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관계자들이 지난달 22일 오후 경기 수원 경기도청 기획조정실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 쌍방울 그룹의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경기도청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압수수색 대상은 경기도지사실 및 도지사 비서실, 경제부지사실(구 평화부지사), 기획조정실, 평화협력국, 친환경농업과, 도의회 기획재정·농정해양위원회 등 10여 곳으로 알려졌다. 2023.02.22. ⓒ뉴시스
검폭시대
윤석열 정부의 통치 행위 중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검찰 정치다.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 요직 곳곳에 검찰 출신이 포진했다. 국회 입법을 통해 검찰에 편중됐던 수사기관의 권한을 분산해놓았더니, 정부는 시행령으로 입법을 무력화시켰다. 공수처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힘 빠진 경찰은 검찰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견제로부터 자유로워진 검찰은 검사 출신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의 호위를 받으면서 지배계급의 권력 유지에 복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법치'는 곧 '검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사기관에 불과한 검찰의 판단이 모든 상위 사법기관의 판단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이 헌법재판소 결정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데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각종 사례와 흐름을 토대로 검폭(검찰폭력)에 위협받는 대한민국의 위기를 조명해본다.
① 경기도청 압수수색만 수십번 ‘업무마비’...죄없는 도지사 PC까지 열어본 검찰
“(경기)도청 공무원이 봉인가?...업무 담당부서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도청 전 직원 이메일 등 압수수색은 과하다”, “도대체 일을 하라는 건지”
3월에 경기도청 내부 게시판과 노조 운영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검찰은 지난 2월 22일부터 3월 15일까지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취임한 이래 13번째 경기도청 압수수색을 벌였다. 하루 동안 진행한 것도 아니고, 아예 도청 4층 공용회의실을 검사 사무실 삼아 상주하며 무려 22일 동안 압수수색했다. 그러는 동안 도청 공무원들은 일상적인 압수수색에 시달렸다. 6시간 동안 압수수색을 당하며 하루 업무를 공친 공무원도 있었다. 도청 직원들 사이에서는 “쟤네 또 왔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압수수색이 끝난 뒤에도 10여명의 공무원이 검찰로 불려갔다. 3개 경기도청 공무원노동조합은 모두 “도정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과도하고 빈번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비판하는 성명 등을 발표했다.
4년 전 ‘쌍방울 그룹의 대북 송금 의혹’에 대한 수사인데, 검찰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업무용 컴퓨터도 압수수색했다. 해당 컴퓨터는 지난해 7월 김 지사가 취임하면서 바뀐 ‘새 컴퓨터’다. 김 지사 측은 “지난해 취임하면서 교체한 컴퓨터”라고 설명했지만,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김 지사의 컴퓨터도 열어봤다. 4년 전 사건을 수사하면서 김 지사 컴퓨터가 왜 필요한지 납득할만한 설명은 없었다. 김 지사가 지난 2월 22일 “민(民)주국가가 아니라 검(檢)주국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이유다.
도청 게시판과 노조 게피판에 올라온 도청 직원들의 글 ⓒ민중의소리
동원된 검사·수사관 수십 명 도청에 사무실 차려놓고 22일간 압색 상관없는 도지사 컴퓨터도 압색 6만여 개 자료 갖고 가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 “민(民)주국 아닌 검(檢)주국”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된 피의자는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였다. 이 전 평화부지사가 경기도청에 재직한 기간은 2018년 7월 10일부터 2020년 1월 14일이다.
앞서 지난 2018년 경기도는 스마트팜 대북 지원 사업을 계획했다가 대북 제재가 풀리지 않아 추진하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에 800만 달러를 보낸 혐의를 받고 있는 김성태 쌍방울 전 회장 측이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지원 사업비와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방북비용을 대납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당시 경기도청에 있었던 이 전 평화부지사도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 전 평화부지사 측은 “쌍방울이 독자적으로 진행한 대북사업”이라며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이 전 평화부지사 측 변호인은 “500만 달러는 쌍방울의 대북사업 합의 대가로 1억 달러에 대한 계약금이며, 300만 달러도 쌍방울 대북사업을 위한 ‘거마비’이거나 김 전 회장의 방북 비용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며 김성태 전 회장 측 주장에 반박했다. 지자체가 북 측에 현금지원을 약속한다는 것 자체도 말이 안 되고, 이를 대신해서 민간 기업이 돈을 냈다는 주장 자체도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양측 주장이 부딪히자, 검찰은 김성태 측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해 경기도청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2월 22일부터 22일간 압수수색에 동원된 수원지검 검사만 5~6명. 도청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검사 1명당 10명가량의 수사관을 대동하여 압수수색을 벌였다. 수원지검은 경기도청을 압수수색하는 동안 도청 4층 회의실을 검사·수사관 사무실처럼 차려놓고 사용했다. 해당 공간은 신청사 회의공간이 협소해 따로 공용으로 마련한 회의실이었다. 같은 층 노조 사무실을 사용하는 도청 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 A 씨는 “항상 5~10명의 검사·수사관이 회의실을 사무실처럼 사용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회의실을 사용하는 검사·수사관도 매일 바뀌었다. 수십 명의 검사·수사관들이 22일 동안 도청을 들락날락하며 수시로 압수수색하고 도청 공무원들을 4층 회의실로 불러 조사한 셈이다.
경기도청 압수수색 중인 검찰 ⓒ김동연 지사 페이스북
압수수색 대상 범위도 광범위했다. 대북 송금 의혹과 연관을 찾아볼 수 없는 김동연 도지사와 비서실의 ‘새 컴퓨터’뿐만 아니라, 도의회도 압수수색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김 지사는 “수사 중인 사건은 수년 전 일이고, 저는 이화영 전 부지사와 일면식도 없다. 지금 청사로 도청을 이전한 것은 2022년 5월이고, 제 컴퓨터는 취임한 7월부터 사용한 ‘새 컴퓨터’”라며 “아무것도 없을 것을 알면서 압수수색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 실제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라고 반발했다.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도의원들도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과 관련해 상관관계를 찾기 어려운 경기도의회까지 굳이 압수수색한 것은 명백하게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이라며 검찰의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비판했다.
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 지난해 5월 구청사에서 신청사로 이전하고 같은 해 7월에 민선8기가 들어서면서 도지사·비서실장 업무 컴퓨터는 새것으로 교체됐다. 대북 송금 의혹 관련 문건이 해당 컴퓨터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현 경기도정과 관련 없다는 것은 검찰에서도 밝힌 내용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는 이달 17일 경기도청 압수수색이 논란이 되자 “현 경기도정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검찰은 도지사·비서실장의 컴퓨터를 압수수색한 뒤 일부 문건을 갖고 갔다고 한다.
22일 동안 검찰이 열어본 컴퓨터만 92개, 캐비넷은 11개다. 이를 통해 6만3824개의 문서를 갖고 갔다. ‘대북’, ‘평화’ 등의 단어를 검색한 뒤 뜨는 문서를 압수 대상으로 삼는 식이었다. 해당 문서가 어떤 문서인지 설명도 필요했기에, 도청 공무원들은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동안 꼼짝없이 검사·수사관의 수발을 들어야만 했다.
노조 운영 게시판과 도청 직원들이 사용하는 게시판에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과도하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노조는 “경기도청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전방위적인 압수수색을 중단하라”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과도한 검찰 압수수색 비판하는 성명 발표한 경기도청 공무원 노동조합 ⓒ왼쪽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경기도청 공무원노동조합, 중앙과 오른쪽 민주노총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 경기도청지부
경기도청에서 일하는 공무원 B 씨는 “(압수수색 당하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라며 “압수수색 대상이 되고 거기에 동의하라고 하여 동의서를 쓰면 잘못한 일이 없더라도 잔상이 남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또 민주노총 공무원노조 경기도청지부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수사와 압수수색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언젠가 내가 압수수색 대상이 될 것”이라는 우려로 도정 업무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청지부는 지난 2월 성명에서 “올해 사업계획을 세우고 집행하기 위해 도민과 만나고 전년도 사업을 정산하느라 바쁜 시기”라며 “이런 때 예고 없는 검찰의 압수수색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감사원 감사는 정말 직원들에게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검찰의 무차별적인 광범위한 압수수색은 민선8기 도정에 막대한 차질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업을 집행해야 할 도청 직원들을 머뭇거리게 한다”고 짚었다.
이번 압수수색 이전에도 검찰은 백현동 개발비리 의혹, 성남FC 후원 관련 의혹, 쌍방울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을 수사한다면서 경기도청을 수시로 압수수색했다. 대부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였다. 검찰 등 수사기관이 이 대표 주변을 압수수색한 횟수가 330여회에 이른다는데, 도청 압수수색을 통해 혐의를 입증할만한 뚜렷한 증거를 찾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광범위한 압수수색과 수사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도청 직원 C 씨는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 그물망”이라며 검찰의 압수수색이 과도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22일 동안 압수수색을 한 뒤로도 10여명의 직원을 소환조사하는 등 수사는 계속되고 있다. 도청의 직원들은 앞으로도 기한 없는 검찰수사로 계속해서 불려나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