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문화예술 지원사업에 잘 뽑히고 싶다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모사업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


문화예술기관의 지원사업을 심사하러 다니곤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역문화재단, 지역 음악창작소 등에서 음악인들을 대상으로 지원프로그램을 많이 운영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축제나 방송국, 지역 음악창작소 등에서 여는 경연/공모 프로그램에 심사를 하러 가기도 한다. 컴퓨터 앞에서나 직접 대면해 이런 저런 심사를 하다보면 지원 프로그램과 운영기관에 대해 할 말이 많아진다. 그 때마다 솔직하게 의견을 전달하는 편이다.

하지만 심사에 응모한 음악인들에게 생각을 이야기할 기회는 드물다. 여러 심사위원이 모여 심사를 하다보면 대면 심사를 받으러 온 예술가에게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언하는 심사위원이 있지만, 심사장은 멘토링하는 곳이 아닐뿐더러 심사위원의 생각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꾹 참고 만다.

각종 지원 사업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음악인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다. 물론 모든 지원사업이 얼마나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이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보지는 않는다. 더 좋은 음악을 내놓는 이들에게 음반 발매와 공연의 기회를 주는 사업도 있지만, 음악을 통해 어떤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를 보는 사업도 많다. 그럼에도 공모에 참여한 음악인의 음악이 기본적인 실력과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하면 믿고 기회를 주기 어렵다. 역으로 해당 음악인의 음악이 돋보이면 지원 서류의 부족함을 채우기도 한다. 그래서 음악을 잘 만들어내야 한다. 음원이나 영상을 요청하는 경우 최대한 잘 보고 들을 수 있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사실 음악을 잘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시간과 노력과 재능이 필요하다. 그런데 세상의 음악은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으로 나뉘지 않는다. 음악은 자신의 의도대로 표현해 듣는 사람을 잘 설득하는 음악과 그러지 못한 음악으로 나뉜다. 좋은 음악을 완성하는 힘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명확함, 표현의 개성,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연주력도 중요하지만 연주의 정확성이 절대적이지 않다. 왜 음악을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연주력은 장식일 뿐이다. 갈수록 음악인의 실력이 상향평준화 하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차이와 개성이 중요하다. 심사위원은 자신을 설득하는 음악을 만나기 위해 마음을 활짝 열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음악인의 진심을 확인하려 애쓰는 사람이다. 세대와 경험, 안목이 충분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모든 심사 프로그램에는 예술가보다 많이 듣고 자주 듣는 심사위원이 있어 서로를 보완한다.

심사 프로그램에서 유념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지원 사업의 목적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여부이다. 최근에는 지원/공모 사업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추세다. 여전히 공연이나 음반 제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다른 미션을 위해 진행하는 지원 사업이 늘어간다. 그렇다면 지원 사업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맞춤형으로 지원해야 한다.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공연 등의 프로그램을 안정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기획력이 필요한 지점이다. 문화예술기관에서 지원사업을 하는 이유는 단지 음악인들의 창작과 생존을 보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예술가이기 때문에 당연히 받는 돈이 아니다. 시민의 문화향유권리와 지역문화융성 같은 이유가 있다. 피 같은 세금으로 지원 사업을 하는 이유이다.

문화포털에 있는 각종 문화 지원 사업들 ⓒ문화포털 홈페이지

이 경우 당연히 작품과 활동을 통해 어떤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어야 한다. 시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지역의 문화를 어떻게 활성화할 수 있는지, 음악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려보여야 한다. 그런 결과를 위해 어떤 방법을 활용하고 준비하는지 고민한 흔적을 보여주어야 한다. 예술가 한 사람이나 한 두 프로그램으로 거창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좋은 프로그램이 계속 쌓이면 흐름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얼마나 고민하고 준비했는지 알아보는 일이 심사의 핵심이다. 홍보 계획에 소셜미디어에 올리겠다고, 유튜브를 활용하겠다고만 쓰면 안 되는 이유다. 고민의 깊이와 차별성을 드러낼 수 없다면 안 쓰니만 못하다.

심사위원은 한정된 예산을 활용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가를 뽑으려는 지원기관의 임무를 대행한다. 이미 여러 번 심사를 다녀본 사람들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사업보다 새로운 사업, 듬성듬성한 사업보다 꼼꼼한 사업의 손을 들어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심의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심사위원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예술가/단체에서 제출할 것 같은 아이템과 방식은 과감하게 폐기하는 게 낫다.

가령 시민 대상 공연을 해야 하는 경우 클래식 연주자들이나 전통음악연주자들이 클래식과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대중음악을 편곡해서 연주하겠다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기획은 너무 흔해 차별성이 없을 뿐 아니라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클래식이나 전통음악 자체의 매력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고 차별적이다. 결국 자신들만의 컨셉트와 통일된 스토리가 중요하다. 아무리 짧은 프로그램이라도 전체적인 주제를 설정하고 이를 구현하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예술가들이 예술을 하는 이유와 직결된다.

덧붙이자면 지원 사업 프로그램을 짤 때는 주제와 이유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고민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고, 차별성이 만들어진다. 이 시점에서 해당 예술가/단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음악인이니 당연히 음악을 한다고만 이야기해서는 곤란하다.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키거나 변화시키기 위해, 음악과 활동으로 자신들과 음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 위해, 세상과 시민들에게 어떤 메시지와 울림을 전해주기 위해 이렇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 근거가 명확하고 분명하며 차별적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업계획서의 예산을 현실적이고 정확하게 기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지원사업이 단지 예술가 개인을 위한 복지사업이 아님을 인식하는 일일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공공영역에서 예술가를 지원하는 이유는 예술가의 삶과 창작을 북돋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활동을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예술가가 공공의 역할을 대행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설득력 있는 음악을 준비했는지 확인하고, 의미 있는 주제와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심사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냈는지 알아보려는 이유다. 지원/공모 사업에 잘 통과하거나 통과하지 못하는 음악인은 이 지점에서 엇갈리지 않을까. 물론 예술가들 역시 지원기관에 할 이야기가 많겠지만 이런 의견도 있다는 것을 한 번쯤 감안해주시면 좋겠다. 모두의 건투와 성공을 빈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