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지난 22일 시민사회의 쏟아지는 비판에도 국민의힘 의원들과 손잡고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 월급 100만 원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만드는 것'이다.
조 의원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해당 법안을 공동 발의한 의원들이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고 법안 철회 의사를 밝혔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철회 다음날 권성동 의원을 포함한 국민의힘 의원 10명의 서명을 받아 다시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2023.02.15 ⓒ뉴시스
심지어 그가 처음 개정안을 제출한 날은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매년 3월 21일)'이었다. 이런 날 이주노동자 차별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내고, 그에 대한 시민사회 비판을 전면 무시했다. 이 같은 당당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런 태도는 그에게 최소한의 젠더 감수성과 인권 의식도 없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공개돼 있는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에서는 법안 발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 저출산 문제 해결과 여성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실질적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있는 가운데,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통해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음
- 한국도 저임금의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통해 맞벌이 가정의 가사부담을 덜고 특히 여성의 경력단절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음
이를 분석해 보면 조 의원이 한국의 저출생 문제 원인을 한국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에서 찾고, 그 부담을 아주 저렴하게 이주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분히 인종차별적, 성차별적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도 지급하지 않겠다는 건 반인권적인 발상이다. 가사노동자가 대부분 여성임을 감안할 때, 이주 여성은 가사노동 기계로, 국내 여성은 출산의 도구로 바라보는 성차별적 발상이다. 여성에게 가사 노동, 돌봄 노동이 전가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적 현실은 그대로 둔 채, 여성 내부를 갈라치기 한 후 정주여성과 이주여성에게 각각 부담을 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이러한 안이 머리에서 나올 수 없다.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소속 참석자들이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사노동자법 안착과 활성화를 촉구하고 있다. 2022.06.15 ⓒ민중의소리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가사·돌봄 노동 폄하
또 이 법안은 가사·돌봄노동에 대한 폄하를 깔고 있다. 이 분야의 노동자들은 고강도의 업무를 함에도, 사회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한국 사회는 쭉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권 문제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동안 가사노동자들은 호출 노동, 1인 노동, 가정 내 노동이라는 특성으로 인한 저임금과 모욕적 대우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이 분야에서 많이 일한다. 또 저임금을 감수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진입하고 있다. 그러니 가사노동자의 노동권 보호에 힘쓰지 않으면, 고령 여성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이 나락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이 아니다. 지금도 근로기준법 11조에는 "가사(家事)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그래서 가사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고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근거법이 필요했다. 이 때문에 지난 2021년 6월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국제노동기구(ILO)가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한 뒤, 10년이나 흘러서야 한국에서 만들어지게 됐다.
2022년 6월부터 시행된 가사노동자법엔 가사노동의 내용과 해당 노동자의 법적 권리가 최소한 담겨 있다. 그렇지만 근로기준법의 적용 제외 조항은 그대로 있으며, 돌봄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제도는 아직도 미비하다. 이런 제도적 공백을 지적하며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오히려 개악안을 내놓는 의원이 있다니 어찌된 일인가.
조정훈 의원의 가사노동자법 개정안에 담긴 노골적 가사노동 폄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과정에서 형성된 사회적 공감대에도 반하는 것이다. 해당 기간 동안 가사·돌봄 노동의 보편성과 필수성이 분명히 확인됐다. 가사 노동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특정 성별이나 경제력이 낮은 국가에서 온 이주노동자에게 떠넘길 문제가 아니다. 또 필수적인 만큼 공공성이 확보돼야 한다. 그런데 이 개악안은 가사노동을 값싼 노동, 필수적이지 않은 노동으로 치부해 온 그간의 흐름을 강화시키는 내용이다. 앞으로는 국적에 관계 없이 가사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마땅하다.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2023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기념대회에서 한 이주 노동자가 국내 인종차별 근절을 촉구하는 문구를 적고 있다. 2023.03.19. ⓒ뉴스1
이주노동자는 쓰다 버리는 값싼 노동력?
이주노동자들을 가사노동에 투입할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이 법안은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명백히 부인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겐 2023년 최저시급(9,620원)이 너무 높다는 주장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도 어긋나는 차별이다. 필수적인 노동을 하는데 한국인과 인종과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도 주지 않겠다는 게 말이 되나.
또 '저임금 노동력 활용'에 방점이 찍힌 이 개정안은 이주노동자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보통 한 번 예외가 생긴 법률엔 수많은 예외가 생긴다. 다른 분야 노동자들에게 마수가 뻗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더불어 가사노동에 대한 폄하를 공식화하는 셈이니, 노동의 위계화와 성별 분업 체계 심화를 불러올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한국 여성의 고용단절이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책을 내려면 기본적으로 여성 인권을 진전시키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왜 여성이 살기 힘든지 근본적 이유를 찾고, 구조적 성차별을 해결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옳다. 더불어 양질의 여성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가사근로자법 개악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인종차별적인 여성노동 착취가 아니다.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가사노동의 공적 제공을 위한 제도 마련과 예산 배정이 이뤄지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