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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다 죽게 생겼다’, 한미정상회담 리스크 현실화하나

[길 잃은 외교와 윤 대통령 방미] 미국에서 절대 해선 안 되는 일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9월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2022.09.22.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두고, 이명박 정부 이후 첫 국빈 방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다만 윤 대통령이 미국에서 어떤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느냐 하는 건 사실 ‘형식’에 관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고, 그 자체가 어떤 국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국가든 외교 행위의 가장 큰 목적은 ‘국익’이다. 상대 국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그로 인해 우리가 얻게 될 이익은 무엇일지에 관한 기초적인 구상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방미를 통해 얻고자 하는 이익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이거다’ 할 만한 게 마땅해 보이진 않는다. 단적으로 경제 현안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에서 한국 기업에 불리한 요소를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쟁점인데, 이미 미국은 윤 대통령 방미 이전에 한국을 포함한 외국 기업이 빠진 전기차 보조금 대상을 확정해버렸고, 반도체법과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 우리에게 양보를 할지 난망한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건 ‘향후에 한국 기업의 피해를 줄 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수준의 립서비스나 당장 실효성 없는 각종 양해각서(MOU) 정도다.

우리로서는 당장 경제적으로 미국과 이해관계가 직접 맞닿아있는 IRA와 반도체법과 관련해 당장 얻어올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면, 그 대신 오히려 외교·안보 영역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접근을 고려해볼 수 있다.

외교·안보 영역에서의 리스크는 중국, 러시아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말한다. 현시점에서 두 국가는 미국과 가장 적대적임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이익과는 밀접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우리와 경제적으로 교역 규모가 매우 큰 것은 물론, 우리와의 관계에 따라 북한을 지렛대 삼아 안보 영역에서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휘둘리기 쉬운 국가 중 하나인 우리나라가 대중·대러 외교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운신의 폭을 확보한 상태에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들 두 나라로부터 국익이 침해될 소지가 큰 사안에 있어서 미국의 입김에서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향후 우리 외교에서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방미와 오는 26일(현지시간) 오후 열리게 될 한미정상회담은 윤 대통령의 임기 동안 가장 중요한 외교 일정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정상회담 앞두고 높아지는 위기감, 왜?


미국과 중국·러시아(물론 러시아와 중국의 이익이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다)이 갈등하는 현재의 국제 정세 속에서 미국의 대중·대러 정책은 이들 국가 속에 끼어 있는 림랜드(Rimland), 즉 대륙연안국가인 우리나라의 대중·대러 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자칫 삐걱한다면, 국익에 심각한 타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트럼프 정부 이후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한국과 일본을 한데 묶어서 ‘아시아판 나토’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정리된다. 당연히 미국으로선 한국이 이러한 자신들의 움직임에 완전히 편승해야 이 구상을 완성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 6월 마드리드 이페마(IFEMA)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2.06.29 ⓒ뉴시스

경제적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심화되고,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전쟁으로 가시화된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받는 ‘아시아판 나토’에 대한 압력이 과거에 비해 더욱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분명한 건,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선택지도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만 믿고 가겠다’고 하는 건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서 고려되는 건 온전히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다. 한국이 이러한 미국의 이익에 아무런 저항 없이 편승했을 때의 결과는 과거 냉전 시대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냉전 시대의 경우 한시도 전쟁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때가 없긴 했다.

러시아와 미국을 위시한 나토 국가들 사이 완충지대였던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편입하려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 데서 알 수 있듯, 동북아의 완충지대인 한반도에서 한국이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묶인다면 동북아 지역은 종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긴장 상황에 놓이게 된다. 북한에서 나아가 중국과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적대 관계가 되면서, 우리가 앞장서서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용병을 자처해 대리전을 하는 꼴이 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한평정책연구소 왕선택 글로벌외교센터장은 최근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과의 대담에서 “미국의 정책에 편승해서 같이 가는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정책에 의한) 부작용이나 결함 때문에 오는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연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결과물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과 그간 외교 행보를 종합해본다면 매우 비관적이다.

최근 보여준 대일 항복 외교가 전초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과 엮여 있던 대부분의 현안에서 사실상 우리의 이익을 모두 포기하다시피 한 채 일본과의 경색된 관계를 푸는 데 주력했다. 지난달 한일정상회담을 전후로 강제동원과 같은 과거사 문제는 물론, 강제동원 판결에 따른 일본의 보복성 조치와 관련해 아무런 조건 없이 일본에 양보하는 결과물을 가져왔다.

이는 일본 친화적인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의 태도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이해관계와 맞닿아있다. 미국으로선 한국과 일본을 ‘아시아판 나토’로 묶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화해하는 것이 선결 과제였다. 일본은 미국의 그러한 의도를 지렛대 삼아 한국의 일방적 양보를 이끌어냈다면,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의도에 조건 없이 편승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최대한 긍적적으로 해석해본다면, 일본과의 관계를 우리가 양보했으니 동북아 지역에서 우리가 안보상 문제로 받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의 딜을 해볼 수 있다는 전망을 해볼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일 관계를 푸는 게 한·미·일 삼각동맹의 선결 과제라고 할 수 있었는데, 다 된 밥상을 굳이 엎거나 속도 조절을 할 만한 이유가 없다.

오히려 윤 대통령이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는 확장억제, 즉 미국의 핵우산 강화(현실성 및 실효성 여부와 무관한)를 명목으로 한 각종 청구서만 받아안고 돌아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방미 전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한미정상회담 기대 성과를 언급한 데서 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20일 한미정상회담의 첫 번째 기대 성과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공고히 하고, 확장억제가 구체적으로 작동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합방위든 확장억제 작동이든,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에 ‘주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이 보여준 동맹국 외교 경험에 근거한다면, 당연히 이에 대한 청구서를 윤 대통령에게 내미는 것이 순리다.

그 예상되는 청구서는 한·미·일로 묶이는 ‘아시아판 나토’만이 아니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의 일환인 인도·태평양 전략과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 제공 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수준의 요구를 할지, 나아가 이와 관련한 내용이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어느 수준으로 적시될지도 관건이다.

최근 유출된 미국 정보기관 문건에서 대통령실 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이 우크라이나에 폴란드를 통한 무기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이 확인됐고,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함에 따라 우리 정부는 러시아 정부의 공개적인 반발에 직면한 상황이다. 러시아는 윤 대통령 발언이 현실화될 것을 전제로 북한에 대한 군사적 협력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아울러 중국이 극도로 민감한 대만 문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이 “힘에 의한 대만해협의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식의 대중 적대시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중국 측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역대 보수정부들과 비교해도 무모한 외교 행보
다른 나라들은 ‘줄서기’ 아닌 국익 중심 외교
한미정상회담에서 우리가 확실히 해야 할 건 뭐?


전문가들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자칫 우리나라가 미국의 대중·대러 정책에 일방적으로 편승해서 중국과 러시아의 민감한 ‘지뢰’를 건드려 치명적인 외교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김철수 기자

이전 정부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외교광장 이사장은 25일 ‘민중의소리’와 통화에서 “한국은 핵대핵, 강대강 구도에서 미국에 어떤 보장을 해달라는 것이고, 결국 확장억제에서 지금 이상의, 전략자산 전개를 넘어 미국의 핵공격에 우리도 참여하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그러면 거기에 따르는 대가가 우크라이나(무기 지원), 대만 문제 이런 것 아니겠나. 만약에라도 공동성명에 대만 문제처럼 러시아 문제가 언급되면 진짜 큰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왕선택 센터장도 “한국은 해양국가이기도 하고 대륙국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외교 정책은 해양국가들과의 협력도 해야 함과 동시에 중국, 러시아와 같은 대륙국가들과도 협력해야 한다”며 “그래서 이번 국빈방문에서 (미국이 내세우는)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한 칸 더 가게 되면 대륙국가의 성격도 지니는 우리의 공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게 된다. 해양국가 전략에만 보조를 맞추면 큰일 날 수 있다”고 했다.

현재까지 보여준 윤석열 정부의 대중·대러 외교 행보는 역대 보수정부와 비교해봐도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기존 4강 외교의 근간을 흔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북방외교의 문을 열어젖힌 노태우 정부 이후 우리의 4강 외교는 중국·러시아와의 이념적 공감대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님에도, 유난히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보편적 가치’ 등을 내세워 이들 국가와 선을 긋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국내 정치에서는 ‘이념’을 강하게 내세우면서도, 국제관계에서는 실리를 추구하는 데 집중했다. 박근혜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켜보려다가 사드 배치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가 미국의 압력에 못이겨 입장을 번복을 한 뒤, 경제 보복을 받는 과오를 범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안미경중(安美經中)과 같은 실용 외교였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무기 지원 요청 및 대만 문제에 대한 강도 높은 입장 표명 등 대외적 요구에 직면했으나, 한미동맹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관리하는 고도의 외교적 노력을 병행했다.

김준형 이사장은 “과거 보수정부에서는 적어도 중국이나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는 안 만들었다. 북방외교를 시작한 것도 보수정부였다”며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이 정도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국가들과의 통상 교역이 활발했고,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중, 미-러 갈등 속에서 다른 국가들의 외교 행태, 그리고 서방의 시각과 차이를 보이는 국제사회에서의 중국과 러시아의 실질적인 위상 등을 차분하게 짚어볼 필요도 있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있어서 ‘쿼드’로 묶여 있는 인도가 전통적인 ‘비동맹’ 원칙을 고수하면서 러시아 원유를 수입하고 있고, 미국과 가까운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 러시아 등과도 등거리 외교를 벌이고 있다. 한국보다 훨씬 경제 규모가 작은 싱가폴은 미국의 동맹국이면서도 중국과 매우 밀접한 경제협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 오랜 동맹국인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 12일 중국 방문을 마친 뒤 “우리는 미국의 동맹이지만 스스로 결정하는 동맹이기도 하다”, “최악의 상황은 유럽이 추종자가 돼 미국의 장단과 중국의 과잉 대응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등의 발언을 한 것도 윤 대통령의 행보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또한 현실에서 미국의 전략과 위상이 중국과 러시아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느냐 하는 점에서도 우리의 노선이 신중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왕 센터장은 “모든 나라가 미국의 질서에 순응한다면 러시아가 다른 나라에 전쟁을 걸어서도 안 된다. 1년이 지나서도 푸틴이 건재하지 않느냐. 인도가 미국과 쿼드로 묶여 있으면서도 러시아 경제 제재에 협력을 안 한다. 사우디도 마찬가지고, 브라질과 남아공은 중국과 협력하고 있다”며 “이것이 미국의 패권에 균열이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물로 인해 적대국을 만들지 않고, 국익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김 이사장은 “공동선언문에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이야기가 나오면 안 되고, 대만 문제에 있어서도 ‘무력에 의한 현상변경을 반대한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 또한 한·미·일 동맹이든 협력이든 군사·안보적으로 ‘한·미·일’이 묶이는 내용이 들어가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고 관련한 내용에 있어서 수위를 낮추든지 빼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했다.

왕 센터장도 “외교는 다층적이다. 한미가 협력하는 방이 있고, 한중·한러가 협력하는 방이 있다. 층이 달라서 서로가 간섭하거나 하면 안 된다”며 “우리가 해륙국이라는 지정학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동맹이지만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걸 미국에 납득시키면 된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다. 미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층위가 있다면 미국에 그런 문제점을 계속 설득하는 것도 동맹국의 역할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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