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오는 4월 24일부터 29일까지 미국을 국빈방문한다. 윤 대통령은 26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미정상회담을 하고, 27일엔 미 상하원합동회의 연설에 나선다. 이번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대해 대통령실은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12년 만의 국빈방문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미국 방문 실무를 맡아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그동안 축적돼 온 양 정상 간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의 내용과 폭이 더욱 확장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쏟아내는 이런 장밋빛 전망과 달리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연일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을 도청한 문건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고,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러시아가 직접 나서 우리나라를 향해 경고를 보냈다. 또 윤 대통령은 중국과 대만 간의 ‘양안(兩岸) 갈등’에 대해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를 반대한다고 말해 중국을 자극했다.
특히 도청 문제 등을 두고 우려가 이어지자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한미동맹은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동맹”이라면서 “한미는 이해가 대립하거나 문제가 생겨도 충분히 조정할 수 있는 회복력 있는 가치동맹”이라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과연 윤 대통령과 현 집권세력이 주장하는 대로 한미동맹만 붙들고 있으면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아울러 한미동맹은 우리에게 닥친 각종 사회·경제적 위기와 외교·안보적 위기를 풀어낼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한국안보통상학회 회장인 이해영 한신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는 달러 헤게모니로 유지되던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흔들리는 등 미국이 위기에 빠졌다면서 “미국의 공신국가(일종의 위성국가)인 우리는 미국보다 빨리 망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 18일 이해영 교수를 만나 윤 대통령의 미국 방문 전망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안보 이슈에 대해 들었다.
국빈방문 할 만큼 큰 의제 없어 미국의 IRA법은 한미FTA 협정 위반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국빈방문(state visit)’은 가장 높은 급의 방문형식”이라면서도 “국빈방문을 할 만큼 큰 의제는 없다. 아마 미국으로선 한국의 정권이 바뀐 만큼 윤 대통령을 격려·고무해 주는 의미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을 전후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미국과 관련한 경제 이슈가 있는 한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이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한국이 얻을 수 있는 건 없다는 게 그의 예측이다.
정부는 IRA와 관련해 한국기업이 가지고 있는 우려를 대부분 해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가 지난 17일(현지시각) IRA 세부지침에 따라 최대 7500달러(약 989만원)에 달하는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차종을 공개했는데, 한국은 빠져있었다. 이 교수는 “한국기업뿐 아니라 독일은 물론 일본도 빠졌다. ‘우려를 대부분 해소했다’고 했는데,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 통상 관료가 허위 발언을 했든지 아니면 미국 쪽에서 거짓말 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이 하도 간청을 하니 해주겠다는 식으로 말한 것일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런 미국의 행위가 한미 FTA 규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내국민대우 원칙(National Treatment)’ 위배다. 미국기업하고 외국기업을 차별하면 안 된다. 또 ‘특정 회원국에 부여한 혜택을 다른 회원국에도 부여’하도록 한 ‘최혜국대우 원칙(Most Favoured Nation Treatment)’도 위반이다. ‘보조금을 대가로 특정한 ‘로컬 콘텐츠’를 사용하라고 강요하는 ‘이행요건(performance requirement) 부과 금지’ 규정도 위배한 거다. 이런 장벽을 그냥 스스럼없이 설치하는 것에 대해 우리 정부는 물론 우리 언론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미국이 자국의 산업화를 위해 동맹국의 산업 기반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려는 ‘동맹궁핍화’ 전략의 실체
그렇다면 미국이 한미 FTA를 위배하면서까지 무역 장벽을 만들어 동맹국들의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답은 지난해 외부로 유출된 미국 랜드연구소의 비밀보고서에 잘 담겨 있다고 이 교수는 말한다. 냉전 시기 미국의 외교 및 국방전략의 배후로 알려진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가 지난해 1월 작성한 보고서는 독일과 러시아의 가스관을 차단하고 독일을 러시아 제재에 끌어들여 이를 통해 독일 경제를 약화시키겠다는 계획이 담고 있었다. 이후 독일 자본과 독일의 우수한 두뇌를 미국으로 오게 하고, 아울러 독일 녹색당 소속 정치인들을 이용하겠다는 방안도 담겼다. 그는 이 문서에 나온 방식이 우리에게도 똑같은 원리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중 체제 경쟁 또는 신체제 경쟁이라고 불리는 지금 미국은 금융 국가고 중국은 산업 국가다. 미국이 해외에 나가 있는 혹은 현재 경쟁력이 떨어져 있는 산업을 가장 빨리 따라잡는 방법은 독일·한국·일본 등 동맹이 가지고 있는 산업 기반을 미국으로 갖고 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원하는 재산업화(Re-Industrialisation)는 이들 국가의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을 통해 가능하다는 거다. 지금 미국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 교수는 올해 초 출간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에서 이런 미국의 입장을 ‘동맹궁핍화’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우리나라가 미국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최종 조립은 북미에서 해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어도 통상을 통해 로컬 콘텐츠의 비율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고 어떤 부품을 빼주고 하는 식으로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 한국이 기대”한 것이라며, “기업이 국가와 정부에 기대하고 있는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 반도체 등 여러 문제를 기업 등에선 이번 방미를 계기로 실마리를 잡아보려고 했지만, 회담 전에 벌써 실패하고 가는 방미다. 결국, 경제적으로 기대할 것은 없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런 현실이 한국 경제에 있어선 큰 위기라며 “보통 사안이 아니다. 우리 경제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지금 미국이 한국 경제의 탈산업화가 자국 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이유로 통상 질서와 규범을 다 무시해 버리는데도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위기를 더욱 키우는 건 윤 대통령과 현 정부 외교·안보 참모들의 좁은 시각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세계를 보는 시야가 너무 좁고 짧다. 10cm 자를 가지고 전 세계 길이를 재겠다고 나선 것과 같다”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세계는 지정학적 대전환의 시기다. 지정학적 대전환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첫 번째 인플레이션, 두 번째 성장 감소, 세 번째 무역 감소가 일어난다. 지금도 똑같이 가고 있다. 통상국가로 성장해온 우리나 독일, 특히 수출제일주의로 성장한 우리나라 같은 경우 더욱 치명적이다. 향후 다가올 경제 위기가 ‘펀더멘탈(Fundamental)’을 흔들 거다. 저성장, 고인플레이션, 무역 감소가 고착되면 한국은 살아가기 힘들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보는 눈이 너무 좁고 짧다. 정책툴도 무엇을 써야 할지,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해 못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12년 만의 국빈방문,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70주년 등을 내세우며 이번 한미정상회담으로 커다란 성과가 있을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이 교수는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하는 것 자체가 의제가 없다는 방증”이라며 “현안을 놓고 타결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 것이 없다 보니 억지로 만들어낸 의미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일본과 정상회담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제3자 변제’ 형식으로 처리하기로 합의하는 등 굴욕외교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굴욕외교 논란이 일어난 지 한 달여 만에 한미정상회담을 도청 논란 속에서도 미국엔 아무런 항의조차 하지 못한 채 진행하는 건 왜일까?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이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는 일련의 과정이 미국의 이익에 따른 것이라고 말한다.
한·미·일정보공유동맹은 지소미아 연장선 무기 등 군수 지원과 미국 주도의 한미일 군사동맹 아시아판 나토로 이어질 것
그 대표적인 사안이 바로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것으로 알려진 한·미·일정보공유동맹인 ‘쓰리 아이즈(Three Eyes)’다. ‘쓰리 아이즈’는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서 빌어온 말이다. 이 교수는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이 같이 밀어붙여 온 것이 한미일 3각 동맹이다. 이 가운데 제일 약한 고리가 한일 관계고, 한일 관계가 밀착되지 못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은 역사문제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당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졸속 처리하려고 했고,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이번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를 그렇게 처리하려다 발목이 잡혔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미국이 지금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건 전쟁을 원한다기보다는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구축하려는 의도다. 미국은 이번 윤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서 한미일 3각 동맹으로 가는 경로를 더 단축하고 속도를 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세계 전략에 있어서 당연히 일본이 한국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니 일본은 이런 상황을 기회로 여기고 있다. 마침 윤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니 더 좋은 기회가 됐다. 이렇다 보니 미국과 일본이 굉장히 강하게 압박을 한 것 같다. 과거 위안부 합의할 때도 외교부 당사자들도 몰랐던 일이 벌어졌듯이 이번에도 그랬다”면서 “윤 대통령만을 압박해서 열매를 따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공교롭게도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있다”고 덧붙였다.
김태효 차장은 과거부터 한일 군사협력 강화를 주장해온 인물이다. 김태효 차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수석급)을 지내며 2012년 7월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통칭 지소미아(GSOMIA)) 체결 추진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 논란이 일어 물러난 바 있다.
이 교수는 ‘쓰리 아이즈’가 김태효 차장이 과거 주도했던 지소미아의 연장선이라고 설명한다. “‘쓰리 아이즈’는 그 자체로 본다면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미 하는 것이다. 그것을 확장해 ‘군사물자교환협정(ACSA·악사)’, 한일 양국의 군수품을 상호 지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원래 김태효가 과거부터 주장했던 바다. 악사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병력 문제가 나오고, 그렇게 되면 동맹이 완성되는 것이다. 군수 지원까지 간다면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군이 사용하는 모든 군수품을 쓸 수 있고, 반대로 우리의 군수품을 일본이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군수품엔 총알, 포탄도 포함된다. 그렇게 되면 병력 통합만 남게 된다. 지금의 한미일 3국 관계를 동맹의 수준, 일종의 아시아판 나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으로서는 글로벌 나토와 함께 한 장의 카드를 더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 목표는 미국의 패권 유지다.”
미 국방부 기밀문건에 등장하는 한국 관련 정보는 통신 정보를 도·감청해 만든 코민트(COMINT)가 명백하다
이런 가운데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불거진 미 국방부 기밀문건 유출 파문은 우리의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문건을 통해 미국이 한국 정부를 도·감청해온 정황이 드러났지만, 미국은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고,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까지 한미동맹을 이야기하며 미국을 두둔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이번에 유출된 문건에 등장하는 내용이 대부분 일급기밀이고, 우리 정부를 도·감청해 수집한 정보가 확실하다고 말한다.
“특히 이번 문건에 등장하는 이문희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나눈 대화와 관련한 정보는 ‘탑 시크릿’이다. 해당 정보를 문서는 TS(Top Secret, 일급 기밀)이고 ‘SI-G’라고 표기하고 있다. 우리 언론에선 이를 신호정보를 뜻하는 시긴트(SIGINT, Signal Intelligence)라고 말하고 있지만, 잘못된 거다. SI-G는 SCI(Sensitive Compartmented Information) 즉 그 첩보의 출처, 방법, 분석기법과 관련해 중앙정보국장에 의해 인가된 공식통제기관 SCIF(특수정보구역) 내에서만 취급되어야 하는 정보라는 말이고, G는 감마(Gamma)라는 특수정보 분류 기호다. 결국, SI-G는 통신 도·감청을 통해 획득된 ‘특수정보 감마(SI-Gamma)’라는 거다. 이는 명백히 코민트(COMINT, Communications Intelligence)다. 전화기 도청, 이메일 해킹 등 통신 정보를 도·감청해 만든 데이터라는 말이다.”
미국은 그동안 동맹국 핵심 인사를 계속 도·감청해왔다. 지난 2013년 CIA에서 일했던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한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우방국 정상들을 감시해왔다는 사실을 담은 문건이 폭로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를 미국이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독일이 거세게 항의했고,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도청을 간접 시인한 뒤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 정부를 향해서는 2013년 당시는 물론 구체적 도청 정황이 드러난 지금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우리가 사과를 요구하지도 않는데,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사과만으로 될 문제도 아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고민할 지점은 국가안보실장을 도청하는데 대통령이라고 안 하겠냐는 것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도청하는데 한국 대통령이라고 안 하겠나.”
미국의 도청은 미국이 우리의 전략을 다 알고 정상회담에 대응한다는 것
우리 정부는 물론 대통령까지 포함해 미국이 도·감청했을 수 있다는 의혹은 단순히 정상회담을 앞두고 상호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을 넘어선 심각한 외교적 문제다. 상대의 요구와 우리의 요구를 조율해 양국 합의를 만들어야 하는 ‘정상회담’의 성격을 고려할 때 우리가 가진 패를 모두 공개한 채 카드게임에 임하는 셈이다. 이 교수는 “우리의 전략을 미국이 이미 다 알고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신뢰를 깼지만, 우리 정부가 내놓은 입장은 미국을 믿고 신뢰한다는 이야기뿐이다. 한미동맹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한국은 미국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섬기는 신도와 같은 모습이다. 이 교수는 “과거 유럽에 있었던 신성동맹과 비슷하다. 때문에,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전 지구에서 미국을 향한 진리에 가까운, 가장 신성의 수준이 높은 나라다. 미국은 신(神)이기 때문에 여당은 물론 야당도 쉽게 공세를 펴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정상국가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의 외교·안보 전략이 무엇인지 물으며 “외교·안보와 관련한 핵심 전략이나 목표는 무엇인지 나온 게 없고, 이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 우리 외교가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정부가 강조하는 한미동맹도 목표나 방향이 아닌 잘해야 수단일 뿐”이라며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우리의 핵심적인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한국 외교가 지금까지 헛발질해왔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유출된 미 국방부 기밀문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의 대리전임을 보여줘 우크라이나군의 봄철 총공세는 자살행위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 유출된 미 국방부 기밀문건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문건은 이번 전쟁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 교수는 “군대의 편성, 무기 공급 등 문서에 등장하는 모든 내용이 미 국방부의 계획대로다. 그래서 이 전쟁은 대리전쟁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부대 배치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하는데, 이 교수는 이 부분을 유심히 봐야 한다고 말한다. “군대를 새로 편성하는 9개 여단과 기존에 있는 3개 여단으로 구성한다고 되어 있다. 9개 신편 여단은 나토가 훈련한 여단이고, 3개 여단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기존여단이다. 이 12개 여단으로 이번 봄철 총공세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근데, 구체적인 인원이나 무장 등을 살펴보면 형편없다. 기존의 여단 규모의 절반에 불과한 2천 명이 조금 넘는 병력을 여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편성되는 군인들이 신병이다. 몇 개월 단기 속성 훈련을 거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모아서 공격에 나서는 것이다. 가서 죽으라는 것이다. 전쟁 그 자체가 도덕적이지 않지만, 그와 별개로 이런 작전은 굉장히 파렴치한 거다. 대리전쟁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신편 9개 여단은 여러 나라가 지원한 탱크와 무기를 사용하고 있어, 전력의 운용과 유지·보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또 대공 방어를 위해 필요한 포탄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번에 공개된 미 국방부 기밀문건을 통해 밝혀진 것처럼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에 대공 방어를 위해 필요한 155mm 포탄을 미국을 통해 우회 지원한 것도 이런 우크라이나의 현실 때문이다.
또, 미 국방부 기밀문건은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전쟁과 관련한 전사자 숫자 등 통계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크라이나군이 부풀리고, 또는 축소한 정보에 기초한 자료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총공세에 나선다면 자살행위가 될 것이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흔히 우리 군사학적으로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상대방을 공격할 때 3배 이상 우세한 병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크라이나군은 이런 규모에 훨씬 못 미친다. 더구나 러시아는 이 공격을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 전략은 쳐들어오는 군대를 화망(火網)에 가둬 섬멸한 뒤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상황이지만 미국은 이 계획을 실행할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더해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구 소련제 대공미사일에 의존했던 방공망이 무너지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이 교수는 “우크라이나군이 발사하는 방공포탄이 하루 5천에서 6천 발에 이른다. 우리나라가 지원한 50만 발이면 길어야 100일분인데, 이마저도 상황이 좋을 때 이야기이고, 전황이 어려워지면, 이 기간은 더 짧아질 거다. 지금도 러시아는 하루 1만에서 2만 발 정도를 사용한다”면서 “그동안 대공포 때문에 소극적으로 움직이던 러시아 공군이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연일 자극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 러시아와 대 중국 무역에 악영향 한반도를 전쟁 위험에 빠뜨릴 수도
이런 현실을 생각할 때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을 시도하고 한미동맹만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는 우려스럽다. 윤 대통령은 19일(한국시간) 공개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직접 했다. 윤 대통령은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과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과 같은 국제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인도주의적 지원이나 경제적 지원만을 고집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 가능성을 언급했고,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 간 문제가 아니라 북한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선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중국의 양안 문제를 거론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난 20일과 21일 올린 글을 통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 교수는 “러 외교부는 윤석열의 이번 조치를 노골적 반러 적대행위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 한러관계에 ‘극단적인 부정적 영향’을 예고했다. 최악은 국교 단절이다. 이 경우 수백 개의 러 진출 기업의 기투자분은 그냥 잊는 게 좋다. 그리고 대러교역에서 가장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원유, 가스도 잊어야 한다(전체 수입에서 6%대)”고 경고했다.
이어서 중국의 양안문제를 언급한 발언에 대해선 이번에 폭로된 미 국방부 문서 등을 언급하며 한반도에 직접적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대만해협 ‘유사시’ 한반도 서해안은 즉시 전쟁터가 된다는 말이다. 미국은 평택과 군산을 대중국 최핵심 전진기지화했고 이에 대응 중국 역시 -사실상 불법인- 초음속 드론을 통해 ISR 정보감시정찰하거나 할 것이다. 주로 장거리 미사일을 통한 교전시 서해안이 불바다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군다나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수도권 서부는 과밀 난개발상태다. 대만해협문제는 따라서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바로 우리 문제라는 말이다. 미중 군사적 충돌이 곧바로 우리 서해안이 전장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때, 우리가 나서서 이 문제에 개입하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냉전 종식 이후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 등 과거 공산권으로 분류됐던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하는 이른바 ‘북방정책’에 힘을 쏟았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흑자국이 되기도 했고, 구소련이 북한의 우방이었던 냉전 시기와 달리 30년 가까이 북한보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윤석열 정부의 등장과 함께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이 교수는 윤석열 정부가 미국만을 고집하며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는 건 “여전히 러시아가 공산국가이던 냉전 시대에 인식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세계에 대한 인식이 냉전 시대에 머물기 때문에 윤 정부가 내세우는 국익도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강제징용노동자 문제를 윤석열 정부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과연 국익인가? 우크라이나에 50만 발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량의 포탄을 지원하는 게 국익인가?”라고 되물었다.
당분간 ‘친미 중립’을 하라 한국처럼 세계에서 제일 친미적인 나라가 그걸 버릴 수 없다면 다만 우리의 주요 국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중립지대 확장해야
또한, 윤 대통령이 지난 1월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이란이 아랍에미리트의 적”이라고 발언하고, 대선후보 시절부터 “북한은 주적”이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온 것도 냉전적 사고로부터 비롯된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냉전적 사고로는 절대 우리의 국익을 지킬 수 없다고 이 교수는 재차 강조했다.
“매우 비극적이지만 서아시아(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불안해지면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반대로 서아시아에 평화가 오면 한반도는 다시 불안해진다. 이렇게 서아시아와 한반도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서아시아에선 평화가 오고 있다. 그 배경엔 중국과 러시아라는 강대국이 보장해주는 부분도 있지만, 각국이 자기들의 국익을 찾으려 나선 이유도 있다. 시리아가 이란과 화해하고, 아랍에미리트와도 화해했다. 이 지역의 두 맹주인 이란과 사우디가 손을 잡고 둘 다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등 신흥경제 5개국)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서아시아에서는 이스라엘과 미국만 고립된다.”
이렇게 서아시아에 평화의 바람이 불고, 지난해부터 이란과 아랍에미리트가 협상을 통해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이란이 아랍에미리트의 적”이라는 발언은 중동의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서아시아 정세가 안정화되면 미국 입장에선 끊임없이 북을 자극해서 어쨌든 반중 반러를 위한 한미일 3각 동맹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지금 이미 그러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방미도 그런 과정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제가 책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에서 당분간 ‘친미 중립’을 하라고 말한 거다. 한국처럼 세계에서 제일 친미적인 나라가 그걸 버릴 수 없다면 다만 우리나라의 주요 국익이 걸린 사안에 대해서는 중립지대를 확장하자는 말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행보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발간된 국방백서는 북한을 적이라 명기했고, 통일백서는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라고 표기하는 등 여전히 관성대로 움직이고 있다. 더구나 현 상황에서 북이 핵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레버리지(Leverage)가 한국은 물론 미국도 없다면서 윤 대통령이 말하는 ‘북한 비핵화’는 공허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이번 중러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비핵화를 재확인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능한지는 다른 문제다. 북한에게 비핵화는 지나간 이야기다. 비핵화는 원래 북한이 미국과 협상할 때 핵하고 경제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변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본다면 핵은 갖고 경제는 러시아나 중국으로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거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함께 하던지 러시아의 동진 정책에 함께 하던지 문제를 풀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조건에서 어떤 레버리지를 가지고 북의 비핵화를 도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의 경제적 힘이 약화되면서 동력도 떨어졌다. 지금 미국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주는 건 없이 그냥 포기하라는 건데 그게 가능하겠나. 시장 논리로 보더라도 핵이 얼마나 비싼데 북이 대가 없이 내려놓겠나.”
미국의 패권주의 지탱하던 달러 헤게모니 붕괴 미국은 흔들리는 데 냉전시대 ‘한미동맹’만 고집하는 윤석열 정부
이 교수가 이렇게 전망하는 근거는 미국의 달러 헤게모니 붕괴에 있다. 한 해 8천 억 달러에 이르는 국방비로 전 세계에 800개 넘는 군사 기지를 유지하는 미국의 정치·사회적 힘의 근간인 달러가 가진 힘이 무너지고 있음은 미국의 패권이 종말을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을 유지한 힘은 달러 리사이클링(Dollar Recycling) 구조다. 미국에 물건을 판 국가들은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가지고 미국 재무부에서 발행한 채권을 산다. 그러면 미국 밖으로 나간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들어온다. 그 돈으로 힘을 유지했다. 그러나 달러 리사이클링에 단절이 생기면 8천 억 달러의 국방비를 조달하기 힘들어질 수 있고, 해외 군사기지 유지도 어려워지는 딜레마에 미국이 빠지게 된다. 그런 조건인데 북한이 비핵화하면 뭘 줄 수 있을까? 오죽하면 ‘동맹 궁핍화’를 통해 한국이 가진 거까지 가져가려고 하겠나.”
미국의 힘은 예전 같지 않지만, 미국을 향한 우리나라의 믿음은 여전하다. ‘미국·서방국가와의 협력 강화’, ‘자유진영 연대’, ‘가치동맹’ 등 과거의 언어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 교수는 강자와 약자 사이 동맹은 늘 약자의 손해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약한 나라와 강한 나라가 동맹을 맺으면 항상 약한 나라가 손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현재 한미 관계가 바로 그렇다. 세상에 제일 믿을 수 없는 군대가 첫 번째가 용병이고, 두 번째 지원군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조차도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자주 국방’을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미국이 약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중심의 ‘올인 외교’를 고집하는 것은 미국의 위성국가에 가까운 우리에겐 더 큰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지적한다. “이렇게 가다간 우리는 미국보다 빨리 망할 수 있다. 미국은 우리를 벗겨 먹을 만큼 벗겨 먹다가 버리면 되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뭐 좋다고 우리 먼저 챙기고 자기들이 나중에 죽겠나.”
복합 위기 돌파할 리더십이 지지율 30% 윤석열 정부엔 없다 한국의 위기·공황 혹은 파국은 천천히 하지만 갑자기 올 거다”
이 교수는 지금이 지정학적 대전환의 시기라고 말한다. 성장은 안 되고, 무역량은 줄어들고,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계속 오르고, 사회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그는 예상한다. 여기에 더해 군사적 위기가 겹치며 우리에겐 복합 위기가 닥치고 있다고 그는 경고한다. 하지만, 이런 복합 위기에 대응할 힘도, 리더십도 윤석열 정부에선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더 큰 위기라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정책 조합을 통해 복합적으로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 하는 데 윤석열 정부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리더십이 무너지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지지율은 30%대에 머물고 있다. 지금 상황에선 잘해야 무너지는 속도를 늦추는 수준 밖에 안 될 거다. 한국 같은 통상국가에서 수출이 막히기 시작하면 성장이 막힌다는 이야기고, 성장이 막히면 일자리가 없어진다. 사회적 불안이 증대된다. 사회적으로 불안하면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 국경지대에 계속 분란을 일으켜 권력이나 정권의 교체를 시도하는 ‘칼라 레볼루션(Color Revolution, 색깔 혁명)’을 시도해왔는데, 자칫하면 우리나라에 ‘역 칼라 레볼루션’이 일어나게 생겼다.”
정부가 하지 못한다면 민주당 등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교수는 “현재 민주당은 그나마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자고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해왔던 살상무기 수출을 안 하겠다는 정도만 붙들고 있다. 그래서 세계가 급변하는 지금 뭘 해보겠다는 의지와 전략이 없다”고 꼬집었다.
결국, 진보세력과 시민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끝으로 이 교수는 급변하는 세계와 다가올 파국을 “처음에는 천천히 다가오다 갑자기 나타난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의 표현을 통해 설명하면서 진보세력과 시민사회가 제대로 알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위기·공황 혹은 파국도 천천히 하지만 갑자기 올 거다. 여기에 대해서 경제적으로는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별로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선 군사적으로도 함부로 나대면 안 된다. 지금은 결코 그런 국면이 아니다. 그리고, 군사 기술적으로도 미국이 러시아·중국에 앞선다고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위기의 규모만큼 우리 대응의 크기도 커져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는 게 위기를 더 가속하고 있다. 그게 제일 심각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