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정성철 칼럼] 박경석과 최옥란과 최정환, 그리고 엄혹한 3월

이 시대에도 장애인과 노점상의 ‘함께 살자’는 외침과 저항의 몸부림을 향한 폭력은 변한 게 없다

법원이 지난 3월 16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박경석은 이튿날 서울경찰청 앞에서 경찰의 체포 영장 집행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한 후, 현장에서 체포돼 남대문 경찰서로 들어갔다.

그를 체포할 때 경찰은 휠체어 이용자를 태울 이동수단이 없어, 서울시가 보유한 버스를 대여했다. 경찰은 박경석에 대한 체포영장을 법원에 신청하며, 지난 3년 간 서울 지하철에서 장애인의 이동과 교육, 노동과 주거 등 지역사회에서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투쟁을 하며 수차례 법을 어겼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17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앞에서 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철창 속에서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에 따른 입장발표 기자회견에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3.03.17 ⓒ민중의소리

그 한달 전인 2월 10일엔 법원에서 노점상인들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이 재판에선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최영찬 위원장과 최인기 부위원장을 포함해 총 6명의 노점상인들에게 1년 반에서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이들이 지난 2014년 강남대로, 2016년 이수역 등에서 대책 없이 노점을 철거하려는 단속반에 저항했다는 이유였다.

오는 3월 26일은 뇌성마비(뇌병변) 중증장애 여성이자 한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한부모였고, 청계천 변에서 노점을 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 이후 수급자가 된 최옥란의 스물 한 번째 기일이다. 고인은 1989년엔 장애인의 노동권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공화당사를 점거했다. 2001년 2월엔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했다. 같은 해 12월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최저생계비(급여) 현실화와 민중 생존권 쟁취를 요구하며, 명동성당 앞에서 농성 투쟁을 했다. 그러다 이듬해 세상을 등졌다.

최옥란이 세상을 떠난 지 21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장애인들은 여전히 지역사회에서 평등하게 살 권리와 존엄을 박탈당한 상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발표한 ‘2020년 장애인 빈곤 및 소득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의 가처분소득 기준 빈곤율은 42.2%로 전체 인구 빈곤율인 16.3%의 2.6배에 달한다. 더불어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화마에 휩쓸린 장애인, 시설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리와 인권 침해, 발달장애인과 부모가 함께 세상을 등지는 일 등 각종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질 때도 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반복되는 경우가 더 많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최옥란 열사 추모대회에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오는 3월 21일은 고아원에서 생활했고 척수마비 중증장애인이자 노점상이었던 최정환의 28번째 기일이다. 장애가 있고 가난했던 최정환은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 노점상이 됐다.

그는 1994년 서울 서초구 방배역 부근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하다 구청 직원들의 폭력적인 단속으로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살아야 했기에 계속 노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민등록 상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제도의 대상도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듬해인 1995년 3월, 최정환은 구청 노점단속반에 생계수단을 모두 빼앗겼다. 그 일이 있고 한 시간 뒤, 그는 구청 앞에서 물품을 되돌려 달라고 항의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최정환의 죽음으로부터 28년이 지났지만, 노점상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시선은 변한 것이 없다. 노점상인들이 감당하는 현실도 그대로다. 더 화려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점상을 없애려는 시도는 전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노점상인들은 생계를 위해 ‘단속’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맞설 수밖에 없지만, 폭력에 맞섰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경제 발전 과정에서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가장 먼저 퇴출되고 있다. 혹은 경쟁의 출발선에 서는 것조차 가로막히는 게 현실이다. 노동, 주거, 교육, 의료와 같이 사회가 기본권이라고 정의하는 것들을, 존재 자체를 빌미삼아 빼앗는다.

1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노점관리정책분쇄․가이드라인철폐! 폭력철거 중단! 노점생존권 사수를 위한 613정신계승 노점상투쟁 결의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06.11 ⓒ김철수 기자

최정환과 최옥란이 살았던 시대를, 당시 어렸던 내가 체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2014년 강남대로와 2016년 이수역에서 노점상인들을 내몰기 위해 자행된 폭력은 알고 있다. 지자체는 노점상을 없애겠다며 수억에서 수십억의 예산을 들여 용역 깡패를 동원했다. 그들이 부른 용역들이 노점상인들에게 욕을 하며 밀고 물건을 던지고 노점마차를 부수던 폭력은 내 피부에 아로새겨져 있다. 장애인이 지하철역 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한 비극에 대해선 사과 한마디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는 외침을 외면한 서울시. 지하철을 무정차시키고, 공공연히 차별과 혐오를 선동한 정치인들의 폭력도 없어지지 않을 상처로 남아 있다.

최옥란과 최정환이 살았던 그때보다 사회적으론 나아진 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과 노점상인의 ‘함께 살자’는 외침과 저항의 몸부림에 행사되는 폭력은 변한 게 없다. 더불어 당시보다 나아진 게 있다면 폭력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통해 변화시키고 만들어낸 법과 제도일 것이다.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와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비롯한 사회 복지 서비스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박경석을 체포할 때 경찰이 서울시에서 빌린 휠체어 탑승 가능 버스 역시, 전장연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장애운동이 벌여 온 이동권 투쟁의 결과다.

정세가 엄혹하다. 서울시와 정부는 전장연의 투쟁을 탄압하기 위해 활동가들에게 출석 요구서를 남발하고 있다. 또 작년에 평가했음에도 활동지원서비스와 중증장애인공공일자리에 대한 표적·일제조사를 통해 탄압을 시도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인 문성호 서울시의원은 노점상을 없애는 내용의 조례 발의를 예고한 상태이고, 서울 동대문구청은 특별사법경찰을 투입해 동대문구 내 노점을 철거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러한 의지와 행동력을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쓴 적이 있던가? 장애인, 노점상인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대화에 나선 적이 있던가? 공공영역에서 마땅히 수행하고 달성해야 할 ‘공익’의 범위엔, 왜 가난한 이들의 삶이 포함되지 않을까?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23일 서울 중구 지하철 1호선 시청역 승강장에서 열린 ‘전장연은 서울시 적군이 아니다!’ 서울420장애인차별철폐연대 투쟁 선포 결의대회에서 오세훈 시장과 대화와 장애인권리예산 등을 촉구하며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3.23 ⓒ민중의소리

진보적 장애운동은 매년 최옥란의 기일인 3월 26일을 기점으로 ‘4·20 전국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투쟁을 선포한다. 2023년엔 3월 23일 목요일부터 1박 2일 동안 삼각지역과 시울시청역 인근에서 전국장애인대회가 열린다. 3월 25일엔 서울시의회 앞에서 정부의 노점상 탄압과 서울시의 노점상 말살 조례 추진을 규탄하는 빈민대회가 열린다.

불평등이 날로 심각해진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각자도생을 강요한다. 이런 사회에서 장애인과 노점상인의 생존과 존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누구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다. 이윤을 위해 존엄과 생명을 짓밟는 것이 용인되는 사회, 장애인과 노점상인에 이어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착취의 그림자가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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