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교비정규직) 조합원들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역 근처에서 열린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급식 폐암 이상소견 당사자 결의대회에서 급식실 환경 개선과 폐암 산재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3.25 ⓒ민중의소리
작업복을 입은 학교 급식 노동자들이 25일 거리로 나와 “죽고 싶지 않다”고 외쳤다. 이들은 교육당국이 ‘환기 시설을 개선하고 인력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무시해, 학교 급식실이 죽음의 일터가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날 노동자들은 급식을 만들 때 입는 하얀색 모자와 가운, 분홍 앞치마 위에 몸자보를 걸쳤다. 몸자보 등에는 ‘이상소견 당사자’라는 문구가, 앞에는 손글씨로 ‘나도 가족 있다.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 ‘무섭다. 폐암’이라는 심경을 담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은 이날 서울 용산구 서울역 인근에서 ‘학교급식 폐암 이상소견 당사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 현장엔 건강 검진에서 폐암 확진, 폐암 의심을 포함해 이상소견을 받은 급식 노동자들이 참석해, 현장의 위험한 실태를 전했다. 학비노조는 정부와 교육당국에 노동환경의 신속한 개선과 인력 충원, 아픈 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와 지원 등을 강하게 촉구했다.
폐암으로 투병 중인 급식 노동자 A 씨가 직접 무대에 올라 힘겹게 이야기를 전했다. 어렵게 뗀 입술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작은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간신히 들렸다. 그는 지난 2011년 서울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 입사해 10여 년 간 근무하다 폐암 확진 판정을 받았고, 지난달엔 폐 절단 수술을 받았다. A 씨는 폐암이 자신의 일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내 자식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것처럼 학교 아이들에게도 음식을 만들어주는 게 좋아서 일을 시작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몇 년 전부터 급식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폐암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다른 사람 일로 지나쳐왔다”면서 “작년 교육청 안내에 따라 받은 급식 종사자 폐 CT 검사에서 말로만 듣던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폐암 진단’이란 말을 입 밖에 낼 때, 그는 당시의 충격이 되살아난듯 수 초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를 본 집회에 참석한 400여 명의 동료들은 박수로 격려의 마음을 전했다.
A 씨는 폐암을 초기에 발견했다는 안도감과 함께, 진단을 받고 다행이라 느껴야 하는 현실에 비참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는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검사를 받게 됐는데, 만약 지금 발견되지 않고 한참 지난 후 치료가 어려운 말기에 발견됐을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폐암이 1기에 발견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라며 “지난달 21일, 폐 일부 절단 수술 후에는 숨이 차 계단을 오르기도 쉽지 않고 잔기침이 나와 말하기도 아직 좀 힘들다”고 했다.
학교 급식실 일은 중노동이다. A 씨는 매일 700여 명분의 음식을 튀기고, 굽고, 끓였다. 그래도 아이들 식사를 책임진다는 생각에 동료들과 즐겁게 일했다. 그런데 그저 몸이 고된 것 뿐이 아니었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이라는 발암물질이 그의 폐를 병들게 하고 있었다.
A 씨는 “환풍기가 돌아가서 환기가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급식실에) 뿌연 수증기와 연기가 가득찰 때가 많았다. 답답했지만, 배식 시간을 맞출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이날 급식 노동자들 손에는 ‘조리흄 OUT’이라고 적힌 풍선이 들려있었다.
1년간 휴직하고 치료에 집중하기로 한 A 씨는 벌써 일터가 무섭다. 같은 급식실에서 일하는 동료 2명도 폐 결절 진단을 받았다. 그는 “다시 현장에 가야 하는데, 겁이 난다”며 “언제 재발할 지 모르고,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통스러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교육 당국과 정부를 향해 “노동자에게 죽음의 일터가 아닌, 아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주는 건강한 급식실이 되게 해달라”며 “용기를 내서 다시 일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촉구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교비정규직) 조합원들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역 근처에서 열린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급식 폐암 이상소견 당사자 결의대회에서 폐암 판정을 받은 동료의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03.25 ⓒ민중의소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교비정규직) 조합원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역 근처에서 열린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급식 폐암 이상소견 당사자 결의대회에서 폐암 대책 마련 촉구 대자보를 만들고 있다. 2023.03.25 ⓒ민중의소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교비정규직) 조합원들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역 근처에서 열린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급식 폐암 이상소견 당사자 결의대회에서 폐암 조리흄 OUT 풍선을 불고 있다. 2023.03.25 ⓒ민중의소리
학비 노조 “정부, 경고 무시하더니 이젠 심각성 축소” 위험 임계치 넘은 학교 급식실, 재발 방지 대책 시행 서둘러야
학교 급식실은 이미 위험 임계치를 넘었다. 실태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건 최근이다. 지난 2021년 2월 학교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이 산업재해로 처음 인정됐다. 이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일부 학교 급식노동자를 대상으로 폐 CT 검진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수검자 4만 2,077명 중 1만 3,653명이 이상소견을 보였다. 비율이 32.4%에 달한다. 폐암 확진자를 포함한 폐암 의심자도 341명이나 됐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급식 노동자 상당수가 이상소견자였다.
박미향 학비노조 위원장은 “학교 급식 노동자들은 수년 간 폐암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투쟁했다”며 “대책 마련을 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검진자 30% 이상이 이상소견을 받고 폐암 진단이 속출할 거라고 교육 당국과 정부에 끊임없이 경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검진 결과가 나오기 전 교육 당국과 정부는 노조 목소리를 무시하더니, 결과가 나오자 이상소견자와 폐암자 비율을 축소했다”며 “얼마나 분노스럽고 추악한 행태인가”라고 비판했다.
교육부는 지난 15일, 급식 노동자 건강검진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 내용엔 급식 노동자 수가 많고 이상소견자 비율이 높은 서울과 경기 지역 결과는 빠졌다. 충북 지역도 취합되지 않았다.
학비노조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자료에는 17개 시도 모든 지역 결과가 포함돼 있었다. 박정호 학비노조 정책실장은 “의원실에서도 취합한 자료라면 교육부 최종 발표에도 당연히 반영돼야 했다”며 “의도가 있지 않았나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되돌릴 수 없는 희생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18일, 고 김정순 조합원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인 23년간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6월 경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했다. 박 위원장은 “노조가 확인한 사망자만 6명”이라며 “총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상황에 교육부는 문제 심각성을 감추기에 급급하다”며 분노했다.
환기 시설 개선이 급선무다. 그러나 환기 시설 개선 주체인 시도교육청 태도는 하세월이라고 학비노조는 지적한다. 사업은 예산 책정 못지않게 집행이 중요하다. 학교 운영 특성상 환기 시설 개선 작업은 통상 방학 중에 진행된다. 시공 업체 선정 등 관련 절차를 서둘러야 방학 중 작업이 가능한데, 교육청들이 소극적이라는 게 학비노조 측 설명이다. 박 정책실장은 “교육청이 의지를 가지고 속도를 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적극적인 집행을 촉구했다.
인력도 늘려야 한다. 이날 대회에서 노동자들이 입은 몸자보엔 ‘배치기준 하향하라’고 적혀 있었다. 조리흄에 노출되는 물리적인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인력 부족은 폐 질환 위험을 포함한 작업장의 전반적인 안전을 위협한다. 정해진 시간에 대량의 음식을 준비하려면 서두르게 된다. 학교 급식실의 노동 강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배치기준’이다. 급식 노동자 1명당 만들어야 배식 수를 나타내는 수치로, 학교 급식실은 150명에 달한다. 병원이나 사기업 급식실은 해당 수치가 100명 미만이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발걸음이 빨라져 넘어지게 되고, 튀김을 서두르면 기름도 더 많이 튀기 마련이다.
같은 산재 피해자들이 학교 급식 노동자들의 호소에 힘을 실었다. 삼성 반도체 직업암 재해자 한혜경 씨의 어머니 김시녀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 씨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납땜 작업을 하다가 뇌종양에 걸렸다. 지난한 투쟁으로 딸의 발병에 대해 삼성의 사과를 받아낸 김 씨는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과 정부는 먼저 책임지지 않고,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다는 걸 싸움을 통해 알게 됐다”며 “교육 당국과 정부도 급식 노동자가 폐암 위험에 노출된 환경을 당장 바꿔야 하지만, 안 바꾸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뭉치면 바꿀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동료 여성들도 응원의 목소리를 냈다. 한미경 여성연대 상임대표는 “현재 친환경 무상급식이 전국 학교에서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안의 상황을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자성했다. 한 대표는 “친환경 무상급식 성과가 질 낮은 노동의 대가였다는 것에 죄송하고 부끄럽다”며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 성과가 좋은 일자리, 안전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연대는 학교 급식 노동 실태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 지역에서 학부모와 급식 노동자가 함께하는 ‘급식 반상회’를 열었다. 한 상임대표는 “학부모 사이에서 ‘더 이상 안전 문제로 급식 노동자가 죽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대회를 마친 후, 학교 급식 노동자들과 집회 참석자들은 “건강한 무상급식 지속하자! 급식실 적정인원 충원하라!”, “급식노동자 죽어간다! 교육부는 환기시설 개선! 배치기준 하향하라”, “정부는 폐암 대책 마련하라! 학교급식실 환기시설 개선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용산 대통령실로 행진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교비정규직) 조합원들이 25일 서울 중구 서울역 근처에서 열린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학교급식 폐암 이상소견 당사자 결의대회에서 급식실 환경 개선과 폐암 산재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03.25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