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한국 방한이 이뤄진 7일, 서울 도심 곳곳에선 시민사회의 규탄 집회가 잇따랐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이날 오후 2시께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윤석열-기시다 한일 정상회담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전범 기업의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계획 철회, 독도 일본 영유권 주장에 대한 한국 정부의 경고, 한미일 군사동맹 중단을 촉구했다.
역사정의평화행동은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은 강제동원 대법원판결에 대한 해법으로 ‘제3자 변제안’을 내놓으며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을 구걸했다”고 지적하며 “정상회담 후에도 일본은 ‘성의 있는 호응’ 은 커녕 역사왜곡 교과서와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화답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결국 기시다 정부가 계승하고 있는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은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아니라, 역사부정론을 내세워 강제동원과 일본군‘성노예’의 역사를 지우고 미래세대에 사죄와 숙명을 지우지 않겠다고 한 아베 내각의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했다.
참석자들은 “기시다 총리 앞에서 역사적인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은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의 시계를 되돌린 외교 참사의 장본인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여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실현하라”고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한일 정상회담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한미일 3국 간에도 안보협력을 강력히 추진해 나가는 중요성을 확인’했다고 밝혔고, 미국 정부는 곧바로 한미일 확장억제협의체 구성 카드를 꺼내 들었다”며 “이번 한일정상회담이 조기 개최되는 것은 미국의 강력한 요구에 의한 것이며, G7 정상회의 기간 열리게 될 한미일 정상회담 의제인 한일, 한미일 군사협력을 위한 사전협의라는 이야기가 일본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우려를 제기했다.
이어 “집요하게 재무장을 추진해 온 일본은 지난해 안보 3문서를 개정하고 ‘적기지 공격능력 보유’를 선언한 바 있다”며 “이제 한국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침략역사를 지웠다고 믿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속도가 더 빨라지게 될 것이다. 동북아에서 신냉전 대결을 격화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뒷받침하게 될 한미일 군사협력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이 없다면 12년 만에 ‘셔틀외교’가 이뤄진다 해도 한일 관계가 아무런 일 없었다는 것처럼 복원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은 “올해 초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해법을 발표하고 나서야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됐다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강제동원 해법으로 구걸한 정상회담이라는 뜻”이라며 “이런 정상회담에서 한일관계 개선이 제대로 논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 투기’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를 과학적이고 안전하게 관리한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오염수에 포함된 방사성 물질의 종류와 총량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밝힌 적이 없고, 방사성 물질의 ‘생물학적 농축’에 제대로 연구한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녹아내린 핵연료를 제거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고농도의 방사성 오염수가 계속 발생한다면, 30년이 아니라 수백년이 될지 모르는 해양 투기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일본의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는 인류에 대한 핵테러에 다름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한국을 포함한 태평양 연안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일정상회담 대응 청년학생 공동행동’ 역시 이날 오전 11시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청년을 위한다는 허울 좋은 말을 붙이며 한일관계의 명분으로 ‘청년’을 세우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청년들이 재정난과 대학등록금 인상 등으로 인해 고통받는 현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역사문제의 해결책으로 청년기금을 만든다는 것은 청년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청년들은 역사문제를 팔아서 얻은 돈따위 받을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청년이 원하는 세상은 내가 받은 피해에 대해 사죄받고 법적으로 보상 받을 수 있는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이고, 그 세상을 위한 첫길에는 역사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이 놓여있다”고 지적했다.
평화와통일을여는 사람들도 이날 낮 12시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평통사는 이날 한일 정상회담을 “역사 왜곡과 책임 부정으로 일관하는 기시다 정권에 거듭 면죄부를 주는 굴종 외교”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기시다 총리의 현충원 방문에 대해 “한반도를 총칼로 짓밟아 식민 지배, 강제동원, 학살한 일본 정부 수장이 어떻게 사죄 한 마디 없이 현충원을 방문할 수 있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