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 도시인 경주시가 또다시 헛된 꿈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SMR(소형모듈원자로) 국가산업단지 유치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한 달 넘게 경주시 전역을 뒤덮었다. 경주시가 차기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이라도 된 듯 요란하다. 국내 최대 관광도시를 자부하는 경주시가 평소 도시 미관을 이유로 현수막 단속을 엄격하게 펼쳐온 전례 비추어 매우 이례적이다. 오히려 불법 현수막 게시를 독려하는 듯하다.
경주시가 지역구인 김석기 의원(국민의 힘)은 4월 의정보고에서 “SMR 개발은 경주시 미래 먹거리 산업 이끌 블루오션”으로 치켜세우면서 “이번 국가산단 유치로 경제적 파급효과는 생산유발효과 7,300억 원, 부가가치 유발 3,410억 원, 취업 유발효과 22,799명”이라고 주장하는 등 SMR 국가산업단지 열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과연, 경주시의 현수막 광풍과 김석기 의원의 4월 의정 보고는 사실일까?
먼저 짚고 갈 것은 SMR 국가산업단지 ‘유치’부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지난 3월 15일에 발표한 15개 국가산업단지 ‘후보지’에 경주시가 요청한 SMR 국가산업단지가 포함됐을 뿐이다. 후보지가 최종 국가산업단지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태릉선수촌에 입소한 것을 두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호들갑 떠는 격이다.
정부가 발표한 15개 후보지는 향후 <사업시행자 선정, 개발계획 수립, 예비타당성 조사, 관계기관 협의 등>을 거쳐 최종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다. 그리고 국가산업단지 지정은 ‘사업시행자 선정’의 첫 삽부터 정부에서 책임지고 진행하지만, 이번에 발표한 15개 후보지는 지자체에서 주도적으로 개발 절차를 수행하고, 정부는 2026년 무렵 국가산업단지를 최종 확정해 국비를 투입한다. 경주시는 여러 난관을 뚫고 SMR 국가산업단지 최종 선정의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주시의 현수막 광풍과 김석기 의원의 의정보고 그러나 SMR 국가산업단지는 헛된 꿈일뿐 실패하면 산업폐기물 매립장으로 전락할 우려
정부는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를 선정하면서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도 함께 발표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미래차, 로봇> 산업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부는 6대 국가첨단산업에 2026년까지 민간주도로 550조 원을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그러므로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과 연계된 대전 유성구(나노, 반도체, 우주항공), 광주 광산구(미래차핵심부품), 달성군(미래자동차, 로봇), 천안시(미래모빌리티, 반도체) 등의 후보지만 국가산업단지에 최종 선정된다고 봐야 한다. 애석하게 SMR은 국가첨단산업 육성전략에서 배제되어 집중 투자도 못 받는다. 핵산업을 국시처럼 받들던 윤석열 정부를 생각하면 SMR 배제가 아이러니하지만, 한편으로 냉혹한 현실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개발하려는 i-SMR(혁신형SMR)은 설계도조차 없다. SMR 연구 개발을 위해 경주시 감포읍에 건설 중인 문무대왕과학연구소가 2025년 준공을 하더라도 i-SMR이 언제 개발될지 알 수 없다. 장밋빛 계산으로 2030년경 조기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지금 흐름대로 2030년을 넘기면 값싸고 안전한 재생가능에너지가 세계 에너지 시장의 주류로 등장한다. 핵발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석기시대가 저물고 청동기시대가 도래하는 때에 초정밀 석기 개발에 국력을 쏟으면 어떻게 될까? 문명의 몰락을 초래할 뿐이다.
모든 정황이 SMR 국가산업단지는 불가능하다고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경주시는 온통 경사스러운 잔칫집 분위기다. 경주시는 4월 18일 문무대왕면에서 SMR 국가산업단지 주민설명회까지 개최했다. 문무대왕면 두산리, 어일리, 송전리 마을 일대의 46만 평이 SMR 국가산업단지 후보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뒤가 두렵다. 문무대왕면의 46만 평 후보지는 빠르게 택지조성이 진행될 것이다. 이후 ‘SMR 국가산업단지’가 타당성 없는 사업으로 최종 확인되면, 일반산업단지로 용도 변경하여 산업폐기물 매립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도권과 광역시의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포화되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정부에게 이보다 좋은 시나리오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