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노동절, 노동조합에 대한 악마화를 멈춰라

이 칼럼이 발행되는 5월 1일의 정식 명칭은 근로자의 날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전 세계적으로 노동절로 지정된 이 5월 1일이 과거에는 한국에서 휴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승만 정권이 노동절을 두려워한 나머지 5월 1일을 건너뛰고 대한노총 창립일이었던 3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제정한 탓이다.

그러다가 김영삼 정부, 속칭 문민정부 때인 1994년에 5월 1일이 복원됐다. 그런데 복원 당시에 이날의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이날의 명칭이 노동절이니 우리도 노동절이라 부르면 간단할 일을 김영삼 정권은 굳이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이날을 불렀다. 왜? 그럴 거면 노동부도 근로부로 부르지 그랬냐?

근로(勤勞)라는 말은 ‘열심히 노동한다’ 혹은 ‘근면하게 노동한다’라는 뜻이다. 이 말 속에는 ‘근면이 노동자의 덕목이다’라는 매우 치욕적인 이데올로기가 숨어있다. 노동자가 머슴이냐? 태어날 때부터 근면을 숙명으로 여기고 살게!

우리는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자라고 당당히 스스로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참고로 세계에서 한자로 노동절을 표시하는 나라 중에 노동절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지금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노동조합에 대한 악마화

대한민국은 노조를 악마화하는 일에 유난히 지랄 맞은 나라 중 하나다. 노조가 뭐만 한다고 하면 개XX, 소XX 등 쌍욕이 나온다. 이 악마화의 선봉에는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카르텔이 서 있다.

악마화에 관한 대표적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2009년 12월 철도노조가 파업을 벌인 일이 있었다. 그런데 12월 4일 『중앙일보』가 1면 톱으로 충격적인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 제목은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였다.

기사의 소제목은 『20분 늦게 도착, 서울대 면접 볼 기회 잃은 소래고 1등 이 모 군』, 『교장의 분노, “이 군 인생에 대한 손배소송 내고 싶다”』, 『부모의 한탄, “자가용도 못 태워준 못 가진 부모가 죄인”』 등이었다. 기사 첫 문단은 『“그날 아침 열차만 멈추지 않았더라면….” 경기도 시흥시 소재 고등학교 3학년 이 모 군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렇게 한탄했다. 그는 철도파업으로 대학 진학의 꿈을 접어야 할 위기에 몰렸다』라고 시작됐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어떤 내용인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 학생은 서울대학교 면접을 보기 위해 오전 7시에 소사역에서 전철을 기다렸다. 그런데 철도파업으로 기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면접에 20분 늦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 학생은 면접을 보지 못했고, 이렇게 또 한 청춘의 꿈이 사라졌다. 이 모든 게 저 사악한 철도노동자들의 파업 탓이다.

『중앙일보』는 이 기사뿐 아니라 ‘파업으로 멈춘 이 군의 꿈, 철도가 책임져야’, ‘파업으로 멈춘 서울대 진학, 이 군 대학에 보내자는 각계 성원 이어져’, ‘철도 파업으로 대학 꿈 멈춘 이 군 구제 방법 없나요?’ 등의 기사를 퍼붓다시피 쏟아냈다.

사회적 파장도 만만치 않았다. 어떤 장학재단은 “이 군이 대학에 진학하면 4년 장학금을 대겠다”고 나섰고, 철도공사 허준영 사장은 “열차 운행 차질로 한 젊은이의 인생이 바뀔 위기에 놓인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철도 파업으로 멈춘 이 군의 꿈을 위해 국민의 철도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변죽을 올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지난해 5월 1일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2022년 세계 노동절 대회'를 열었다. ⓒ뉴스1

심지어 허 사장은 철도공사 임원들을 독려(!)해 이 군의 입학금과 등록금을 마련하는 모금운동까지 펼쳤다. 실제 이 청년은 며칠 뒤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는데, 연세대가 이 청년에게 위기극복장학금을 주기도 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노조는 악마다’라는 것이었다.

철도파업이 앗아간 꿈, 진실은?

그런데 이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철도노조가 소사역 폐쇄회로TV를 확인했더니 이 청년이 소사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전 7시 20분이었다. 『중앙일보』의 주장(“7시 도착해서 20분 넘게 기다리다 지각했다”)은 시작부터 사실이 아니다.

게다가 당시 출근시간에는 필수유지 업무를 담당할 인력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현장에 있었다. 열차도 조금도 지연되지 않았다. 이 청년이 20분 지각을 한 것은 본인이 20분 늦어서였지, 열차 파업 때문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이듬해 철도노조가 이 악의적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를 했다. 이명박의 전성기였던 2010년, 언론중재위원회는 절대로 노동조합에 우호적인 기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중재위조차 명백한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중재위는 『중앙일보』에 정정보도 결정을 내렸다. 『중앙일보』는 정정보도를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 사건은 결국 소송으로 번졌다.

소송 결과는 당연히 노조의 승소였다. 『중앙일보』는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 정정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중앙일보』는 정정보도를 했다. 사건이 터진 뒤 무려 2년 뒤의 일이었다. 게다가 그 정정보도는 잘 보이지도 않는 30면 구석에 처박혔다.

이 일을 당한 철도노조의 심정을 상상해보라. 말 그대로 미치고 환장하는 거다. 그런데 더 이상 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보수언론이 노조를 악마화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선진국의 노동조합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나라에서는 “교사가 무슨 노동자냐? 우리는 스승을 원하지 노동자를 원하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판을 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복지강국 핀란드에서는 교사들이 노조에 가입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교장선생님들이 노조에 가입을 한다. 교장도 당연히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아예 교장노조가 따로 결성돼있다.

경찰노조는 어떤가? “경찰노조? 노조를 때려잡아야 할 경찰이 뭔 노조야? 빨갱이 나라를 만들자는 거야?”라는 반발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런데 캐나다, 미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에는 진짜로 경찰노조가 있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이 나라들은 빨갱이 나라들이 아니다.

무려 군인노동조합이 있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라면 “군인이 노조를 해? 나라는 누가 지키냐?”라는 반발이 가스통 위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그 가스통 굴리는 분들, 백발백중 해병대 전우회 군복 입었다.

그런데 진짜로 군인 노동조합이 있는 나라가 있다. 독일,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가 그런 나라들이다. 이 선진국들이 나라를 지킬 줄 몰라서 군인노조를 허용한 줄 아는가? 군인도 국방을 위해 노동하는 노동자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 칼럼 내용의 대부분은 평생을 노동운동에 바친 성공회대학교 하종강 교수의 저서 『우리가 몰랐던 노동 이야기』에 나온 것들이다. 이 책 93페이지에 나오는 하종강 교수의 절절한 경험담을 그대로 옮긴다.

가톨릭 계통의 한 병원 식당에서 조리 노동자 30여 명이 한꺼번에 해고된 적이 있습니다. 가톨릭 내 웬만한 사업장들의 경영 책임자를 두루 거쳤고 자타가 인정하는 유능한 CEO인 원장 수녀는 당 대표급 국회의원들, 검찰 수뇌부 간부들, 청와대 요직 인사들과 직접 통화하는 사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지방 관청의 공무원들이 쩔쩔 매는 걸 보면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았습니다. 사건을 처리하는 검찰, 경찰, 노동부의 공무원들은 위의 높은 분들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여성 노동자 30여 명이 대한민국의 거대한 국가권력 전체와 맞서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노동부에서 나온 관리가 원장 수녀를 만나 “노동조합과 좀 협상을 해보시지요”라고 권유했을 때, 그 원장 수녀는 뭐라고 답했을까요. “예수님도 마귀와 협상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그들의 눈에 노동조합은 마귀, 사탄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진지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나라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끔찍하다.

우리는 ‘노동자’라는 단어 뒤에 ‘계급’이라는 말을 붙인다. 왜 우리를 ‘노동자 계급’이라고 부를까? 계급은, 세습이 되기 때문에 계급인 것이다. 내가 노동자이기에 내 자식들도 십중팔구 노동자로 자란다. 내 손주들도 십중팔구 노동자로 자란다.

자본가 계급이 계급인 이유도 그 계급이 세습되기 때문이다. 이재용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본가의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이건희였기 때문이고, 그의 할아버지가 이병철이었기 때문이다.

이변이 없는 한 우리는 대대손손 노동자로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그 삶이 이렇게 처연하게 슬퍼서야 되겠나? 나는 내가 노동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살고자 한다. 그래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노동자인 나는 악마가 아니라고, 그리고 나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노동조합 역시 사탄이 아니라고 말이다. 우리는 노동자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나의 자녀들도, 나의 손주들도 그런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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