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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뜨거운 화산을 그림에 담은 ‘라이오넬 윌든’

수도권에도 산수유, 개나리, 목련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겨우내 숨죽이고 깊은 잠을 자던 생명을 깨우는 힘은 좀 더 풍부해진 일조량 덕택이겠지만, 꺼지지 않고 대지를 데우는 지열의 힘도 있습니다. 그 힘이 가끔 땅을 뚫고 ‘화산’으로 나올 때도 있지요.

혹시 미술사에 ‘화산파 (Volcano School)’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하와이의 극적인 밤 풍경을 그린 화가들 가운데 하와이 출신이 아닌 화가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미국의 라이오넬 윌든 (Lionel Walden / 1861~1933)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와이키키의 횃불을 든 어부들 The Torchlight Fishermen, Waikiki c.1920 oil on canvas ⓒ호놀룰루 미술관, 미국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지자 횃불은 든 어부들이 해안가로 나왔습니다. 하늘이 밝게 묘사된 것은 맑은 밤이라는 뜻이겠지요. 문득 바다에 비친 횃불 모습이 고흐의 작품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계를 위해 밤에도 바다로 나와야 하는 사람들의 고단함이 떠 오릅니다. 건너편 멀리 보이는 불빛들, 남편과 아들을 밤바다로 내보내고 잠 못 이루는 식구들의 글썽이는 눈빛 같습니다.

윌든은 미국의 코네티컷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미술 공부를 위해 파리로 건너간 그는 카를로스 뒤랑의 학생이 됩니다. 뒤랑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아카데믹 기법의 화가였는데, 존 싱어 서전트도 그에게서 그림을 배웠지요. 훗날 윌든의 기법이 인상파로 바뀌었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이때 배운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화산 Volcano c.1920 oil on canvas ⓒ호놀룰루 미술관, 미국

직접 활화산을 본 적은 없지만, TV나 사진을 통해서 볼 때마다 늘 경이롭습니다. 내가 사는 땅의 속살과 마음을 보는 것 같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가슴 속에 불덩어리 하나씩은 가지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열기로 타인을 다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몸과 주변을 따듯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제 몸속의 그 불덩어리도 점차 식어 가고 있지만, 적어도 피해를 주지 않게 된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일까요?

처음 윌든은 인물을 주제로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점차 바다 풍경으로 주제를 바꿔 갑니다. 윌든은 파리 살롱전에 자주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살롱전에서도 윌든은 메달을 수상합니다. 1900년에는 파리 박람회에서 은메달을, 1903년에는 살롱전에서 3등 메달을 수상합니다. 이어 런던과 세인트루이스,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박람회에서도 수상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1910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작위도 받습니다.

하와이 어부 Hawaiian Fisherman 1924 oil on canvas 182cm x 76cm ⓒ호놀룰루 미술관, 미국

그물을 든 사내가 바닷가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구름이 사이로 내려온 햇빛이 바다를 비추고 있는데 몰려오는 파도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수없이 드나들었던 바다이지만 이렇게 입수하기 전에는 늘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검게 묘사된 사내의 등과 몸의 실루엣에서는 굳건하게 버티고 살아온 어부의 생활이 녹아있습니다.

그림 속 어부만 그럴까요?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마음 편하게 시작해서 끝나는 날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있었을까요?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심호흡하고 바닷속으로 몸을 밀어 넣어야겠습니다. 아니 밀어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그 바다에서 돌아왔기를 기도합니다.

1911년, 윌든은 동료 화가로부터 초청을 받습니다. 장소는 하와이였습니다. 1년 가까이 하와이에 머물면서 그곳의 풍경에 빠져들게 됩니다.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변덕스럽지만, 빛이 충만한 바다 풍경을 그림에 담았고 그는 그곳에서도 곧바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윌든은 그 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은 시간의 반을 하와이에서 보낼 만큼 자주 그 곳을 찾게 됩니다.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에는 호놀룰루에 있는 공공건물의 벽화를 그리는 작업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또 하와이에서 그룹전을 개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계속 지속합니다.

이후 윌든은 파리 북쪽에 있는 샹티에서 일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미국에서 자랐지만, 파리와 영국 그리고 하와이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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