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람들과 만나면 자주 논의하는 주제 중의 하나가 ‘챗지피티(ChatGPT)’이다. 말과 글을 통해 먹고사는 사람들 입장에선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다. 주제어 몇 개만 제시하면 몇 십초 만에 내가 원하는 글들을 만들어내고 과제나 논문까지 완성된다고 하니 앞으로 올 변화가 얼마나 클지 놀라우면서도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적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며칠 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었다. 검사의 수사권 축소에 대한 법률이 합헌이라는 취지를 밝힘과 동시에 검사는 헌법적 기관이 아니므로 검사에게만 기소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를 국회 법률을 통해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위시한 여당과 보수언론은 헌법결정문조차 정쟁화 하면서 자기들에게 유리한 부분만 발췌하여 해석하며 이 결정이 검찰과 국민의 인권보호와 정의수호에 역행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과연 국민의 인권보호와 정의수호 앞장 선 검사가 누구였는가? 생각하려고 애를 써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통계청 자료(2022 한국의 사회지표)에 의하면 정부의 신뢰도는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고, 형사사법기관 중 검찰의 신뢰도는 법원이나 경찰보다 낮은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떤 근거로 검사들이 국민의 인권보호를 앞장서고 있다는 주장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헌법조차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생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근대 시민 혁명기에는 봉건지주제라는 신분제의 억압과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미에서 ‘자유’라는 가치가 중심이 되었고,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극심한 빈부격차가 사회문제가 되면서 ‘평등’의 가치가 중심이 되었다. 또한 제1차 2차 세계대전 동안 민간인 대량학살이 발생하면서 인간의 진정한 깨달음으로 인해 ‘존엄성’의 가치가 부각되었고 이를 헌법에 담아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우리가 유념해야 할 주요 가치는 무엇일까?
2023년 1월 31일 뉴욕의 한 휴대전화에 ChatGPT 제조업체인 OpenAI의 로고가 보이고 있다. ⓒ뉴시스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노동의 종말이 운위되는 시대 혼란과 불안이 커지는 지금 인간의 자율성은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
이미 우리는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한 사회, 개인의 자율성이 최대의 화두가 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1인 가족이 전체 가족의 33퍼센트를 뛰어넘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존중받는 사회로의 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서 자율성에 대한 가치가 안고 있는 문제를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자율성은 스스로 알아서 인식하고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과연 인간은 어느 정도의 인식과 판단과 결정을 하는 데 이르기까지 자율적일 수 있을까. 인터넷 검색을 할 때 포털 사이트에 떠 있는 수많은 기사를 다 읽어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부분적인 내용으로 호도하는 기사에 낚여 그것에서 비롯된 인상과 생각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판단했던 일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던가. 가짜뉴스나 페이크 기술이 인공지능과 관련되어 산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기초적인 진실성과 신뢰마저 무너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아무리 인공지능에 의해 편리하게 지식을 제공받는다고 한들 이것이 어떤 이익이 될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둘째, 자율성의 구현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특징으로 하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많은 1인 가족이 경험하고 있는 것은 ‘우울감과 외로움의 끝없는 순환’이라고 한다.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애착에 기인하여 관계를 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개인주의는 결국 관계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이비 종교집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보통의 상식과 정보만 갖고 있어도 절대 하지 않을 행위들을 사이비 교주의 말만 듣고 맹신한다. 현세에서 행복할 수는 없으나 내세에서의 행복은 누릴 수 있다는 꾐에 빠져 돈과 시간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내어주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오래 전부터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달로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노동의 종말을 맞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사회도 이미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형태의 노동자를 의미하는 프레카트아트(불안정하다는 뜻의 ‘precario‘와 노동자라는 뜻의 ‘proletariat’가 합쳐진 합성어)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혼란과 불안이 커지는 이때, 대안으로 삼아야 할 것은 ‘적절성의 법칙’일 것이다. 무엇이든 극에 도달하면 변하는 법이다. 원칙-실용, 개인-집단, 물질-정신은 대립되는 개념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이 어떤 변증법적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지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