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토교통부에서 자동차보험의 한의 치료 보장 내용을 현행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시키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습니다. 명분은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척 치료를 받는 속칭 ‘나이롱’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잡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올해 초 같은 이유로 자동차보험의 약정 변경 조치가 한 번 있었습니다. 환자들이 보장받을 수 있는 치료 기간을 줄이고, 보장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대한한의사협회에서 국토부와 자동차 보험사들을 상대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협회 차원의 규탄 집회도 열리며, 양측 갈등이 깊어지는 모습입니다.
이 글에서는 교통사고 후유증 환자 분들을 현장에서 많이 진료해왔고, 또 진료하고 있는 한의사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자동차 사고(자료 이미지) ⓒpixabay
올해 자동차 보험의 약정 변경으로, 환자들이 사고 4주 이후엔 다시 진단서를 발급받아야 하게 됐습니다. 입원가능일도 기존 2주에서 5일로 축소됐습니다. 제 생각에 문제는 보장 내용 축소 뿐만이 아닙니다. 보험 회사 직원들이 몸이 다 낫지 않은 환자들에게 이런 약정을 내밀며, 빠른 합의와 사고 종결을 종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 제가 치료한 환자분들의 경우에도, 합의하고 사건을 종결한 뒤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하며 치료를 받고 계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증상이 남아있는데 왜 자동차 보험으로 치료 받지 않으시냐’고 여쭤보니, 보험사 직원이 ‘계속 자동차 보험으로 치료를 받으면 보험료 할증이 될 수 있고, 합의금도 더 적게 받게 된다’는 등 안내를 했다고 답하셨습니다.
현재 치료기간 4주가 지나더라도 한의사의 진단서가 있으면, 진단 기간만큼 치료비 지불 보증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험사에서 이를 제대로 안내하지 않아 지급 보증이 끝난 줄 알고 사건을 종결했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분들은 보통 본인 부담금이 부담돼 치료 횟수를 줄이거나 약침, 추나 등의 치료는 받지 않고 최소한의 치료만을 받으십니다. 그러면 치료율이 떨어지게 됩니다. 현행 제도 하에서도 이런데 국토부 제안처럼 치료 기간 및 보장 내역을 더 축소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 질 것 같습니다.
‘아프지도 않은데 거짓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너무 많다’는 국토부의 문제의식은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경력이 쌓이면, 어느 정도 ‘꾀병’ 환자를 감별해낼 수 있게 됩니다. 이들은 호소하는 증상이 일반 교통사고 후유증 환자와 다르고, 통증 부위를 눌러도 별로 아파하거나 피하는 반응이 없습니다. 치료를 받기 싫어하면서도, 진단서엔 합의금 받는데 유리한 내용을 써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한의사는 환자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게 일이 아니라 진료하는 게 일이기 때문에 성의껏 치료를 해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환자가 거짓말을 해도 한의사가 치료를 할 수 밖에 없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제도적 허점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국토부 보고서의 주장처럼, 한의 치료 보장 범위나 금액을 축소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면 진짜 아픈 환자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꾀병 환자들은 흔히 합의금을 목적으로 한의 치료를 악용합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 주로 1~2회 정도만 치료 받은 뒤 상해진단서를 받고 합의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 부담금 없는 공짜 치료라도, 아프지 않은데 1주일에 3~4번, 매일 한의원에 와 1시간 남짓 치료를 받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반면 사고로 인해 진짜 아프신 환자분들은 치료를 더 자주, 더 많이, 더 길게 받기 때문에 치료비 보장이 꼭 필요합니다.
현재 국토부에선 일괄적으로 모든 교통사고 환자들의 치료 보장 금액과 범위를 축소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1~2회 치료만 받는 꾀병 환자들은 전혀 걸러낼 수 없고, 진짜로 아파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 분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게 됩니다.
이외에도 문제점은 많습니다. 보장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고 심사를 까다롭게 하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이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받게 됩니다. 이들이 교통사고 후유증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만성 통증증후군이 생기면, 더 큰 의료비 부담이 발생합니다. 가해 차주나 자동차보험 회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공공기금인 건강보험이 대신 부담하게 되는 책임 전가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침 치료하는 모습(자료 사진). 2022.04.14 ⓒ자생한방병원
교통사고 후유증은 외상이 없고 영상의학적 이상 소견이 없더라도, 평균 1~2개월 길게는 수년까지 후유증이 지속되는 질병입니다. 신체적인 증상 뿐만 아니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강박장애, 불안장애 등 여러 신경정신과적 문제도 일으킵니다. 생명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크게 하락시키기 때문에, 세심하고 꼼꼼하게 지속적으로 치료와 관리가 필요합니다.
국토부는 의료 현장의 목소리와 국민 여론을 귀담아 듣고,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권리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도덕적 해이를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개정안을 만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기왕이면 교통사고 가해자나 보험회사의 편이 아닌, 교통사고 피해자와 환자들의 편에 서 주시기를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