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는 군사력이나 동맹체제와 함께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유지하는 3대 조력자 중 하나이다. 미국은 전 세계 무역의 10분의 1을 차지하지만, 전 세계 무역의 약 절반은 달러로 표시된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 부채나 과도한 지출, 또 러시아를 글로벌 은행시스템에서 제외시키며 미국이 달러를 무기화하는 것을 본 세계 국가들이 점점 더 많이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를 원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말 ASEAN은 달러나 유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았고, 4월에는 에마뉘엘 마크롱은 유럽국가들이 달러에 대한 의존을 낮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석유대금을, 그리고 아랍에미리트에는 가스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기로 해 페트로-달러 체제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BRICS도 자체 결제 화폐를 만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달러의 현재 상황은 구체적으로 어떨까? 탈달러와 기축통화의 다극체제가 자리잡고 있는가?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를 소개한다.
달러화가 아닌 준비통화(국가별 지급을 대비해 보유한 외국환)에 대한 욕구가 타오르며 달러의 급격한 하락세를 예측하는 시장이 활성화할 때가 가끔씩 있다. 달러는 거의 75년 동안 세계적으로 무역, 금융, 각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를 지배해왔다. 그러나 높은 인플레이션, 세계의 지정학적 분열,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미국과 그 동맹국의 제재로 인해 최근 달러 비판론자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계적 지도자들이 달러에 분노한 상황을 증폭시킬 때가 많다. 1965년 프랑스 재무장관이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달러가 미국에게 부여한 ‘과도한 특권’에 대해 비난을 퍼부은 바 있다. 이번에는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차례였다. 룰라는 최근 중국 방문에서 신흥시장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사용해 무역을 하자고 촉구했다.
동시에 세계적으로 급등하는 금 가격과 달러의 글로벌 준비통화 비중 하락은 달러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키고 있다. 이번달 미국 재무부 장관 재닛 옐런은 러시아 제재가 길어지면 ‘달러의 헤게모니가 약화할 수 있다’고 시인해 이들의 생각의 뒷받침해 줬다. 미국의 정부 채무 한도 인상을 의회가 결정하지 못하면 미국이 곧 재정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달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의구심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미국 달러는 여전히 세계 경제에서 거대한 중력을 지니고 있고, 최근 미국이 달러의 우월성을 활용하는 데 실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이 중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것은 아니다.
달러의 출발 우위는 엄청나다. 세계무역의 3분의 1에서 2분의 1 정도가 달러로 청구되는데, 장기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달러는 모든 외환 거래의 90%에 활용된다. 달러의 유동성이 그렇게 높기 때문에 유로에서 스위스 프랑으로 환전하는 경우, 직접 환전하기보다 달러를 거치면 거래 비용이 더 적을 수 있다. 또 국경을 넘어가는 부채의 절반 이상이 달러로 지불된다. 그리고 중앙은행 준비통화의 달러 비중이 장기적으로 감소했지만, 여전히 약 60%에 달한다. 최근 크게 바뀐 것은 없다. 중앙은행이 환율 변동과 미국의 높은 금리를 고려하여 포트폴리오를 재검토하는 등 기계적인 변화만 있었다.
다른 어떤 화폐도 이러한 생태계의 크기나 달러 투자자들에게 안전자산을 공급한다는 근본적인 매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 유로존은 불안정하고 국채시장은 대부분 회원국 간에 분산돼 있다. 중국은 자본 유출을 엄격히 통제하면서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 안전자산에 대한 글로벌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게다가 달러는 네트워크 효과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화폐를 사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더 분명해지는 것은, 개별 국가들이 진정으로 원한다면 달러 시스템을 우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 제재로 인해 경제가 상처를 입었지만, 우크라니아 전쟁 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위안화 지불 비중을 수출의 16%로 끌어올려 경제의 마비를 막을 수 있었다.
전자금융거래 시스템에 대한 중국의 대안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또한 이중 상거래 결제 비중을 점차 위안화로 전환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국가 간의 거래에서 달러를 대체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많은 서양 기업도 이제 중국과의 무역에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 새로운 디지털 결제 기술과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가 미국을 거치지 않도록 전 세계의 자금 이동을 용이하게 만들 수 있다.
힘의 균형
게다가 옐런 장관의 말이 옳다. 다른 나라를 굴복시키기 위해 달러를 사용하는 것은 친구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방법이 아니다. 러시아와 계속 무역을 하는 인도와 같은 국가에 대해 미국이 보복 제재를 부과하지 않는 것은 그것에 대한 여러 국가의 반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세계 화폐 시스템이 곧 다중체제로 전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세기 후반에는 미국의 세계 경제 점유울이 줄어들면서 다중체제가 확립될 수 있다. 이런 체제는 달러 중심의 체제보다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서둘러 일으키는 것이 유익할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