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전 기대되는 성과로 가장 먼저 내세웠던 건 이른바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확장억제’에 관한 결과물이었다.
윤 대통령은 19일 공개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강력한 핵 공격에 대응하는 측면에서 나토가 가진 것보다 더 강력한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미국과 정보공유와 공동 비상사태 기획, 공동실행을 강화하기 위한 양자 조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지난 13일(현지시간) 의제 및 일정 조율차 미국을 사전 방문했을 당시 취재진과 만나 확장억제와 관련해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을 묻는 질문에 “핵억지 문제인데 (핵) 공동 기획, 공동 실행, 모의 연습이라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고, 다 중요한 부분”이라며 “한미 간에 이걸 총괄해서 정말로 국민들 피부에 와닿고 체감할 수 있는 확장억제 그림이 그려졌구나 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지난 20일 방미 전 브리핑에서 국빈 방미 기대 성과 중 가장 첫 번째로 “양국 간 확장억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작동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의 발언과 고위 당국자들의 말들을 종합하면, 때 마치 미국이 보유한 핵 전력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우리도 개입해 일정 수준의 의결권 또는 재량을 갖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도출된 결과물을 보면, 애초 이 같은 구상은 사실상 미국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음은 물론,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는 점이 확인된다.
한미 정상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에서 거론된 확장억제의 전제는 ▲한국은 미국 핵억제에 대한 지속적 의존의 중요성, 필요성 및 이점을 인식한다 ▲윤 대통령은 국제비확산체제의 초석인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한미 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 준수를 재확인했다는 것이다.
양국이 합의한 이른바 ‘강화된 확장억제’의 실제 내용은 ▲핵협의그룹(NGC) 설립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대한 한국 재래식 지원의 공동실행 및 기획이 가능하도록 협력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포함 확장억제에 관한 정부 간 상설협의체 강화 ▲북핵 공격시 미국의 즉각적, 압도적, 결정적 대응 약속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한반도 전개 확대 등이다.
이들 내용은 윤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이 공언했던 ‘나토 이상의 대응’, ‘핵 공동기획·실행’과는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미국은 ‘NPT상 의무’, ‘한미 원자력협정 준수’ 등의 표현을 워싱턴 선언에 명기해, 한국 정부가 핵 문제와 관련해 선을 넘는 요구를 하거나 욕심을 내선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내 보수진영에서 거론되는 ‘나토식 핵공유’, ‘전술핵무기 재배치’ 등은 핵확산의 일환인데, ‘그런 이야기는 앞으로 꺼내지 말라’는 것이 이번에 확인된 미국의 확고한 입장이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26일(현지시간)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회견 자리에서 “국군 통수권자로서 미국에서는 제가 핵 전력 무기에 대한 사용 권한을 갖게 된다”면서 “하지만 다른 여러 단계의 모든 노력에 있어서는 우리 동맹국과 파트너들과 함께 상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말하는 ‘여러 단계의 노력’은 단순히 동맹국들과의 ‘상의’ 대상이며, 그 노력이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분명한 건 ‘핵 사용 권한은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도 미국의 이러한 입장을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파악된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방미 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나토식 핵공유’와 관련해 “지금 한미가 마련하려고 하는 것은 나토처럼 한국 땅에 핵무기를 갖다 놓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협의의 깊이와 협력의 폭은 훨씬 더 깊고 강력해야만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 정부가 가장 성과로 내세우는 ‘강화된 확장억제’ 결과물은 ‘핵협의그룹(NCG)’을 설립한다는 부분이다. NCG는 ‘Nuclear Consultation Group’의 약자로, 나토의 핵기획그룹인 NPG(Nuclear Planning Group)’을 모델로 한다.
그렇다면 NCG가 NPG보다 강력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과연 그럴까?
‘Consultation’은 ‘상의’, ‘자문’ 등의 의미를, ‘Planning’은 ‘계획’, ‘입안’의 뜻을 지닌다. 물론 후자가 훨씬 큰 공신력을 갖는다.
한국안보통상학회 회장인 이해영 한신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NCG는 (NPG에서 Planning에 해당하는) ‘기획’이 아닌 말 그대로 ‘협의(Consultation)’가 목적이며, 그것도 국방장관급이 아닌 일개 국장급이 담당하는, 나아가 협의에 불응시 상응절차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래서 북핵보다는 사실상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억제하는 용도라고 보는 게 좀 더 사실에 부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때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외교광장 이사장(한동대 교수)도 “보수 쪽 반응이 궁금하다. (김태효 차장 등 정부 당국자들은 방미 전) 거의 핵공유 이상을 할 것이라고 뻥을 쳤다”며 “이건 핵 공유도 아닐뿐더러 훨씬 더 낮은 지위”라고 꼬집었다.
물론 지금보다 더 물리적으로 강력한 북핵 대응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근거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군사적 대응 수위를 높이는 식의 접근으로는 북핵 문제를 풀기 어렵다는 경험이 축적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자극해 북핵에 대응하는 비현실적인 강대강 대응을 홍보하는 식으로 국내 정치를 해놓고, 결과적으로는 그런 공언조차 허구로 드러나는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김 이사장은 “힘에 의한 억지라는 것, 힘에 의한 평화라는 게 이렇게 한계가 있는 것”이라며 “한쪽에서 북한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협의하면서 관리하는 부분을 완전히 닫아놓고, 이쪽(강경 대응)만 나가다가 오히려 미국한테 ‘너 하지 마’라는 소리를 듣고 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확장억제, 즉 미국의 핵우산은 우리가 하지 말라고 해도 미국이 해온 것이다. 박정희가 제거됨으로써 이 문제는 완전히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가 최근 지정학적 위기 국면에서 재활성화되어 수면 위로 올라온 문제”라며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 한국사회는 합의된 공론이 부족하다. 이 국면에서 윤석열 정권은 우리의 핵심이익과 주요이익에 대한 아무런 고려와 숙고 없이 미국에 외교적 백지수표를 끊어주고 의기양양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