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 기관사들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에서 열린 코로나에 운전강요, 책임자 처벌! 아프면 쉴 권리 쟁취!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결의대회에서 아프면 쉴 권리 쟁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철도노조는 코로나에 승무강요 책임자 구로승무사업소 부소장 처벌, 연병가 통제 근절 대책을 마련, 공정한 승진심사 실시, 노동탄압 지침 철회 및 재발방지 등을 촉구했다.2023.04.13 ⓒ민중의소리
열차를 모는 청년 기관사들이 연차·병가를 통제하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분노하다 못해 거리로 나섰다. 몸살을 동반한 코로나19 양성 반응에도 지하철 운전을 강요받는 등 아파도 쉬지 못하던 청년 기관사들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태세다.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노조)는 13일 코레일 수도권광역본부 인근인 서울 영등포역 광장에서 ‘아프면 쉴 권리’를 쟁취하자는 취지로 결의대회를 열었다. 결의대회에는 20~30대 청년 조합원들이 대거 참여해 분노를 표출했다.
노조에 따르면 코레일 수도권광역본부 구로승무사업소에서는 기관사의 병가를 금지하고 보건휴가를 통제하는 일이 20~30대 청년 기관사들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작년 9월 10일 코로나 양성 반응으로 조퇴를 요구한 기관사에게 운전을 강요한 사건, 같은 해 12월 고열로 병가를 신청한 기관사에게 출근을 종용해 운전을 지시한 사건, 올해 1월 A형 인플루엔자가 병가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운전을 강요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운전하는 전철 운전실에는 기관사 한 명만 승차한다. 그만큼 기관사가 감당해야 할 책임도 막중하다. 이에 기관사들은 매번 출근할 때마다 ‘승무적합성검사’를 통해 휴식 및 피로정도, 음주 여부를 확인 받아야 한다. 하지만 병가를 신청해도 반려된다는 것은 이 검사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청년 기관사들의 연차 신청도 반려되기 일쑤다. 지난해 구로승무사업소가 반려한 연차 신청 건수만 835건인 것으로 노조는 파악했다.
더욱 문제는 연차와 병가 사용 등이 인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노조는 구로승무사업소가 인사권을 앞세워 거리낌 없이 연차와 병가 사용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승진 심사의 점수를 주관하는 관리자가 진급 누락 사유를 설명하며 ‘O월 OO일 병가 사용’과 같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며 “이로 인해 직급이 낮고 나이가 어린 기관사 사이에선 ‘병가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또한 “관리자들이 신입사원 교육 때 ‘욕심 있는 선배들은 아파도 병가를 사용하지 않는다’, ‘능력이 비슷하면 병가 사용 여부를 볼 수 밖에 없다’며 인사권을 내세우며 병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자기검열 문화를 조장해왔다”고 지적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수면 위로 확 떠오른 것은 구로승무사업소의 청년 기관사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서면서다. 노조에 따르면 최근 6년 동안 입사자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해 39세 이하 구성원이 60%에 육박하는데, 이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차와 병가 사용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노조는 “병가나 보건휴가를 사용하려고 하면 ‘사람이 없어서 병가를 내줄 수 없다’고 응대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여기에 연차 사용 금지 조치까지 일상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인사권과 운용권을 가진 관리자에 대해 눈치보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병가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대체 인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며 사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연 가운데 정주회 구로승무지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새해 첫날 대자보로 시작된 청년 기관사들의 투쟁
청년 기관사들의 ‘아프면 쉴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은 올해 1월 1일 노조 구로승무지부 조합원들이 현장에 붙인 대자보에서부터 시작됐다. 김동준 노조 구로승무지부 조직국장은 “병가 1회 사용 등 온갖 부당한 사유로 진급에서 누락된 기관사들이 참다 못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대자보가 기폭제가 되어 동료 조합원들의 연대 성명이 연속으로 게시됐다”며 “그동안 구로승무사업소가 인사권을 앞세워 연·병가를 통제해 온 문화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노조 구로승무지부는 청년 조합원 전수 간담회를 진행하고 지부 차원에서 책임자 사퇴를 요구하는 대자보 부착 및 피켓 선전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월 10일부터 시작한 피케팅은 이날로 64일 차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구로승무사업소와 상부조직인 수도권광역본부, 코레일 본사는 줄곧 모르쇠로 일관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픈 기관사의 병가를 불허하고 운전시킨 사례가 없다’며 발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구로승무사업소의 적반하장 태도가 청년 기관사들의 분노를 더욱 폭발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로승무사업소의 실무 책임자인 A 부소장이 노조 간부 및 조합원들이 본인을 괴롭힌다며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조 조합원들이 붙인 대자보가 강제로 철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주회 노조 구로승무지부장은 “시민 안전을 책임지고 무사고 운전을 한다는 자부심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있다”며 “참다 못해 선전전을 했더니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인쇄해서 ‘집단 괴롭힘 가해자’라고 온 직원이 보는 게시판에 공문으로 써붙여놨다. 대체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라고 성토했다.
최근 노조 구로승무지부는 대의원대회와 조합원총회를 통해 4가지 요구안을 결정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그 요구안은 ▲현장 길들이기 및 노동탄압 책임자인 A 부소장 경질 ▲사업소장 사과와 불법적인 연·병가 통제 근절 대책 마련 ▲무사고 경력 존중 등 공정한 승진 실시 ▲광역본부와 구로승무사업소의 노동탄압 지침 철회 및 사과와 재발 방지다. 김 조직국장은 “사측이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안전운행투쟁 등 더 강도 높은 투쟁으로 나아갈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정 지부장은 “철도공사는 ‘안전은 철도의 최우선 가치’라고 말한다. 안전하지 않으면 운행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하지만 현실에서는 줄세우기식 승진제도와 부소장의 전횡에 철도 안전도, 노동권도 기관사의 자부심과 존엄성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철도 현장의 세대가 바뀌면 바뀔수록 사측의 공격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마치 윤석열 대통령이 ‘MZ세대’가 자기 편이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사측은 젊은 조합원들이 노조로 뭉치지 않고 줄서기와 통제 문화에 순응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사측이 먼저 꺼내든 현장 통제 칼날에 우리가 먼저 꺾일 수는 없다. 우리가 지치기를 바란다고 그대로 지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긋지긋한 연·병가 통제의 악순환을 끊어냈다고 돌아볼 수 있도록 시원하게 싸워보자”고 호소했다.
강정남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장도 “비단 구로승무사업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철도 현장 곳곳에서 아파도 쉬지 못하고 연차도 쓰지 못하고 있다. 차량, 전기, 시설 등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다”며 “그래서 안전 인력 충원 요구를 끊임없이 해왔지만 국토교통부와 윤석열 정부는 들은 척도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강 본부장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아프면 쉴 권리’가 사회적 화두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도 쉬지 못하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 할 수밖에 없는 현장을 만들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라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지하철 1호선 기관사들이 1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앞에서 열린 코로나에 운전강요, 책임자 처벌! 아프면 쉴 권리 쟁취!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결의대회에서 아프면 쉴 권리 쟁취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철도노조는 코로나에 승무강요 책임자 구로승무사업소 부소장 처벌, 연병가 통제 근절 대책을 마련, 공정한 승진심사 실시, 노동탄압 지침 철회 및 재발방지 등을 촉구했다.2023.04.13 ⓒ민중의소리
시민사회도 투쟁 지지 “모두의 안전 문제”
철도 안전은 시민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시민사회에서도 청년 기관사들의 투쟁을 지지하러 나섰다.
김성국 구로시민센터 대표는 “기관차도 고장 나면 어디로 들어가 고쳐지는데, 그것을 운전하는 기관사가 아파도 쉴 수 없다는 건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 같은 현실”이라며 “노동자들의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 그리고 그것을 타고 다니는 우리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이 담보되는 사회를 위해서 다 같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밝혔다.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활동가도 “아파도 꾸역꾸역 나와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 심지어 약 3년 동안 전 세계가 멈춘 감염병 사태에서도 병가 사용을 금지당했던 나와 동료의 경험을 통해 코레일이 얼마나 자사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무시하고 침해하고 있는지 철도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와 우리의 삶이 증명해주고 있다”며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자는 요구는 젊은 기관사들뿐만 아니라 철도 노동자 전체의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구로승무사업소의 청년 기관사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아프면 쉴 권리’ 투쟁이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정동기 철도노조 운전국장은 “지금 현장에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연·병가를 통제하고 있다”며 “이건 구로승무사업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사업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우선 서울지역 운전 지부장 회의를 소집했다. 거기서 이 문제를 공유하고 앞으로 투쟁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서다윗 민주노총 서울본부 남부지역지부장도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아파도 쉬지도 못하고 노비처럼 일해야 되는 이 사회를 노동자들이 투쟁을 반드시 바꿔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구로승무사업소는 수도권 1호선 전철을 운영하는 4개 사업소(코레일 구로, 성북, 병점, 서울교통공사 신답) 중 하나로, 인원으로만 따지면 1호선 기관사의 40%가량이 근무하는 곳이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기관사 수는 285명이다.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연 가운데 강정남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연 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수도권광역본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갔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조합원들은 출퇴근할 시 드나드는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고 황당해했다. 이에 조합원들이 피켓과 리본으로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가 1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연 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수도권광역본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갔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조합원들은 출퇴근할 시 드나드는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고 황당해했다. 이에 조합원들이 피켓과 리본으로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