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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가 바꾼 현장, 여성 목수가 늘어났다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⑫] 예순의 여성 건설노동자, 건설노조 덕분에 만난 ‘내 세상’

편집자주

윤석열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행위를 ‘뿌리 뽑겠다’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 건설사들의 불법 행위는 외면한 채,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활동을 집중 단속하는 데 대한 반발도 거셉니다. 향후 ‘건설노조가 죄인인가’ 기획을 통해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건설노조의 이른바 ‘불법 행위’가 어떤 것인지 진실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① [인터뷰]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 “비정상적 건설업계 놔두고 노조만 때려잡나”
② 타워크레인 월례비, 원인은 건설사에 있는데 노조만 때리는 정부
③ 건설현장 고용문제 외면한 정부, 대신 나선 노조에 이제 와서 “조폭”
④ [인터뷰] 조선소→건설사 관리직→건설노동자, 그가 말하는 ‘건설노조’
⑤ 외국인에 밀려난 내국인 건설노동자, 이면엔 건설사 ‘이윤 욕심’
⑥ [현장] “노조에 빌미 잡히지 말자” 불법에 이중 잣대 보인 원희룡의 ‘황당 연설’
⑦ 타워크레인 노동자에 ‘위험한 작업 거부하면 면허정지 시킨다’는 국토부
⑧ ‘건폭’ 핵심 한국노총 출신 건설산업노조, 1년 전 ‘윤석열 지지’ 선언했다
⑨ 건설노조 팀장들 “우리가 가짜 근로자? 업체서 할 일까지 대신 합니다”
⑩ 아파트 공사장에서 ‘인분 주머니’ 없애는 진짜 해법
⑪ ‘건설노조 전임비 비리’ 요란하더니, 민주노총이 아니었다


철근과 나무 합판, 콘크리트가 뒤엉킨 건설현장. 안전모를 쓰고, 허리에는 못 주머니를 찬 채, 손에 든 망치를 탕 탕 힘껏 내리치는 건설노동자의 모습을 떠올리면 흔히 남성을 생각하기 쉽다. 무거운 건설자재를 들고 나르고, 힘을 많이 쓰는 중노동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의 일터로만 여겨진 건설현장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건설현장을 여성도 일할 수 있는 일터로 바꿔나가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 여성 건설노동자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건설노조 덕분이다. 

그 결과, 여성 건설노동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8.3%(15만2천여명)였던 여성 건설노동자의 비율은 올해를 기준으로 12.4%(26만1천여명)로 늘어났다. 더욱 고무적인 변화는 건설현장에서 여성이 담당하던 역할의 변화다. 그동안 여성 건설노동자는 주로 핀 줍기 등과 같은 보조적인 일을 해왔다면, 최근에는 형틀목수나 철근공처럼 주된 공정을 담당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건설노조가 운영하는 건설기능학교에서 기술 배우고 현장으로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형틀목수 남한나 씨. ⓒ남한나 씨 제공

형틀목수인 남한나(40) 씨는 건설노조에서 최초의 여성 반장이자, 유일한 여성 반장이다. 반장은 팀 내 중간 관리자급으로, 팀원들에게 작업을 지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팀장과 팀원들에게 능력을 인정 받아야만 반장이 될 수 있다. 남 씨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만 얘기하지만, 퇴근 이후에도 설계 도면을 집으로 가져가 공부할 정도로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남 씨는 건설기능학교에서 기술을 배워 현장에 투입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서울, 안산, 성남, 파주 등에서 건설기능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건설노동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각 공정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을 교육하고, 건설현장 취업을 연계해 주고 있다. 남 씨는 여성 건설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건설노조의 활동으로 '건설기능학교'를 꼽았다. "건설기능학교를 통해 여성이 건설현장에 들어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게 그 이유였다.

건설현장은 인맥 없이는 일하기 힘들고, 기존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 대부분이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진입하기에 상대적으로 어려운 구조다. 건설기능학교가 없던 과거에는 친인척, 지인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거나 속칭 '오야지'라고 불리는 이들을 통해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어렵게 현장에 투입되더라도 기술 전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남성 위주로 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여성들은 주로 보조적인 공정이거나 단순 업무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우고 숙련할 기회를 쌓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임금 등 처우도 남성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러야 했다. 하지만 건설기능학교에서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면서 남 씨와 같은 여성 건설기능인이 늘어나고 있다.

남 씨는 "건설현장에는 예전부터 여성노동자가 있었지만 주로 핀을 줍거나 청소를 하거나, 방수를 위해 페인트를 칠하는 일처럼 허드렛일을 해왔다"며 "그런데 건설기능학교 덕분에 여성에게도 기능이 전수됐고, 형틀목수로도 일하게 됐다. 이제 형틀목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이제 철근 교육도 시작해서 여성 철근공도 배출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남 씨가 교육을 받았던 안산건설기능학교는 2015년 처음으로 여성 건설노동자가 들어온 뒤 지금까지 60여명의 여성 건설노동자를 배출했다.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이 극에 달한 시기지만, 지난달 안산건설기능학교 교육 신청자 중 여성의 비율은 70~80%에 달할 정도라고 남 씨는 전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팀을 구성할 때 여성을 한 명씩이라도 배치해 팀·반장들이 기술을 전수해 주도록 한 것도 노조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초기에는 '팀에 꼭 여성을 받아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지만 최근에는 '여성노동자를 팀에 배치해야 한다면 보내달라'는 분위기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

호칭 바꾸고, 성평등 지침 만들고


남성 중심의 일터에서 여성이 생존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뭐 하러 여기까지 왔냐", "남편은 뭐 하냐"는 말은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으레 듣는 얘기였다. 여성 건설노동자를 동료로 보지 않는 차별적인 시선과 성차별, 성희롱 등은 일상적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앞장선 곳도 민주노총 건설노조였다. 남 씨는 "점차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남성 중심이었던 조직 문화가 많이 없어지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게 민주노총 건설노조 여성위원회가 시작한 '이름부르기 캠페인'이다. 안전모에 이름이 크게 써 있음에도 현장에서는 건설노동자를 '아줌마', '아저씨' 등으로 불렀다. 호칭을 이렇게 부르니, 뒤따라 나오는 말도 고울 리 없다. 2020년부터 시작한 '이름부르기 캠페인'으로 'OO님'이나 직책을 부르기 시작했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럽게 달라지고 있다고 여성 건설노동자들은 입을 모았다.

여성 건설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성평등한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도 이어졌다. 처음으로 지부 내 여성위원회가 만들어졌던 경기 중서부건설지부의 경우 지난 2018년 여성 조합원 수련회 과정에서 어떻게 여성이 건설현장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을 나눈 뒤 '성평등한 일터 만들기 10대 선언'을 만들었다. ▲호칭은 목수로 하자 ▲폭언, 폭행, 성적농담하지 말자 ▲고정된 성역할을 강조하는 말을 하지 말자 ▲성희롱이 발생하면 불쾌감을 즉시 표현하고, 주의에 피해자가 있을 시 적극적으로 연대하자 등의 내용이다.

중서부건설지부 여성위원장이기도 한 남 씨는 "수련회에서 10대 수칙을 만든 뒤 남성 조합원들에게 보여주고, 숙지시키면서 '우리는 동지'라는 점을 강조했다. 여성 조합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똑같은 동지니, 당당하게 일하고, 심부름만 하지 말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얘기를 주로 했다"며 "자연스럽게 '이런 말, 행동을 하면 안 되겠구나' 알게 되고, 비조합원이 건설현장에서 잘못된 말과 행동을 하면 남성 조합원이 나서서 '그렇게 하지 말아라'고 얘기해주시는 분도 계신다. 많은 변화들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건설현장에서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안전교육처럼 성평등·성희룡 교육도 의무적으로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인 박미성 민주노총 부위원장. ⓒ박미성 부위원장 제공

건설노동자의 화장실 문제를 공론화한 것도 건설노조였다. 건설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은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그나마 있는 화장실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비위생적인 경우가 많았다. 참다못한 건설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건설사에 항의해봐도 개선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동안 법에서 화장실 설치 의무만 규정하고 있을 뿐, 화장실 개수에 대한 규정은 없었던 탓이다.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하고, 제대로 씻지 못했던 건설노동자들은 방광염과 피부염을 앓았다. 화장실 문제는 곧 건설노동자의 인권, 건강권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여성의 경우 그 고충이 더 심했다. 여성 건설노동자들의 수가 많지 않다는 이유로 여성 화장실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가뜩이나 부족한 화장실을 남녀공용으로 사용하게 하는 건설현장도 있었다. '남녀 근로자가 함께 근무할 경우 화장실을 구분해서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건설노조는 건설현장 화장실 실태를 고발하고, 원청 건설사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등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타워크레인 조종사인 박미성 건설노조 부위원장(여성위원장 겸직)은 "2019년 여성위에서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하면서 건설현장의 화장실 실태를 알렸다. 화장실이 정말 이렇게 없냐면서 다들 깜짝 놀라더라"라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건설노조는 여성 건설노동자를 대상으로 화장실 문제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한 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었다. 박 부위원장은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긴 하지만, 최근에도 화장실 문제가 불거진 곳이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여성위 차원에서 현황 조사에 나서니 시정이 됐다"고 말했다.

건설노조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 정부는 뒤늦게 제도 개선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1월 말 건설현장 화장실 설치 기준에 '노동자 수 기준'을 추가한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 개정안은 내부 절차가 마무리된 뒤 오는 5월께 공포되고, 3개월 유예 기간을 거친 뒤 8월부터 현장에 적용된다.

여성이기에 더 취약한 건설현장
건설노조는 울타리가 됐다


건설사는 대부분 여성 건설노동자 채용을 꺼린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0년 여성 건설노동자 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채용 차별을 경험한 이들은 23.3%였다. 건설현장은 팀 단위로 고용되는데, 팀에 여성 건설노동자가 포함돼 있으면 '여성이 어떻게 건설일을 하느냐'며 트집을 잡는 건설사도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핑계로 여성 건설노동자 채용을 꺼릴 때, 노조 조합원들로 구성된 노조팀은 "일하는 거 보고 이야기하시라"며 부당한 채용 차별을 함께 막아 왔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이 극에 달하자, 건설사의 채용 차별도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성희롱 사건이 발생할 수 있어 안 된다', '여성은 많이 다쳐서 못 받겠다', '여성 화장실이나 휴게실을 만들 공간이 없다'며 노조팀 팀원 중 여성 조합원만 제외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건설노조의 설명이다.

남한나 씨는 "건설노조 활동으로 여성도 일할 수 있게 됐는데,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게 여성"이라며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받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있는 상태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채용하지 않겠다는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건설노조 여성위는 이러한 상황을 보고 받은 뒤 즉각 현장을 찾아가 규탄시위를 열고, 건설사 측에 강하게 항의했다. 지난 1일에는 서울에서 수도권 건설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여성 건설노동자의 생존권을 뺏지 말라"고 반발했다.

박미성 부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진 이런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았다"며 "최근 노조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면서 건설노조 조합 중 그나마 남성 조합원은 적게나마 쓸 테니, 여성 조합원은 빼라는 분위기가 현장에서 만연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먹반장인 김혜숙 씨 ⓒ김혜숙 씨 제공

올해로 6년째 건설현장에서 먹매김을 하는 김혜숙(60) 씨에게도 건설노조는 든든한 울타리였다. 먹매김은 설계 도면대로 시공할 위치를 바닥에 표시하는 일이다. 힘이나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 다른 공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으며, 주로 여성이 일하는 공정이다. 팀이 아닌 먹매김 노동자 개개인이 하청 건설사에 채용되는데 '먹 차장'이라 불리는 하청 관리자와 일한다. 먹 차장은 주로 남성이다.

김 씨와 같은 먹매김 노동자들은 최근 1년 새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다수 가입했다. 김 씨는 "지난 5년간 서러운 게 너무 많았는데, 건설노조에 들어와서 너무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워했다.

사연은 이랬다. 주로 남성 관리자인 먹 차장은 먹매김 노동자의 고용을 좌우한다. 이 때문에 먹매김 노동자는 쉬는 시간, 퇴근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먹 차장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먹 차장의 악의적인 괴롭힘에도 그저 묵묵히 참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부당한 지시에 항의라도 하면 "무슨 아줌마가 말이 많느냐"는 말이 돌아왔다. 김 씨는 "자꾸 얘기하면 나를 자를까 싶어서, 무조건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서러워서 하루 종일 운 적도 많다"고 말했다.

김 씨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건설 현장을 바꾸고, 건설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을 바꾸는 모습을 보고 건설노조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다른 공정과 달리 팀이 아닌 개인으로 일하기 때문에 김 씨는 노조팀 중 형틀목수팀과 한 팀이 됐다. 그는 "형틀 팀장이 매일 오늘은 어땠는지 확인하고, 애로사항이 있어서 얘기하면 팀장이 직접 먹 차장과 얘기해 해결한다. 노조에 들어온 뒤 쉬는 시간도 생기고, 퇴근 시간에 맞춰 퇴근할 수 있게 됐다"며 "건설노조에 와서는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고, 먹 차장도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마치 내 세상이 된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먹 아줌마'라고 불리던 호칭은 조합원이 된 먹매김 노동자들의 토론을 거쳐 '먹 반장'으로 바뀌었다. 김 씨는 "아줌마가 아닌 반장님으로 불리니 나를 존중해 주는 기분이 들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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