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 교수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TF, 정의당, 기본소득당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과 노동자 건강권’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민주노총 유튜브 캡쳐
‘주 최대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의 뼈대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보건 전문가였던 김인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교실 교수가 중도 사퇴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악화하는 방향으로 노동시간 개편 논의가 이뤄지자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사의를 표명하고 논의에서 아예 빠진 것이었다. 김 교수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을 두고 “개악”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김 교수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TF, 정의당, 기본소득당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과 노동자 건강권’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이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짚었다.
앞서 김 교수는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 초안을 수립한 자문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11월 내부 논의 과정에서 의견 충돌로 사임했다. 주로 경제·경영·법학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된 연구회에서 김 교수는 유일한 보건 전문가였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구회가 만든 권고안을 바탕으로 정부가 노동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후 과로를 조장하는 개편안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는데, 알고보니 보건 전문가가 논의 과정에서 빠진 게 뒤늦게 드러난 셈이다. 이전에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주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보호 차원에서 무리”라며 재검토를 지시한 바 있다.
김 교수는 “WHO와 ILO는 최근 장시간 근로에 의한 건강영향에 대해 국제공동연구를 수행했으며, 1주 근로시간이 55시간이 넘는 경우 뇌졸중, 심혈관질환의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며 “여기에 저희가 무언가를 더 보태고 말고 할 게 없다. 사실 이 분야 전문가들에게는 일종의 ‘사회적인 스탠다드’인 것 같다”고 밝혔다. 즉, 1주 근로시간이 최대 55시간이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은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상식”인데, 정부는 이를 훨씬 넘어서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노동시간의 길이와 관련해 노동자 건강의 측면에서는 1주 최대 48시간의 제한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상의 연장근로 포함 주 최대 근로시간이 52시간이 실질적 최대 1주 노동시간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는 경우를 양산할 수 있는 현재의 제도 개편안은 노동자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김 교수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며 노동시간을 평균화하는 제도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하게 도입해야 하는데, 현재 정부는 무분별하게 도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ILO에서는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간의 평균화 제도와 관련한 다양한 회의를 하고 보고서를 발간했다”며 “기본적으로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간의 평균화 제도는 노동시간 배치에 있어서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계절적 특성이 명확한 경우에 적당한 제도로 보고 있으며, 가장 복잡한 노도시간 배치 정책이기 때문에 도입에 신중해야 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김 교수는 “노동시간의 평균화 방식을 도입하는 경우에는 정산기간을 최대한 짧게 하고, 정산기간의 1주 평균 노동시간은 48시간을 넘지 않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 현재 정부안은 이러한 제도를 5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며 “국제적인 장시간 노동의 기준인 48시간을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이러한 제도 변경으로 인한 건강 영향이 고령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급격한 노동시간의 변화가 뇌심혈관계 질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교수는 “현재 개편안에 따르면 1년간 특정 기간은 주 40시간 노동을 하고 특정 기간은 몰아서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다”며 “이러한 노동시간의 변화 역시 뇌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요인”이라고 짚었다.
그는 “실제로 한국의 산재승인자들을 대상으로 한 환자-교차 연구에서는 노동시간이 10시간 늘어날 경우 뇌심혈관계 질환의 발생 위험이 45% 증가했다”며 “즉, 40시간을 일하다가 50시간을 일하게 되면 그 인구집단에서의 뇌혈관 질환 발생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결론적으로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예외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업장의 특성을 확인해 일분에 대해 제한적 적용을 검토해볼 수 있는 제도를 보편화해 모든 사업장과 노동자에 적용하도록 하며 장시간 노동시간을 유발할 수 있는 제도의 변화는 보건학적 측면에서 개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에 반대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은 극단적인 가정’이라며 논란을 수습하려고 하는 데 대해서도 반박이 잇따랐다.
박성우 노무사(노동법률단체 직장갑질119 야근갑질특별위원장)의 분석에 따르면,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대로 연장노동 관리단위가 ‘분기 단위’면 5주 연속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해지고, ‘반기 단위’면 10주, ‘연 단위’면 18주까지 연속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박 노무사는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새벽 4시에 퇴근하는 게 합법적으로 가능해진다”며 “정부는 이런 주장이 극단적인 가정을 통한 흠집내기라고 하지만, 정부는 위법천지 노동현장의 실태를 모르거나 고의로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다소 극단적인 걸 인정하더라도, 이런 극단적인 상황이 합법화된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