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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영업사원’ 윤 대통령, 전기차·반도체 포기하고 MOU만 받아올까

[길 잃은 외교와 윤 대통령 방미] 한미 정상회담 직전 ‘도청’ 의혹 기회 날려…IRA·반도체법 성과 난망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시찰을 마친 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설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2022.05.20.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난다. 자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의 영업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현실은 우려가 크다. ‘무엇을 더 주고 올 것인가’ 걱정이 앞선다. 미국 도청 의혹은 협상의 지렛대지만, 스스로 포기한 모양새다. 오히려 러시아를 자극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최대 현안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은 미국 자국 우선주의와 한국의 종속 외교라는 악조건 가운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4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부터 오는 30일까지 5박 7일 국빈 방미한다.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은 오는 26일이다.

경제 현안은 명확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이다. 두 법안에서 한국 기업에 불리한 내용을 최대한 완화해야 한다. 정부도 경제 분야에 역점을 두고 있다. 대규모 경제사절단도 동행한다. 참가기업이 122개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변죽만 울리고 오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전 국립외교원장)는 “포장은 하겠지만 성과가 없을 것 같다”며 “IRA와 반도체법이 현안인데, 그보다는 원자력 수출이나 우주기술 협력 등 당장 한국에 도움이 안 되는 것만 가져올 듯싶다”고 말했다.

종속 외교에 빠진 윤 대통령, 회담 시작 전부터 외교 실책

미국 도청 논란에 대한 대통령실 대응은 미국 종속적 외교 기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난 8일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들의 대화를 감청한 정황이 드러나자, 대통령실은 미국을 옹호하고 나섰다. 미국조차 도청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도·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고 단정 지었다.

정부가 스스로 레버리지를 없애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중 갈등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를 경제 파트너로 활용하지 못하고 미국에 일방적으로 무게 중심을 쏟으면서 운신의 폭을 좁혔다는 지적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한국이 다른 쪽으로 갈 데가 없으면 미국은 한국에 잘해줄 리가 없다”며 “미국이 원하는 건 한미일 공조인데, 이게 삐그덕거릴 조짐이 있어야 미국도 한국에 양보할 요인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이미 다 내줬으니 미국은 현상 유지만 하면 된다”며 “한국이 쓸 카드가 남았나 싶다”고 했다. 또한 “한국도 중국이나 러시아와 경제블록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우크라이나 군수 물자 지원 같은 경우도 여지를 남겨두고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해야 하는데, 그런 측면의 고려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윤 대통령은 러시아를 향한 적대적 발언으로 우려를 키웠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지난 19일 공개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만약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이라든지, 전쟁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이라는 단서 조항은 조건부로 풀이될 수도 있지만, 외교적으로는 보다 강경한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윤 대통령 발언에 러시아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한다면 분쟁에 일정 부분 개입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상황과 관련해) 한국은 러시아에 대해 비우호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며 “군사 지원 가능성은 그 연장선”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와 외교 갈등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큰 부담이다. 러시아는 한국의 10위 교역 대상국이다. 지난해 한국 수출의 1.6%, 수입의 2.8%를 차지했다. 품목별로 보면 수출은 자동차·부품이 41%로 가장 많다. 수입은 나프타 25%, 원유 25%, 유연탄 13%, 천연가스 10% 등 에너지에 집중돼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160여 곳에 이른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를 필두로 기아,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 등이 현지 법인을 세웠다. 삼성·롯데·LG 등 주요 기업도 현지 법인을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서방 제재 이후 러시아에서의 한국 기업 활동이 위축되기는 했으나, 철수하지 않고 상황 개선을 기다리는 분위기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를 겨냥한 내용이 공동성명에 담기게 되면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준형 교수는 “미국의 도청 의혹을 지렛대로 활용해 ‘미국 실수로 이렇게 됐으니 더 이상 우크라이나를 못 돕겠다’고 응수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직접 도울 수도 있다는 발언을 했다”며 “중국과 러시아 반응을 고려해 수위는 조절하겠으나, 관련 내용이 공동성명에 어떤 형태로든 들어갈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전쟁 반대’ 또는 ‘전쟁 중단’이라는 표현으로 에둘러 러시아를 겨냥할 수도 있지만, 러시아를 지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김 교수 설명이다. 그는 “최악의 경우로 치달으면, 러시아와는 끝나는 것”이라며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은 막히고, 러시아에 진출한 160여개 기업은 다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로고 (자료 사진) ⓒ뉴시스, AP통신


IRA·반도체법 난제, 성과 난망

한국 기업의 미국 시장 판매 발목을 잡는 IRA는 한미 간 최대 현안이다. IRA에 따르면, 북미 공장 조립은 7,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 적용을 위한 전제다. 배터리 조건이 추가로 붙는다. 북미에서 제조·조립한 배터리 부품을 50% 이상 사용하면 3,750달러, 미국이나 자유무역협정 FTA 국가에서 채굴·가공한 핵심광물 비중이 40% 이상이면 3,750달러를 각각 지급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이 없다. 조지아주 서배너에 전기차 생산 공장은 2024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한다. GV70 전기차 모델이 기존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배터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 내연기관차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하락세를 걷고 있다.

보조금은 현대차와 기아에 반등 기회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성과를 내주기를 바라는 눈치지만, 전망은 어둡다. 정상회담을 불과 일주일 남겨놓은 지난 18일, 미국이 현대차와 기아가 빠진 전기차 보조금 대상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협상 의지가 있었다면, 정상회담 이후로 공개 시점을 미뤘을 터다. 명단이 공개된 이상 한국만 예외 적용을 받게 되면 외국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김준형 교수는 “정상회담 앞두고 발표했다가, 한국만 나중에 예외로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며 “미국은 이미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구태여 IRA 조항을 안 바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이 미국 투자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한국 제품을 미국 제품과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단서 조항을 마련해야 했다”며 “기업이 미국 정부를 직접 상대하게 둘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중간에서 협상해야 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강조하는 ‘선의’에 기대다가 뒤통수를 맞은 것”이라며 “경제적 이익에 선의가 어디 있느냐”고 했다.

전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은 명분이 있다. 한미FTA에는 ‘한국산과 미국산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내국민 대우(역내 지위)’ 조항이 있다. IRA에 있어서도 한국 기업 전기차는 각종 조건과 무관하게 보조금 대상이 돼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경제 분야에서는 역내 지위 확보가 유일한 성과 기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멕시코와 캐나다처럼 한국이 역내 지위를 확보하면 IRA 문제는 해결된다”며 “윤 대통령이 역내 지위를 의제로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미FTA뿐 아니라 군사동맹도 있다”며 “역내 지위를 못 받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실무회담을 개최하는 정도는 합의를 봐야 한다”며 “오로지 미국만 바라보는 그 정도를 못 받아낸다면 외교 노선에 대한 상당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FTA 적용을 얘기할 수는 있을 테지만, 할 거면 애초에 했어야지 인제 와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일본 사례를 언급했다. 일본은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지만, IRA상 광물 조건과 관련해 FTA에 준하는 국가로 대우받게 됐다. IRA에는 기존 FTA 체결국뿐 아니라 새 핵심광물 협정을 맺은 나라도 IRA상 FTA 국가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해당 조항이 발표되기 불과 며칠 전 일본은 미국과 협정을 체결했다.

반도체법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위험 요인이다. 미국 설비 투자에 대한 보조금을 받으려면 반도체 생산 시설에 대한 미국 국가안보기관의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 수율과 원가 등 영업기밀 유출이 우려된다. 수익성이 예상보다 높은 경우에는 보조금의 최대 75%를 환수한다. 불황기에 수익을 보전한다는 내용이 없어 보조금 의미가 퇴색됐다. 중국 공장에 대한 추가 투자도 제한된다. 삼성전자는 시안, SK하이닉스는 우시와 다롄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추가 투자가 자유롭지 못하면 공장의 기술·원가 경쟁력 확보가 어려워진다.

반도체법이 얼마나 중요한 의제로 다뤄질지 미지수다. 박 교수는 “대통령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이다. 그는 “접근 허용과 초과이익환수 조항은 반도체법은 한국 기업뿐 아니라 인텔과 TSMC 등 글로벌 기업이 모두 적용받는다”며 “기업들이 백악관을 상대로 협의를 하든 로비를 하든 해서 무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공장 사안이 남는다. 중국 기업 외 현지에서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반도체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거의 유일하다. TSCM도 중국 난징에서 공장이 있지만, 자사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박 교수는 “중국 투자 제한을 풀어야 하는데,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미국의 큰 그림을 볼 때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백악관 스테이트 다이닝룸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하고 있다. 2022.08.17. ⓒ워싱턴=AP


미국에 선물 주고, 실속 없는 성과로 자화자찬 우려

윤 대통령이 빈손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실속이다. 실속 없는 외교 성과의 대명사가 양해각서(MOU)다. 선언적인 수준의 MOU만 잔뜩 들고 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 미국 순방 관련 브리핑에서 “이번 순방 일정 중 양국 기업·기관 간 첨단 산업 공급망 협력을 위한 수십 건의 MOU 체결이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석진 교수는 “MOU는 말 그대로 주제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2000년대 중반에는 MOU를 맺으면 논의가 상당히 진척된 줄 알았지만, 지금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국민도 다 알고 있기에 큰 감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뭐라도 들고 와야 하니까 여러 MOU를 맺고 올 텐데, 마케팅에 지나지 않는다”며 “성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경제수석은 이번 순방 경제외교의 의미를 ‘첨단 기술동맹 강화’로 정리했다. 경제사절단에 참여하는 기업 가운데 미국과 첨단 기술 분야에서 협력 가능산 기업은 극소수 대기업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사절단은 대기업 19개, 중소․중견기업 85개, 경제단체 14개, 공기업 4개 등으로 구성된다.

이항구 원장은 “한미 기술협력 얘기가 나온 건 30년도 더 됐지만,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며 “협력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하는데, 미국과 보조를 맞출 수 있는 기업은 삼성 등 일부 대기업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협력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사례가 얼마나 나올지는 미지수”라며 “덕담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미국에 ‘선물’을 안겨주고 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보인다. 우 교수는 “한국 기업이 미국 투자하겠다는 얘기를 쏟아내고 오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박상인 교수도 “대기업 총수들을 데려가 미국에 투자 약속을 하고 돌아온다면 미국 좋은 일만 하는 것”이라며 “미국에 투자하는 게 자랑이라고 생각하는 건 제국주의적인 사고에 기반한 굴욕이자 조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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