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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전임비 비리’ 요란하더니, 민주노총이 아니었다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⑪] “조합원 없는 현장에선 근로시간면제 적용받지 않는다”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① [인터뷰]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비정상적 건설업계 놔두고 노조만 때려잡나”
② 타워크레인 월례비, 원인은 건설사에 있는데 노조만 때리는 정부
③ 건설현장 고용문제 외면한 정부, 대신 나선 노조에 이제 와서 “조폭”
④ [인터뷰] 조선소→건설사 관리직→건설노동자, 그가 말하는 ‘건설노조’
⑤ 외국인에 밀려난 내국인 건설노동자, 이면엔 건설사 ‘이윤 욕심’
⑥ [현장] “노조에 빌미 잡히지 말자” 불법에 이중 잣대 보인 원희룡의 ‘황당 연설’
⑦ 타워크레인 노동자에 ‘위험한 작업 거부하면 면허정지 시킨다’는 국토부
⑧ ‘건폭’ 핵심 한국노총 출신 건설산업노조, 1년 전 ‘윤석열 지지’ 선언했다
⑨ 건설노조 팀장들 “우리가 가짜 근로자? 업체서 할 일까지 대신 합니다”
⑩ 아파트 공사장에서 ‘인분 주머니’ 없애는 진짜 해법


최근 정부가 경찰을 앞세워 ‘건설현장 폭력행위 특별단속’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는데, 일명 ‘노조 전임비’, ‘노조 발전기금’도 대표적인 단속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건설현장에서 노조가 건설사에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다가 안 되면 전임비·발전기금 명목으로 돈을 뜯어간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건설노조에서는 노조 전임비나 발전기금으로 구속된 사례가 현재까지 없다. 지난 12일 검찰이 공동공갈·공동강요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한 민주노총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서남지대장 출신 우모씨의 경우에도 개인 비리 문제로 지난해 민주노총 건설노조에서 제명된 인물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애초 우리는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노조 전임비·발전기금 어떻게 받길래?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13일까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에 따른 피해 사례를 조사한 결과 1천484개 현장, 2천70건의 피해 사례 중 노조 전임비 수수 건이 567건으로 전체의 27.4%에 달했다고 밝혔다.

노조 전임비는 노동조합법상 유급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근로자가 노조 소속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등 노조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시간은 근로 제공 없이도 급여를 지급받는 내용이다. 그 근로자는 노조 전임자로 불린다.

국토부 조사 결과 이들 노조 전임자의 월평균 수수액은 140만원이었으며 최대 1천700만원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한 사람이 동일 기간에 다수의 현장에서 전임비를 받기도 해 조사 대상 노조 전임자는 평균 2.5개 현장에서 전임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개의 현장으로부터 받은 전임비 총액은 월 260만원 수준이며, 월 810만원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보통 노조 전임비는 노사간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 건설현장이 개설되면 건설사와 노조가 교섭을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가 결정되는 식이다. 노조 전임자는 노조가 지정하며, 건설사는 그에게 급여를 준다.

이러한 노조 전임비 외에 소위 ‘발전기금’ 또는 ‘복지기금’이라는 명목으로 노조가 일정비용을 요구해 받기도 한다. 이 역시 노사간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2021년 민주노총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가 전문건설업체들이 모인 철근콘크리트협의회와 맺은 복지기금 관련 단체협약 부속 협약서를 보면 복지기금은 현장당 월 20만원을 지급하며, 이는 조합원 본인 또는 가족의 사망, 결혼과 같은 경조비로 사용된다. 일반적인 사업장에서는 관행적으로 있는 수준인데,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취업과 실직을 반복해야 하는 구조다보니 과거에는 이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노조로 인해 생긴 것이다.

문제는 일각에서 이런 방식을 악용한다는 것이다. A 건설사가 2021년 10월부터 2022년 2월까지 4개월 동안 B 노조로부터 조합원을 채용하거나, 발전기금을 낼 것을 강요받았고, 결국 채용 대신 발전기금 300만원에 합의했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노조 전임비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지난 1월 국토교통부가 2주간 건설 현장 불법행위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이다가 파악한 사례 중 하나인데,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 여부가 가려질 전망이다.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대응 100인 변호인단 발족 기자회견에서 건설현장의 진짜 조직폭력배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23.04.06 ⓒ민중의소리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수면 위로 드러난 법의 사각지대 


여기서 법의 사각지대가 드러난다. 법적으로 보장된 근로시간면제제도가 일용직인 건설노동자들에겐 딱 들어맞는 제도가 아니라서, 현장별로 개별 교섭을 진행하다가 각종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시간면제제도는 1997년 3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제정 시 노조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이 금지된 이후 2010년 보완적으로 도입된 제도다. 원칙적으로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의 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가 동의하는 경우 ▲사용자와의 협의‧교섭 ▲고충처리 ▲산업안전 활동 등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의 유지‧관리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시간면제자’를 둘 수 있게 했다.

이후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금 금지가 노조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노조법이 개정됐지만, 노조 전임비 지급을 금지하는 근로시간면제제도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 노조법 부칙 제3조는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결정할 때 “조합원 수, 조합원의 지역별 분포,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연합단체에서의 활동 등 운영 실태를 고려하여 근로시간면제한도 심의에 착수”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이때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정하는 핵심 기준은 사업 또는 사업장의 전체 조합원수다. 그러다보니 현재 다양한 고용구조를 모두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간접고용노동자는 제도 적용 대상이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취업과 실업을 반복해야 하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노조법상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있는데도, 같은 법에 규정돼 있는 근로시간면제제도는 적용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노동계는 노사자율로 근로시간면제를 정할 수 있도록 노조법을 개정하자는 입장이다.

아직 노조법의 보호를 완전히 받지 못하는 노조들은 노조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경우 다수의 사용자와 집단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맺는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는 철근콘크리트 전문건설업체가 모여 있는 협의회와, 타워크레인분과위원회는 임대사들과 단체협약을 맺는 식이다. 여기에는 노조 전임자 신분을 보장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노사간 교섭으로 엄격한 기준 마련한 민주노총 건설노조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이처럼 단체협약에 따라 노사가 합의해서 노조 전임자가 근로시간면제를 적용받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해명자료를 통해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면서 타임오프 제도가 도입됐다. 일반적인 사업장 대상으로 마련된 타임오프 제도를 건설현장에서 운영할 수는 없다”며 “수시로 바뀌는 건설현장에서 상시고용 인원이 몇 명인지, 어느 노조의 몇 명이 전국 어느 현장에 근무하고 있는지 건설사조차 파악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설노조는 한 공사 현장당 노조법상 근로시간면제 최소기준인 99인 이하 사업장에 허용된 연 2만 시간에도 미치지 않는 기준으로 타임오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한수 민주노총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 위원장은 “예를 들어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선 우리 조합원이 최소 15명 이상일 때만 근로시간면제를 적용 받는다는 구체적인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그는 “다른 노조에서 조합원이 고용되지 않았는데도 대신 돈을 달라고 했다가 구속됐다는 언론보도를 봤다. 이처럼 조합원도 없이 금품만을 위해 활동하는 사례를 단속하겠다는 것으로 안다”라며 “애초에 우리는 조사 대상이 아닌 걸로 봤다”고 밝혔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각 건설현장 자체가 하나의 사업장이 되는데, 거기에 우리 조합원들이 투입되면 전문건설업체와 맺은 단체협약에 따라 그때부터 정해진 근로시간면제를 적용한다. 이후 일을 마친 조합원들이 그 현장에서 빠지면 사측은 계속 남은 공사를 하고 있더라도 저희는 (근로시간면제에 따른 급여를) 받지 않는다”며 “해당 현장에 우리 조합원이 없으면 근로시간면제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빠진 후에도 사측에서 (비용 처리를 잘못해서) 한두 달 계속 전임비를 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가 도리어 ‘이제는 보내면 안 된다’며 돌려준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퇴출하겠다는 ‘가짜 노조 전임자’와도 거리가 멀다. 원 장관은 “현장에서 근로를 제공하지도 않고, 현장 소속 조합원의 처우개선 활동도 하지 않는 노조원에게 회사가 임금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며 “일 안 하는 팀·반장 등 ‘가짜 근로자’에 이어 ‘가짜 노조 전임자도’도 현장에서 퇴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은 노조 조합원 처우개선 활동을 위한 전임자는 인정한다는 것으로도 읽힌다.

장옥기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지난 3월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현장 중대재해를 부추기는 윤석열 정부를 규탄했다. 2023.03.20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건설노조 전임비·복지기금 자체를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어”


이처럼 건설노조가 근로시간면제를 적용받고 있는 건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법률단체(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민주노총 법률원,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는 분석자료를 통해 “단체협약의 근로시간면제자 급여 합의는 적법하다”고 밝혔다.

근거는 노조법 제24조(근로시간면제 등)이다. 이에 따르면 근로자는 단체협약으로 정하거나 사용자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는 사용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으면서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않고 노동조합의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 그 한도는 사업 또는 사업장별로 종사하고 있는 조합원 수 등을 고려해 근로시간면제제도에서 정한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용자와 협의할 수 있다.

이들 노동법률단체는 “예를 들어 A 현장에 조합원 70명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근로시간면제한도 고시에 따르면 최대 2천 시간(풀타임 전임을 의미)까지 합의가 가능하다. 즉, 1명의 전임자 급여 지급이 가능하다”며 “그러나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현재 1개 현장에서 그에 훨씬 못 미치는 시간을 근로시간면제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임자가 해당 현장에서만 노조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이들은 “해당 지역의 건설노조 전임자는 A 현장뿐만 아니라 주변 건설현장의 조합원들을 위한 노조 활동을 수행하는 구조”라며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은 상급단체 전임도 가능하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13년 7월에 발표된 고용노동부의 ‘근로시간면제 한도 적용 매뉴얼’에는 “상급단체 파견자의 경우 상급단체(연합단체 등)도 노조법상 노동조합에 포함되며, 상급단체 파견 활동이 사업 또는 사업장 활동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상급단체 파견 활동도 사업 또는 사업장별 근로시간면제 한도 내에서 사용 가능하다”고 적혀 있다.

아울러 이들 노동법률단체는 ‘발전기금’, ‘복지비’ 등 노조 운영비를 사측으로부터 일부 지원받는 것에 대해서도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종래 ‘운영비 원조 금지’ 법조항이 2018년 5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 불합치 판단을 받았다는 게 그 근거 중 하나다. 당시 헌재는 “운영비 원조 금지 조항으로 인해 오히려 노조의 활동이 위축되거나 노조와 사용자가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대등한 지위에서 운영비 원조를 협의할 수 없게 되는데, 이는 실질적 노사자치를 구현하고자 하는 근로3권의 취지에도 반한다”며 “사용자의 노조에 대한 운영비 원조에 관한 사항은 대등한 지위에 있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해 정하는 것이 근로3권을 보장하는 취지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담당 정부 부처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강한수 위원장은 “노사가 단체협약을 맺을 때 쟁점이 생기면 중앙노동위원회에 다 보고를 한다. 2020년경에 고용노동부가 ‘조합원을 우선 고용한다’는 조항 문구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면서도 노조 전임자와 관련된 내용은 문제가 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노조 전임비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과거 정부의 탄압을 받은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특히 법적으로 문제 삼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6년 원청 건설업체와 단체협약을 체결해 전임비를 받은 경기 건설노동조합 간부들이 공갈·협박죄로 구속된 바 있다. 원청과 법적 고용관계에 있지 않은 이들이 안전시설 미비 묵인 등을 이유로 협박해 전임비를 갈취했다는 게 혐의의 요지다. 그러나 당시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건설현장에서 실질적인 사용자는 원청이며 정당한 노사관계법에 따라 진행한 교섭에서 체결한 단체협약이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이에 건설노동자 3명이 올림픽 대교 중앙 7m 높이의 ‘88올림픽 기념주탑’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에 앞서 2003~2004년에도 대전·천안·대구 건설노조 간부들이 같은 이유로 대거 구속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건설노조에서 초대 위원장을 지냈던 백석근 지도위원은 “수도권이 중심돼서 건설노조가 원청(종합건설사)을 대상으로 현장교섭을 해서 단체협약을 만들었다. 그게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지속됐는데, 2003년에 대대적인 탄압이 들어왔다. 직접고용 당사자(전문건설업체)가 아닌 원청과 협약을 맺고 전임비를 받는 것은 원청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라며 “교섭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이 정상적인 노조 활동이 아니라는 게 검찰의 기소 요지였고 법원의 판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에 실질적으로 우리 고용하는 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한 교섭을 본격화했다”며 “최근 상황이 과거 상황과 다른 건, 지금은 우리를 직접고용하는 당사자(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교섭을 하는 거고, 과거엔 현장의 직접적인 책임자임에도 불구하고 직접고용 당사자는 아니었던 원청을 대상으로 교섭을 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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