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건설사 임원이 11일 열린 민·당·정 협의회 공개회의 석상에서 “노조원을 고용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이행하는 협력사들이 나타나면서 공사기간이 정상화되고 있다”라고 보고했다. 또 여러 하청업체와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의 현황을 전하며, 하청업체들을 대상으로 원청 대기업이 노조원 채용 여부를 조사한 정황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냈다.
현대건설 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 관련 민·당·정 협의회’에서 정부·여당에 이같이 말했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채용을 제외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반헌법적 행위일 수 있다. 그런데 공식 석상에서 대기업이 이를 대놓고 드러내 보고하고, 정부·여당은 이를 성과처럼 여기고 홍보한 것이다. 권두섭 변호사는 “노조원 채용을 배제하는 행위는 헌법에 반하는 행위”라며 “그 전에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는데, 지금은 공식 석상에서도 당당하게 말할 정도니까 현장은 더욱 심하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 관련 민·당·정 협의회’에서 참석자들은 참석사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박수를 쳤다. ⓒ뉴스1
건설노동자 억울함 호소하며 분신했는데 웃음·박수 소리로 시작한 민·당·정 협의회 건설사 “노조원 채용 배제로 정상화” 여당 “건설현장 변화된 모습 확인”
민·당·정 협의회에는 당·정 관계자로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원회 의장, 김정재 국토교통위원회 간사, 장동혁 원내대변인 그리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권기섭 고용노동부 차관, 신자용 법무부 검찰국장, 조지호 경찰청 차장 등이 참석했다. 또 김상수 대한건설협회 회장, 윤학수 전문건설협회 회장, 그리고 전문건설업체·종합건설업체 임원 및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타워크레인 노동자가 참석했다.
건설노동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까지 한 상황인데, 이날 민·당·정 협의는 박수와 웃음소리로 시작됐다. 협의 시작 전 참석자들은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서로 인사를 나눴다. 참석자들을 소개하는 순서에서는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원희룡 장관을 소개할 때 박수소리가 가장 컸다.
앞서 채용 강요나 전임비 요구 등은 없었다는 건설사들의 탄원서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수사를 받은 故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신했다. 故 양회동 열사는 생전 건설현장에서 윤석열 정부 들어 노조원을 배척하는 건설사들 때문에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이같이 숨졌다. 경찰이 故 양회동 열사와 그 동료들을 대상으로 신청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런데, 故 양회동 열사의 죽음을 비웃듯 ‘노조원 채용 배제를 선언한 하청업체 현황’을 정부·여당에 보고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현대건설 임원은 “정부의 건설현장 불법·부당 행위 근절대책 시행 관련하여 정부기관, 건설업계 모두의 노력으로 가시적인 체감효과를 보고 있다”며 “노조 채용 강요 등 불법행위가 감소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노조를 고용하지 않기로 선언하고 이행하는 협력사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대책으로 적정 공사기간이 확보되고 있고 공사기간이 정상화되는 현장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일부 업체에서는 노조 비고용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라며 노조를 배척하기 힘들다고 한 협력업체, 정부 기조를 이어가려면 비노조 타워크레인노동자 양성이 필요하다는 협력업체 등의 고충을 보고하기도 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이 협의회 직후 브리핑에서 “변화된 건설현장 모습을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말한 점을 고려하면, 여당은 이를 정부 정책의 성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또 박 의장은 브리핑에서 “검찰과 경찰 참석자들은 이런 현장에서의 불법행위에 대해 배후를 철저히 추적해서 엄정대응하고, 현장에서 보이는 이런 변화가 1회성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하는 것에 대해 ‘중간에 수사 동력이 떨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필요하면 현행범 체포로 단속 조치를 실효성 있게 하겠다’ 했다”라고 전했다. 억울함을 토로하며 분신한 노동자까지 생겼는데, 더 강력하게 수사를 밀어붙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는 것이다.
김정재(왼쪽)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간사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 후속조치 관련 민당정 협의회에서 김상수(오른쪽) 대한건설협회 회장, 윤학수 대한전문건설협회 회장과 대화를 하고 있다. 2023.05.11. ⓒ뉴시스
국토교통위원회 간사인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민·당·정 협의회에서 “월례비 수수와 채용 강요가 사라지는 등 건설현장은 법과 질서를 조금씩 되찾고 있다”라고 정부의 대책을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친 기득권 노조 정책이 아니라 전체 근로자를 대변하는 친노동 정책을 추진하겠다”라고 했다.
채용 문제는 건설현장의 구조적인 병폐 때문에 생겨났다. 직업소개소를 통하면 10%의 수수료가 떼이기 때문에 전체 건설노동자 중 60~70%는 팀장을 중심으로 여러 명으로 구성된 팀이 고용되는 구조다. 그런데 정부는 정당한 노사협의로 고용됐더라도 노조원으로 구성된 팀이면 채용 강요가 있었을 수 있다고 보고 노조를 수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건설현장에서는 노조원을 채용에서 배제하는 일이 만연하다. 故 양회동 열사가 분신하기 전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유다.
월례비 또한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위원회가 생기기 이전부터 오랫동안 이어져 온 건설현장 관례다. 월례비는 노조의 강요로 생겨난 게 아니라, 건설사들이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타워크레인노동자에게 각종 위험작업 및 편법작업을 요구하면서 생겨났다는 게 건설노조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 또한 노조가 강요해 뜯어냈다는 시각으로 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한편, 민·당·정 협의회에는 비노조 타워크레인노동자 A 씨도 초청받아 참석했다. A 씨는 “월례비 등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저도 노조에 속해 있지 않지만, 월례비 같은 걸 일부 받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다만, 노조가 사측의 불법적이고 위험한 작업 강요에 반발하여 태업하는 것까지 마치 노조가 월례비 등을 강요하는 것처럼 비추어지는 것이 답답했는지 “태업이라고 하는 부분, 사실 기사(타워크레인 조종사) 입장에서는 어쨌든 안전한 작업을 위해 현장에서 안전과 관련된 요구사항을 마련하는데 일부 건설사들은 그 또한 태업으로 간주한다”고 토로했다.