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이 의결되었다. 이 기본계획은 우리나라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담고 있다. 이번 기본계획을 가리켜 ‘정부의 실패를 방증하는 계획’ 혹은 ‘기후 범죄’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여러 문제가 있지만, 대표적인 문제는 이런 내용이다. 이번 기본계획은 목표뿐만 아니라, 매년 얼마나 줄이겠다는 것 역시 발표했는데, 윤석열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최대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는 대신, 다음 정부가 상당 부분을 감축하도록 계획을 세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산업 부문의 감축량을 최소화한 대신, 가능성이 불확실한 해외 감축이나, 상용화가 불확실한 기술에 의존한 것 역시 비판받고 있다.
김상협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 위원장은 이에 대해, “탄소중립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계획은 얼마든지 국민들이 참여하는 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표현을 빌리면, “국민이 모두 이행점검하고 참여해서, 국민에 의해서 반성하고 가르침도 받는 중장기계획”, 즉, ‘롤링플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상협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장이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국가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롤링플랜’은 한국 사회가 동의하는 선까지만 굴러간다
결국 정책은 우리 사회가 논쟁하고, 고민해 온 결과만큼만 진일보한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녹색 신산업이라고 부를만한 영역에 많은 돈을 투입해왔다. 그만큼이 우리 사회가 동의해 온 정도였을 따름이다.
그래서 아무리, 탄녹위가 ‘롤링플랜’을 말해도 지금의 관점에서는 국제 사회와 약속한 1.5℃ 라는 목표는 이뤄질 수 없는 목표로 남을 뿐이다. 배출량 상위 1%인 14개의 기업이 지난 10년간의 국내 총 온실가스 배출량의 51.4%를 배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기후위기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의 위기로만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수많은 정치인과 미디어를 통해 들어온 이야기들은 이러한 주장들이었다. ‘기후위기로 인해 기업들이 경제활동 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든가,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할 수밖에 없어서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라든가 말이다. 이들 기업들이 탄소배출을 통해 더 이상 큰 이익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며,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적인 손해로 인식하는 전제가 깔려있다. 의미있는 수준의 기후위기 대응은 이러한 공감대 속에 물건너간 뒤다.
이러한 주장들은 ‘경제위기를 신성장동력이라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말로 이어진다. 전기 수소차와 같은 새로운 산업으로 경제를 창출해야 한다느니, 녹색산업을 지원해서 한국이 기후위기 대응을 선도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로, 새로운 투자를 유치한다. 그렇게 오히려 많은 배출을 해 온 자동차, 건설, 에너지, 석유화학 산업에 투자와 지원이라는 면죄부가 제공된다. 그것이 우리 정치가 이야기해 온 그린뉴딜이며, 기후위기 대응이었다.
그렇게 기후정책이 ‘대기업을 챙겨주는’ 경제 정책의 하수인이 되어있는 이상, ‘산업계 봐주기’ 기후정책은 ‘롤링플랜’이더라도 이어질 것이다. 이번에도 빈 살만의 한국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계획이 발표되자, 산업계 감축목표가 쪼그라들지 않았던가.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의동맹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참석자들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후위기 역행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폐기 후 재수립하라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3.04.10 ⓒ민중의소리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는 경고 대신에, 잿더미가 된 삶을 고민할 때
그레타 툰베리는 다보스 포럼에서 유력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에게 ‘우리 집이 불타고 있다’며, “자기 집에 불이 났을 때 하듯이 행동하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진짜 불이 나도 이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제천 봉황산에서 불이 났음에도, 김영환 충북지사는 청년단체와 술자리를 가져 물의를 빚었고, 31일에는 홍천에 산불 진화작업이 한창인데도, 김진태 강원지사는 식목일 행사 이후 불타는 산을 외면한 채, 골프연습장으로 향하지 않았던가.
산불이 나도, 폭우가 와도, 또 기후위기로 먹거리 가격이 치솟아도 삶이 크게 변하지 않는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불편함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번에 강릉에서 난 산불로 주택 59채가 전소되었다고 한다. 많은 한국 사람에게 ‘집’은 유일한 자산, 유일한 안전망이다. 일생을 일해 집을 사고, 이러한 집값이 높아지면서 복지를 간접적으로 제공해 온 것이 우리 사회의 ‘자산 기반 복지’의 현실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산불로 가지고 있던 집 한 채가 잿더미가 된 사람들은 평생을 모아 온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잿더미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사실 이미 기후위기로 우리 삶은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다. 기후위기로 난방비, 전기요금도 오르고, 대중교통 요금도 오르고, 먹거리 가격도 오른다. 그런데도 기후위기는 ‘기업의 위기이자 기회‘로만 설명되고, 기본계획은 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만을 말한다. 시민 대부분에게 변변찮은 안전망이란 없다. 난방비가 올라가면, 불안에 떨어야만 하고 출퇴근에 필요한 대중교통 요금이나 먹거리 가격이 오르면, 무언가 소비를 줄여야만 한다. 우리에게 삶이 무너져도 다시 평소대로 살아갈 안전망이란 없다.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은 ’우리의 기후위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탄녹위 위원으로 청년 몇 명, 혹은 노동자 몇 명 들어간다고 해서 기본계획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고, 김상협 탄녹위 위원장이 아무리 ‘롤링플랜’을 들먹이며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계획’이라고 말해도 ‘경제 정책’을 위해 기본계획이 쓰이는 이상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 삶이 잿더미가 되더라도, 물바다가 되더라도 다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하니까 ‘기후위기 대응을 말하는 국가 계획’은 국가의 기본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잿더미가 된 삶을 고민하자. 주거도, 복지도, 교통도, 조세제도도, 농업도, 노동도, 경제도 기후위기 대응을 전제한 채 새로 쓰여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