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윤석열의 호구 외교, 한국은 어떻게 호갱이 돼 가는가?

기시다 일본 총리가 7일 한국을 방한했다. 두 달 전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뭐든 잔뜩 퍼준 것에 대한 답방 형식이다. 한국과 일본 보수 정권이 그야말로 짝짜꿍이 났다.

7일 회담에서 백미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천명한 대목. 문장 자체로도 실로 개떡 같은 소리이지만, 더 엿 같은 대목은 이 발언을 듣는 순간 이번 회담에서조차 윤 대통령이 일본에 왕창 퍼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협상의 ABC라는 것을 모르냐? 회담에 임하기도 전에 이렇게 설설 기고 있으면 회담에서 도대체 뭘 얻을 수 있단 거냐? 윤 대통령은 애초부터 이번 한일 정상 회담에서 뭘 얻을 생각이 없었다. 그냥 퍼줄 생각만 있었던 거지. 그리고 이걸 학계에서는 고급스러운 용어로 ‘호갱’이라고 부른다.

호갱의 경제학

호갱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에 대한 흥미로운 경제학 연구를 하나 소개한다. 이 연구의 결론에는 반전이 있으니 가급적 결론 부분까지 읽어주셨으면 한다. 경제학에서는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두 개 이상의 가격이 형성되는 현상을 가격차별(price discrimination)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가격차별은 왜 생길까?

미국의 경제학자 이안 에이러스(Ian Ayres)와 피터 시즐먼(Peter Siegelman)이 1995년 발표한 <새 차를 살 때 벌어지는 인종과 성별에 대한 가격차별(Race and Gender Discrimination in Bargaining for a New Car)>이라는 연구 결과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

미국에서는 자동차의 판매 가격이 매장에서 딜러와 소비자의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따라서 협상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 어떤 소비자는 바가지를 쓰는 ‘호갱’이 되고 어떤 소비자는 싼 가격에 자동차를 사는 ‘현명한 고객’이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에이러스와 시즐먼은 38명의 배우를 고용했다. 그리고 그들을 시카고 지역 153개 자동차 매장에 보내 자동차를 사려는 고객으로 위장했다.

배우들은 모두 30세 전후의 대학졸업자였고 매장에 방문할 때 비슷한 종류의 차를 몰았다. 누구는 부자로 보이고 누구는 가난하게 보이는 선입견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자동차 판매원이 질문을 하면, 반드시 미리 교육받은 대로 비슷한 대답을 하도록 했다. 배우들에게 발견된 단 하나의 차이는 이들 중 절반이 백인이었고 절반이 흑인이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딜러가 보기에 이 가짜 고객들은 인종만 다를 뿐 모든 조건이 비슷했던 셈이다.

어떤 결과가 도출됐을까? 연구결과 딜러들은 백인 남성보다 흑인 남성에게 평균 935달러 정도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역시 미국은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나라야!”라는 섣부른 결론은 잠시 접어두자. 정확한 결론을 얻기 위해 이들이 진행한 두 번째 연구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

에이러스와 시즐먼이 진행한 두 번째 연구는 배우들 중 절반은 비장애인, 나머지 절반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으로 가장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들을 자동차 정비소로 보내 차의 수리를 맡기도록 했다. 자동차의 고장 부위는 모두 똑같았다.

이번에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실험 결과 정비소에서는 장애인에게 비장애인에 비해 무려 30% 정도 높은 수리비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미국은 인종차별 뿐 아니라 장애인 차별마저 존재한다는 이야기일까?

왜 누구는 고객이 되고 누구는 호갱이 되나?

하지만 여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된다. 연구팀은 두 실험에서 나타난 가격차별이 인종 혹은 장애인을 차별한 탓에 나온 것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오히려 가격차별의 핵심은 딜러들이 호갱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사전에 파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팀의 결론이었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상점에서 가격 협상을 하는 것을 상대적으로 귀찮아한다는 다양한 연구결과가 이미 존재했다. 즉 딜러들은 흑인들이 가격 협상을 귀찮아한다는 사실을 간파한 상태였기 때문에 애초부터 흑인들에게 100만 원 정도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사실이 두 가지 있다. 조사 결과 딜러들은 흑인과 백인 고객들 중 오히려 흑인 고객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딜러들이 흑인을 싫어해서 바가지를 씌우려 했다면, 이들이 흑인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평통사 회원들이 일본 기사다 총리가 방한하는 7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 즈음한 평화행동에서 기시다 정부는 불법 식민지배 사죄하고 윤석열 정부는 대일 굴종외교, 한일동맹 구축 중단을 촉구하며 피켓을 들고 있다. 2023.05.07 ⓒ민중의소리

또 한 가지, 딜러들 중에서도 당연히 흑인이 있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흑인이 흑인을 차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조사 결과 흑인 딜러들도 똑같이 흑인 소비자한테 바가지 가격을 제시했다. 결국 흑인 고객이 바가지를 쓴 이유는 그들이 협상을 게을리 하는 호갱일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가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정비소에서 장애인들이 30% 높은 바가지 가격을 제시받은 이유도 비슷하다. 연구팀은 장애인 연기를 하는 배우들에게 “차에서 내릴 때 굉장히 힘든 척을 하세요. 휠체어 꺼내는 것도 힘들게 하시고요”라고 요구했다.

이 장면을 본 정비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 이 고객은 몸이 불편하니 여기서 좀 바가지를 씌워도 다른 정비소로 가기 어렵겠구나’라고 믿게 된다. 정비소가 바가지를 씌우는 이유는 소비자가 장애인어서가 아니고 이 사람이 호갱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다. 장애인 역을 맡은 배우들 중 일부는 차에서 힘겹게 내린 다음 무심코 “어, 제가 벌써 다른 정비소 몇 군데 다녀오는 중인데요”라는 말을 던지도록 했다. 그런데 이 한 마디만으로도 정비소에서 제시되는 가격은 바로 정상으로 떨어졌다.

다른 몇 곳을 들렀다는 이야기는, 이곳에서 제시하는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날 수도 있다는 경고였다. 이 경고를 들은 정비소 측은 아예 바가지를 씌울 생각을 못 했던 것이다.

에이러스와 시즐먼의 연구는 경제학에서 호갱이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소비자들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좀 귀찮더라도 꼼꼼히 가격을 비교하고, 더 낮은 가격을 찾아다니는 고객은 가격차별로 손해를 겪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반면 바가지를 쓰는 호갱의 대부분은 가격 비교를 귀찮아하거나, 더 나은 소비를 위해 애를 쓸 생각이 조금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현명한 소비자만이 가격차별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윤석열은 이미 호갱 외교의 선봉이 돼버렸다

이 연구를 윤석열 정권의 외교 정책에 대입해보자. 윤 정권은 일본과 미국에 대놓고 호구를 잡혔다. 한미일 동맹이라는 환상에 빠져 상대가 무슨 말을 하건 꼼꼼히 살피지도 않고 “어이쿠, 그러문입쇼”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 호갱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이나 미국은 한국을 대할 때 ‘아, 쟤들은 외교를 할 때 뭘 꼼꼼히 따지지 않는구나?’라는 선입견을 당연히 갖기 때문이다. 그러면 협상 시작 단계부터 상대를 호갱 취급할 수밖에 없다.

호갱과 고객의 차이는 그야말로 백짓장 한 장의 차이다. 아무리 한미일 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들(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외교 국면에서 조금만 더 꼼꼼한 소비자인 척만 해도 한국은 지금 같은 호갱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이 먼저 조르기 전에 우리가 나서서 “과거사 반성 따위는 집어치우고 우리 함께 미래로 나아가요”라는 헛소리만 안 했어도 이 정권이 퍼준 것의 절반은 막을 수 있었다. 미국이 먼저 강요하기 전에 “미국은 영원한 우리의 형님이어요”라고 꼬리치지만 않았어도, 혹은 “동맹국끼리 도청은 좀 불쾌하다”라는 한 마디 정도만 던져놨어도 그런 굴욕외교는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다른 정비소 몇 군데 다녀오는 중인데요”라는 단 한 문장에 상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듯 말이다. 이건 보수냐 진보냐 문제가 아니다. 그냥 조금 유능한 소비자가 되느냐, 멍청한 호갱이 되느냐 이 차이일 뿐이다.

윤석열 정권의 호갱 외교는 대한민국 역사를 뒤로 한 열 바퀴 정도 돌려놓았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은 대가가 이렇게 크다. 아, 이 호갱에게 언제까지 대한민국의 운명을 맡겨야 한단 말인가? 더 충격적인 점은, 이 정권이 통치할 기간이 아직도 4년이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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