 자신의 의견과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낼 때마다 쏟아지던 비난과 대조적이다. 케이팝 뮤지션이 철학을 가져도 되지만, 한국의 주류 가치나 외향적 성공을 옹호할 때만 긍정적이다. 특히 여성 뮤지션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발현할 경우 일방적인 비난이 쏟아지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RM의 인터뷰는 성공한 케이팝 뮤지션의 인식과 우리 사회의 자화상까지 동시에 박제한다. RM 덕분에 세상이 더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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