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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외교’가 증폭시킨 윤 대통령 “일본 소부장 유치” 문제점

‘공급망 강화’는 단기 효과, 중장기적으로 위험 요인…산업계, 자립화 퇴보 우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3.03.16. ⓒ뉴시스

“일본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를 유치하겠다”는 윤 대통령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대일 굴욕외교’로 치닫고 있던 터라 국민감정이 용납을 못 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비단 감정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반도체 생태계 강화 목적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자립화를 저해해 중장기적으로는 공급망에 부정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쉬운 길이지만, 바람직한 길은 아니다’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6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일본의 기술력 있는 반도체 소부장 업체를 대거 유치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반도체 첨단 혁신기지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뒤따랐다. 그는 윤 대통령 발언 사흘 뒤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을 구체화하기 위한 관계부처 협의체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한마디로 시작해, 충분한 논의도 없이 추진되는 모양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정부 산업 정책의 핵심이다. 정부는 지난달 ‘국가 첨단산업 육성전략’으로 반도체 등 6대 핵심 산업에 2026년까지 550조원을 투자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첨단산업을 국가 안보 자산으로서 육성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지시에 따른 후속 조치였다. 정부가 보도자료에서 별도 항목으로 구성해 강조하고 언론 관심이 가장 집중된 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2042년까지 300조원의 민간 투자를 바탕으로 용인에 710만㎡ 규모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국내외 소부장과 팹리스(칩 설계) 등 분야 업체를 최대 150개 유치한다.

일본 업체 유치는 산업 정책이지만, 외교적인 측면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한국이 미일 동맹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한미일 협력에 골몰하는 정부 외교 기조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진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준비 못 해 국권을 상실했다”라거나 “일본은 협력 파트너”라는 둥 발언으로 식민사관을 연상케 한 3.1절 기념사에 이어,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제삼자 변제 방식 강제동원 해법안을 발표해 공분을 샀다.

정부의 저자세 외교로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윤 대통령 방일 기간에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일부를 해제했고, 정부는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했다.

앞서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2019년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불화수소·불화 폴리이미드 3개 품목 수출을 통제했다. 한 달 뒤에는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한국은 같은 해 9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WTO에 제소했다.

한국의 승소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었을 뿐 아니라 일본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즉시 원상회복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정부가 WTO 제소를 취하하자 비판이 일었다.

민관 협력으로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해, 소부장 자립화 성과를 냈다는 점도 일본 업체 유치에 대한 반감을 더한다. 소부장넷에 따르면, 한국의 대일 소부장 의존도는 2018년 18.3%에서 2022년 15.0%로 3.7%P 감소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데, 왜 일본에 기대냐’는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일본 업체 유치에 대해 “어느 나라 정책인지 묻고 싶다”고 직격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일본 수출 규제 행보에 맞선 기술 독립과 소부장 자립은 위기를 기회로 만든 대표적 사례”라면서, 100대 소부장 기술의 대일 의존도가 33% 감소한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3.1절 기념사, 강제동원 해법안, WTO 제소 취하 등 정부가 취한 일련의 대일 외교 행보와 이번 일본 업체 유치를 별개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권칠승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산업적인 차원에서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거니와, 굴욕외교라는 감정적인 차원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경만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도 “굴욕외교 연장선에서 ‘퍼주기’, ‘서비스’ 개념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상조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지난 2019년 7월 31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제1차 일본수출규제대책 민·관·정 협의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2019.07.31 ⓒ정의철 기자

반도체 무기화 시대에 걸맞지 않은 방향

정부는 일본 업체 유치에 따른 반도체 공급망 강화 효과를 강조한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클러스터 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소부장을 납품하는 일본 업체 경우 기술 향상과 생산 공정 개선 측면에서 지리적 근접성이 주는 이점이 클 것이고 우리 반도체 생태계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본이 필요하다는 정부 설명이 틀린 건 아니다. 한국은 여전히 반도체 소부장 분야에서 일본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반도체 산업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적 변화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웨이퍼제조공정, 전공정, 후공정(측정·검사), 진공펌프 등 장비 분야에서 한국의 최대수입국이 일본이다. 웨이퍼제조공정 장비에서 한국의 일본 의존도는 86%에 달했다.

소재 분야에서도 일본은 최대수입국이다. 반도체 소재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브로큰웨이퍼·실리콘웨이퍼의 일본 의존도는 41%다. 감광액, 글라스웨이퍼, 웨이퍼코팅제, 연마제, 구리타겟은 39~89% 수준이다. 포토레지스트가 포함된 감광액(79%)은 일본 수출 규제 이전보다 의존도가 낮아지기는 했으나, 절대적인 수치는 높게 유지되고 있다.

일본 업체가 한국에 들어오면, 각국 정부의 수출 규제 등 대외적인 공급망 리스크에서 비교적 자유로워진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일본 소부장 업체를 유치하면 한국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며 “일본이든 미국이든 국적 불문하고 외국 업체가 많이 들어오면 산업 생태계가 강화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 수출 규제 당시에도 한국에 진출한 일본 업체의 거래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어찌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본에 의존하는 소부장 분야에서 한국이 자립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현실적인 상황도 있다. 일본 기술력을 잘 활용하자는 의미의 ‘용일(用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남건욱 반도체산업구조선진화연구회 조직부회장은 “현실적으로 한국은 일본보다 소부장 기술력이 떨어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검증된 업체 제품을 쓰려고 한다”며 “소부장 자립화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업체를 유치할 때 한국 업체와 합자 투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거나 기술 협력을 하게끔 하면, 한국 업체가 일본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일본 업체 유치가 중장기적으로는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소부장 자립화가 지연될 우려가 있다. 언제까지 일본에 의존한 채 자립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세계 기술 패권 경쟁과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자립화는 공급망 강화의 근본 대책이다. 반도체 소부장을 무기화한 일본 수출 규제 사례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향후 한국에 진출한 일본 업체가 철수하고 거래를 끊으면, 한국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와 미국의 헤게모니 하에서 자유롭게 무역하는 게 하나의 규범이던 시대에는 무역이 안보 문제가 아니었다”면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조치는 한국에 ‘무역이 우리 발목을 잡을 수 있다’라는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 일본 업체를 들여오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기술을 습득해 자립화한다고 하면 이해는 할 수 있겠으나, 그런 전략은 없고 일단 유입시킨다고만 하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소부장 자립화는 특정 산업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하다. 소부장 분야를 일본에 의존하는 한국이 수출을 아무리 많이 해도 결국 일본이 이득을 보는 ‘가마우지 경제’ 구조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2022년 대일 무역 적자는 241억 달러(약 31조원)였다. 소부장넷을 보면, 같은 기간 소부장 대일 무역 적자만 249억 달러다. 소부장은 가마우지 경제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이고, 소부장 거래 상당 부분은 반도체 분야에서 발생한다.

정 교수는 “일본 업체를 유치해 의존도를 유지하거나 높이는 건 일본으로선 한국 수출이 많을수록 중간재를 납품하면서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어서 좋겠지만, 한국엔 좋은 전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모든 걸 다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한 자립화해야 한다”며 “일본 업체 유치는 손쉽게 일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장기적으로는 계속해서 일본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가져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짚었다.

일본 업체 유치가 한국 공급망을 강화한다는 근거가 부실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정부가 객관적인 근거 없이 정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김경만 의원실 관계자는 “일본 소부장 업체가 들어오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산업부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아직 못 받았다”며 “공급망 강화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수용할 수 있는데, 어떤 근거로 일본 업체를 대거 유치하면 한국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지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10년대 초반부터 주요 설비, 부품 협력사와 자체 기술개발을 추진해왔다. 이오테크닉스는 그간 수입에 의존하던 고성능 레이저 설비를 삼성전자와 공동 개발에 성공해 D램 미세화 과정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불량 문제를 해결했다. 사진은 삼성전자 직원(좌)과 이오테크닉스 직원이 양사가 공동 개발한 반도체 레이저 설비를 함께 살펴보는 모습. ⓒ삼성전자


유불리 따져 치밀하게 추진해야…산업계 불안 고조

윤 대통령 발언은 소부장 자립화에서 일본 의존으로의 기조 전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간 정부는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해 소부장 특례보증을 신설하는 등 관련 예산을 늘리고 민관 협력을 강화하는 등 소부장 자립화를 추진해왔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다고 발표한 직후 김현종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은 “가마우지 경제 체제로부터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며 “만약 20년 전 일본이 오늘의 조치를 취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했을 것이지만, 이제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전한 바 있다.

권칠승 의원실 관계자는 “마치 한국 업체와 일본 업체 간 차별을 완전히 없애고 일본 업체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즉 기조 전환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섣부른 발언으로 국민적인 반발과 산업계 혼란을 야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지금까지 한국 반도체 산업 밸류체인(공급망)을 놓고 보면, 일본 업체와 많이 협력하고 있었다”며 “일본 반도체 수출 규제 이후 일본 업체 한국에 많이 진출했다”고 전했다. 이어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이번 발언으로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다”며 “몰랐던 사람도 알게 되면서 왜 일본 업체를 끌어들이냐고 비판하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VIP(대통령)는 자기가 저지른 게 있으니까 그렇게 말을 한 건데, 경기도지사도 일본 업체보다 한국 업체를 먼저 넣겠다고 했다”며 “주변 사람들도 수습한다고 고생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일본 소부장 업체 유치에 대해 대통령 발표와 결을 달리한다”며 “필요하다면 외국 소부장이나 협력 업체가 들어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지만 국내 업체를 우선해 집적체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과 협력할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일본 업체 유치를 대통령이 선언적·추상적으로 언급한 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 반도체 공급망에서 일본 업체가 필수불가결한 품목을 추려,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처럼 포괄적으로 할 게 아니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요구에 따라 선별적으로, 치밀하게, 조용하게 진행해야 한다”며 “친일, 반일 문제를 떠나서 실리를 챙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업체 육성을 뒤로 미루는 듯한 윤 대통령 발언에 산업계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김경만 의원은 지난달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이창양 장관에 질의하면서, 한국 반도체 소부장 업계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다. A 업체 대표는 “그쪽(일본 업체)이 들어오면, 그렇지 않아도 가격 경쟁력이 정기적인 네고에 따라서 뚝뚝 떨어지는데, 더 심각해진다”며 “중소기업을 말살하겠다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일본 업체와 경쟁력 격차가 커지면서 한국 업체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이다.

한국 업체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참여할 기회가 줄어들 우려도 있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클러스터 안으로 가면 지원이 있어 국내 업체도 들어가길 원할 텐데, 일본 업체가 들어가면 한국 업체가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며 “소부장 업체와 공감대 없이 대통령이 지른 거”라고 비판했다.

정부 산업 정책 기조 변화는 예산 증감으로 나타난다. 윤 대통령 발언 이후 소부장 지원 예산 축소에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김 전문연구원은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일본을 대체하는 업체를 육성하자는 목적으로 소부장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는데, 대통령이 다시 일본 업체를 데려온다고 하면 산업계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 늘어난 지원이 쪼그라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와 함께 소부장 업체 육성의 한 축을 이루는 민간 부문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소부장 업체가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고객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협력과 지원이 필요하다. 반도체 생산 공정은 매우 정밀하게 이뤄져, 소부장의 작은 변화도 품질과 수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재가 바뀌면 장비도 다시 세팅해야 한다. 소부장 개발 과정부터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같이 진행해야 안정성을 담보하면서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다.

김 전문연구원 “지금까지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자기 돈을 들여 소부장 중소기업 제품을 테스트하고 기술을 육성해준 측면도 있다”며 “정부 기조가 바뀌면 민간에서 소부장 육성 지원이 축소될 가능성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일본 업체가 잘 만들고 있는 걸 그대로 사서 쓰면 돈이 덜 든다”며 “그래서 한국 업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역사가 있었는데,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실 관계자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소부장을 이원화할 때, 한국 업체를 육성하려는 노력이 줄어들 수 있다”며 “대기업은 정부 따라가는 거 아니겠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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